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병원에 다니는 마음
시험관 10차를 끝낸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해줄까? 이 질문에 대답하며 이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남편은 혹시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할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기다렸다는 듯이 단박에 대답이 나왔다. 내가 예상했던 대답은, 용기를 내라, 포기하지 마라, 이런 것이었는데, 남편은 답은 기대를 버려라였다.
응? 기대를 버리라고? 갸우뚱했다. 무슨 말이지? 곧 짧은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 정말 기대를 다 가져다 버리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담담하게, 너무 실망하지 말고, 시도를 계속해 나아가라는 말이었다.
돌아보면 남편이 가장 힘들어했던 차수가 1, 2차였다. 8, 9, 10차로 갈수록 훨씬 덜 힘들어했다. 이상하지. 고차수로 갈수록 힘들지 않았다는 게. 초반에 힘들었던 이유는 과도한 기대감이었다. 시험관을 시작하고 곧 임신하겠지 기대를 하긴 했다. 시험관 커뮤니티(네이버 카페)에서 10번, 20번 하시는 분들 이야기도 십상으로 봤지만, 우리는 곧 잘되겠지 하며 교만했다. 어쩌자고 몇 번만에 쉽게 될 거라고, 그렇게 순진하게 안일했을까?
1차는 이식도 못해보고 끝났고, 2차는 이식 후 며칠 되지 않아 생리가 시작해 실패를 알았다. 생리가 터지던 그날 남편과 하루동안 연락이 안 되었었다. 당시 남편은 북경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날 내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남편은 휴대폰도 집에 두고 종일 걸었다고 했다. 그 실패를 소화시키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 나중에 알았지만 이번에 임신이겠지 하고 혼자 아기 이름까지 지으며 호들갑을 떨었다고.
우리는 뭘 잘 몰랐다. 찾아보려고 해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우리 나이(40대 초반)에 정상 임신이 될 배아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희박한 확률인지 감도 없었다. 그나마 8차를 하던 중, 미국의 난임 전문의가 제시하는 통계를 보았더니 40대 성공률은 10% 미만이었다.(의사 소속의 병원이 집계한 한계가 있는 통계라는 점을 함께 말씀드립니다.) 그 의사는 보통 10차가 되기 전에 포기하는 난임 부부가 많다고 하면서 적어도 10번은 난임 치료를 받아보는 것을 권했다.
물론 운이 좋으면 1차에, 아니면 2차에 바로 성공할 수도 있다. 그렇다. 운이 좋으면. 세상에 많은 일이 그렇겠지만 시험관의 성공 여부는 순전히 운이었다. 나이가 적고 건강하면 도움은 되겠지만, 성공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7-8년 동안 치료만 받고 있는 분들도 오픈채팅방이나 카페를 통해서 자주 봤다. 운이 좋아야 성공하는 바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저 자주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매주 빠지지 않고 복권을 사야 그 확률이 올라가는 것처럼.
내가 가장 힘들었던 차수는 (유산을 했던 3차를 제외하고) 6, 7차 즈음이었다. 연달아 계속 실패를 하니 희망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고 절망만 학습 돼버렸다. 병원에 가기도 싫고, 심지어 병원 앞을 지나가는 것도 싫어서 일부러 다른 버스를 탔다. 왜 그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차수 별로 나도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번에 혹시 잘되지 않을까? 이런 희망의 마음은 실패할 때마다 큰 절망이 되어 돌아왔다. 이런 마음으로는 난임치료 오래 하기 어렵겠다 싶었다. 병원에 다니는 적절한 마음이 있을 텐데 그걸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전혀 상관없는 책을 읽다가, 열쇳말이 될 문장을 만났다.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다’는 것은 실로 훌륭한 표현입니다.
_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희망도 절망도 없다니. 희망이 없이 무언가를 매일 할 수 있을까? 희망이 없이 병원에 가고 주사를 맞을 수 있을까? 못할 것 같았지만, 시도나 해보자 싶었다. 병원에 가면서, 대기실에 앉아서, 초음파실에서 주문처럼 외웠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희망도 절망도 없이. 난포가 잘 자랐을까, 난자 채취가 잘 되었을까, 정상 배아가 나왔을까, 이런 걱정이 들 때마다 주문처럼 외웠다. 8차쯤 되어서는 시험관이 익숙해져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이런 마음으로 병원에 다니니 처음으로 울지 않고 한 차수가 끝났다. 물론 실패였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았었다.
오래 걸리는 일을 할 때는 감정 소모를 최소한으로 해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어렵게 깨우쳤다. 희망이 넘쳐서 오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절망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8차에 그 마음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그쯤에서 포기해 버렸을 것 같다.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렇게 병원을 다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4년 전 나에게, 그리고 남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