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0g의 황홀한 도착
태교 여행에서 ‘지금 여기’에 집중한 보람이 있었다. 편안한 마음을 전지훈련까지 가서 연습해 온 덕에 불안증이 가라앉은 상태로 임신 후기에 진입했다. 이래서 휴가를 가는구나. 사람이 때때로 바닷물에 몸도 담그고 모래사장에서 수평선만을 응시하는 시간도 가져야 감정에 균형이 생기나 보다.
임신 후기가 되니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고, 미더덕이 된 듯 발가락 끝까지 온몸이 수분을 저장했다. 온몸이 띵띵 붓고, 입덧도 여전했지만, 태동만 느끼면 (아기가 무사히 살아 있다는 것만 알면) 아무 불평 없이 웃는 얼굴로 지냈다. 심지어 화가 날 상황에도 평온했고, 항상 다투던 남편과 아빠와도 평화로웠다. 마음에 보호막 같은 것이 생긴 느낌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는 올여름을 힘껏 기념해야 한다며 초당옥수수, 자두, 앵두 같은 안 먹던 제철 음식도 챙겨 먹으며 이 계절의 복됨을 누렸다.
출산예정일을 6주 앞두고 태아성장지연일지도 모른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다시 걱정 모드가 되었다. 노산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원래 작은 아기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아기를 키워보겠다는 일념으로 하루 6끼를 먹었다. 아기가 지금처럼 하위 10% 경계이거나 그 이하가 되면 35주에라도 수술로 아기를 꺼내야 할 수도 있다고 해서 무서웠다. 아침에 눈뜨면 먹기 시작해서 자기 직전까지 먹었다. 배고픈 고통보다 배부른 고통이 더 하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한 달쯤 성실하게 폭식한 덕인지, 아기는 고맙게도 2kg도 넘어 정상 범위에 안착했다. 주치의 선생님의 권유로 제왕절개로 분만 방법을 정하고 수술 날짜까지 확정했다.
일기 - 출산 5일 전
왜 내가 출산하는 것이 남의 일 같은지 모르겠다. 내년 이맘때도 만삭으로 살고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현실 도피, 부정인가 보다. 아.... 나... 무섭구나. 아니면 임신 기간 행복해서 계속 머물고 싶은가? 소원이었던 임신이어서 더 달았다. 불안감의 쓴맛도 기억이 안 날 만큼. 그것도 아니라면 출산 후 도저히 내가 무슨 감정을 느낄지 상상이 되지 않아서 이렇게 비현실로 느껴지는 걸까. 얼마 전 읽은 시에서 나온 문장처럼 인생의 많은 일들이 모르는 일이 와서 아는 일이 될 터인데 뭘 이렇게 떨고 있냐.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떨고 있는 일
_ 진은영, <물속에서> 부분,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 중
일기 - 출산 4일 전
시인이 쓴 산문을 몇 권째 읽었더니 은유적으로 생각하게 된 걸까? 이런 이미지로 내 상황이 이렇게 그려진다. 나는 지금 배에 타고 있다. 배는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가고 있고, 도착할 항구가 저기 보인다. 이제 돛과 닻도 내리고 조용히 다음 세계를 만날 준비를 한다. 신대륙에서는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새로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안전하게 만날 수 있을까?
일기 - 출산 3일 전
내 생일이다. 출산을 코앞에 앞두고 맞는 생일은 각별하구나. 태어나 40년이 넘게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내 생명이 몹시 소중하게 보인다. 41년 전 엄마도 8월에 딸을 낳았다. 엄마와 내가 겹쳐 보였다. 내가 엄마의 작은 아기였을 모습과 젊은 엄마가 막 엄마가 된 감격을 느끼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런 마음으로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일기 - 출산 3시간 전
수술 준비는 모두 마쳤다. 마지막 샤워를 하고, 정맥주사도 잘 들어가고 있다. 아기가 태어난다는 걸 아직도 이렇게 실감하지 못하다니 신기하기도 하다. 의료진을 믿고, 나를 믿고, 아기를 믿고, 수술장으로 들어가자,라고 천 번씩 다짐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해 죽겠다. 초음파에서 안 보이던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아기가 자가 호흡이 안되면 어쩌지? 남편이 외국인이라 한국어로 소통이 안되는데 응급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내가 과연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이가 부딪힐 정도로 추운 2번 수술방이었다. 마취가 끝나고 눈을 꼭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의료진들이 말하는 소리, 레이저로 살을 절개하는 소리와 냄새, 여러 도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걱정할 때쯤. 아기 나왔습니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왜 안 울지? 울어라 제발, 생각하자마자 울음소리가 들렸다. 엄마 무슨 걱정을 그렇게 많이 했냐고 안심시켜 주는 것처럼 사나운 울음소리였다. 덩달아 나도 아기만큼 큰 소리로 울었다. 울음이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웠다. 간호사 선생님이 이렇게 울면 처치가 불가능하다고 진정하라고 했다. 흐느끼는 내 볼에 아기 볼을 대주었다. 그렇게 따뜻한 온기는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인생에 이런 황홀한 ‘도착’이
몇 번이나 더 있을까.
- 박연준, <고요한 포옹>, 24쪽
다음 날, 아기를 안아보았다. 젖도 물려 보았다. 생의 의지가 느껴지는 본능적인 입의 움직임을 보고 나도 본능적으로 그 작은 입에 젖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10시간이고 아기를 안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 내가 건강한 아기의 엄마가 되다니! 두 팔로 아기를 안아 보다니! 나한테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다니!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지 수술 부위가 전혀 아프지도 않았다.
2870g으로 태어난 딸을 안고 5일 후 퇴원했다. 뜨거운 더위는 한풀 꺾인 늦여름이었다. 둘이 건강하게 조리원에 들어가는 것이 난임 기간 4년 동안의 소원이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세상의 모든 신에게 감사했다. 좀처럼 사진을 찍지 않는데 이때는 조리원 입구에서 남편에게 부탁했다. 아기와 나를 찍어달라고. 내 인생에서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도착한 것이다. 내 인생에 희망이 안 보일 때마다 이 순간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