예민해진 나, 왜 그런 거지?

구술의 힘

by 카후나

시험관 7차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주치의 선생님을 눈치를 살폈다. 이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5일 배양 배아가 하나 나와서 pgt 검사를 보냈는데, 안타깝게도 비정상이었어요. “ (pgt 검사: 착상전유전자검사로 배아의 염색체 수가 46개인지 알아보는 검사입니다.) 진료실을 나와 1층 카페로 가서 남편에게 소식을 전했다. 몇 주간 마음속에 계속 흐르고 있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꺼냈다. “앞으로 열 번, 백 번을 더 한대도 실패만 할 것만 같아, 안 되는 걸 잡고 있는 건 아냐, 우리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날 점심은 오랜만에 아빠와 먹기로 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다 잊어버리자 싶어 좋아하는 일식을 먹자고 했다. 기분이 상해서 그랬는지, 좋아하는 새우튀김도 광어회도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도 먹어야지 하며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었다. 매운탕을 먹을 때쯤 아빠가 남편에게 한국어를 이렇게 쓰는 거라고, 아이를 가르치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남편은 독일사람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중입니다.) 그 말투가 남편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사납게 나왔다. 아빠도 그날 힘든 날이었는지 아비한테 말하는 말투가 그게 뭐냐며 숟가락을 집어던졌고, 일식집의 얇은 벽을 타고 옆 방의 사람들이 숨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밤새 울었다. 내가 왜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둑이 무너져 버린 것 같이.


검색창에 ‘심리상담’이라고 쳤다. 가장 가까운 곳에 예약했다.


그곳은 평소 자주 가던 서점 안에 위치한 곳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안경테가 독특해서 그곳에 시선을 계속 뺏겼다.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질문하셔서, “제 감정이 통제가 안 돼요. 갑자기 화를 낸다거나, 갑자기 울음이 터져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선생님과 열 번을 만났다. 매번 상담 시간은 한 시간이었는데 꼭 10분처럼 느껴졌다. 무슨 말을 이렇게 많이 하지? 싶었다가도, 나 이런 시간 - 내 속을 뒤집어서 누구에게 보여주는 시간 - 이 필요했구나 싶었다.


난임 기간 동안의 스트레스에 대해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매번 그 이야기는 5분도 하지 않았다. 자라면서 기억에 남는 것들, 부모님과의 에피소드, 남편과의 거리,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노트 패드에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쓰는 것만 보지 않으면 그냥 수다를 떠는 경험이었다. 어느 날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꼭 아기를 낳고 싶은 거예요? “ 당장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일주일 정도 생각하고 다음 상담일이 되었다. 근본적으로 가족 말고는 누군가를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 감정은 아무래도 자라면서 아빠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것, 부모님이 빚을 져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친적들이 발길을 끊은 것을 본 내 어린 시절에서 온 것 같았다고 했다.


아빠가 숟가락을 던진 날, 검색창에 ‘난임 상담’이라고 입력한 하고 처음 전화한 곳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운영하는 ‘중앙난임, 우울상담센터’였다. 예약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세 달 후에나 첫 상담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해달라고 하고 잊고 있었다. 그 사이 안경테가 특이한 그 선생님과는 모든 상담을 마쳤다. 02-2276-2276에서 전화가 와서 어딘지 모르고 받았다. 그렇게 전화를 두 달간 매주 받았다. 별 내용은 없었다. 요즘 감정은 어떤지, 과배란 증상은 없는지, 어떻게 스트레스를 관리하는지 무척 기본적인 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정말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상담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냥 내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구나. 구술의 힘을 알게 되었다.

마음의 치유라든지, 삶은 살아내는 힘이라든지, 세상과의 화해 가능성 같은 것은 상당 부분 '구술'과 관련되어 있다. 대개 자신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조리 있고 정확하게, 의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삶과 화해를 이루어간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화를 내고, 울고, 더 이상 말하지 못한 채 입을 닫아버리고, 신경증적인 반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삶에는 아직 제대로 말해져야만 하는 게 더 남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 사람에게는 말할 창구가 필요하다.

_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몇 달이 지나고 그 사이 시험관 9차가 끝났다. 또 실패다. 실패 소식을 들은 날 우연히 엄마와 점심을 먹었다. 칙칙해진 내 기운을 한눈에 간파한 엄마가 한 마디 했다. “시험관 그거 이제 그만해. “ 그 말이 얼마나 큰 칼에 베인 것처럼 아팠는지 모른다. 엄마에게 바로 소리 질렀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백화점 지하 주차장이 쩌렁하게 울렸다. 나 먹으라고 해온 장조림을 손에 들고 할 짓은 아니었다. 나도 그렇게 사나운 소리가 나올지 몰랐다.


그날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내 안에 또 하지 못하고 쌓인 말들이 있구나. 또 신경증적인 반응이 나오네. 이번에는 그래도 증세가 심해지기 전에 알아차렸다. 말로 풀어내자고 구술의 힘을 믿어 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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