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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금 Mar 08. 2024

양수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감에 대해 또 배웠다

오늘이라도 임신이 종결될 것 같은 불안감을 머리에 이고 진 채로 피난 가는 사람처럼 난임병원을 떠나 산과로 옮겼다. 새로운 주치의 선생님은 양수검사를 권했다. 임신한 내 배에 바늘을 찌른다고 했다. 태아의 염색체 이상 유무를 정확하게 알려면 그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다. 거의 일상적인 안전한 검사라고 했지만, 간호사 선생님이 들고 온 동의서에는 유산될 수도 있다는 말이 반복해서 보였다. 임신 16주였다.  


2023년 3월 28일 일기

시험관 10차에 임신하고, 임신 18주가 되었다. 지난 주말에는 늘어져 티브이를 보다가 첫 태동도 느꼈다. 무언가 움직임을 느끼고 얼음이 되어서 눈도 깜빡하지 못하고 한참 앉아 있었다. 태동이 맞나, 속이 안 좋은 건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막연하게 태동이 아닐 거라고, 그렇게 좋은 일은 나에게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기를 초음파로 보고 온 게 2주가 넘었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동네 산부인과에 아기의 안부를 물으러 갔다. (이상하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꼭 병원에 가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아기의 양쪽 뇌에 물혹이 있다고 했다. “네에? 혹이요? 뇌에요? 양쪽에요? “ 마냥 천진하게 웃고 있는 미키마우스 패턴의 두건을 쓴 의사 선생님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나를 보지도 않고 이야기했다. 자신처럼 자세하게 초음파를 볼 수 있는 전문가라 이런 것도 보이는 거라고 의기양양 표정까지 지으면서 말하는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가 싶었다. “이 시기 태아에게서 흔히 보이는 거예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발달 과정에서 다 없어져요.” 방금 전까지 뻣뻣하게 강직됐던 다리를 겨우 풀어 집에 왔다.


집에 가만히 있을 걸 괜히 병원에 다녀와서 더 불안해졌다. 이렇게 불안한 이유는 오늘 들은 말 때문만은 아니다. 2주 전에 한 양수검사(임신부의 복부를 통해 바늘을 넣어 양수를 채취하여 태아의 염색체 분석을 하는 검사) 때문이다. 결과가 앞으로도 일주일이나 더 있어야 나오는데 초조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염색체 이상이 나오면 어쩌지? 지난번 유산처럼 또 낳아야 한다면 그 슬픔에서 회복할 수 있을까? 또다시 내 산도를 빠져나오는 그 느낌을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도저히 받아 낼 수 없는 걱정이 쏟아져서 어떤 마음으로 숨을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뭐라도 살 방법을 찾아보겠다 싶어 에버노트 앱을 켜고 ‘불안’이라고 쳤다. 내가 저장해 둔 문장 중 나를 구해줄 뭔가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오랫동안 스크롤바를 내렸다. 한 문장이 눈에 덜컹 부딪쳤다. 그리고 받아 적었다.

결코 충족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을 하고 싶었다는 생각을 하니 체념이 되면서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 사실을 응시하는 힘도 올라왔다. 내가 현재 아기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온전히 아기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할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구나. 내 삶을 착실하게 사는 것.


3월 초에 양수검사를 하고 마지막 날 결과를 받았다. 문자로 알려준다고 했는데 그 바쁜 주치의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했다. 선생님이 저편에서 여보세요 라고 하는 순간 덜컹했다. 그럼 그렇지 내 인생에 좋은 일이 생길 리가 없지. 나쁜 소식이구나, 그게 아니라면 전화를 직접 할 리가 없잖아. 내 목소리가 갈라지며 떨리기 시작했다. “네, 저 맞아요.”


“양수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다 좋아요. 이상 없어요. 너무 걱정하고 있어서 내가 전화했어요.”


2분도 안 되는 통화 시간 동안 얼마나 큰 감정의 고개를 겪었는지 모른다. 앞의 절망적인 감정 때문에 뒤에 좋은 소식도 마음속으로 전혀 스며들지 못할 만큼 놀란 가슴을 진정하는 데에 하루 종일이 걸렸다.


남편에게 결과를 말했다. 자리에 주저앉아 멍한 표정이 되더니 일어나서 나를 안으며 활짝 웃었다. 3월 내내 전혀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었는데, 철부지 같이 여행 가자는 이야기만 해서 몰랐는데 남편도 많이 떨고 있었구나 그제야 알았다. 우리가 이고 지고 있던 짐짝같은 불안감이 몇 개는 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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