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봄에의 믿음

시험관 10차를 하고 보니

by 카후나

4년간의 난임생활 이야기 연재를 마친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시험관을 10번 하면서 겪은 가능한 모든 것을 적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는지, 누가/무엇이 나를 살려주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매번 병원에 갔는지, 시험관 10번 후 결과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원래 목차는 10편이었는데 쓰다 보니 18개로 늘었다. 잘 아는 이야기니까 한 달이면 완성할 줄 알았는데 4개월이나 걸렸다. 온몸으로 겪은 이야기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쓸수록 모르는 것을 자꾸 알게 되었다. 직접 겪은 것도 다시 공들여 보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귀한 경험이었다.


이 기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난임생활을 시작할 때 내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 말해줬으면 어땠을까, 이 글이 단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연재였다. 그런데 쓸수록 이건 나에게만 해당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사람마다 다른 상황, 몸, 심리일 텐데 이토록 개인적인 이야기가 도움이 될까 글을 올릴 때마다 의심이 들었다. 특히, 유산의 이야기는 너무나 사적인 것을 공정인 장소에 내놓는 것 아닌가 싶어 한참 망설이다 겨우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근데 내가 지금 이거 쓸 때인가?

시험관 10차에 만난 그 배아는 무사하게 세상에 나와 성실하게 체세포를 늘리고 있다. 이제 생후 7개월, 8.4kg의 아기가 되었다. 이유식도 먹고 배밀이를 시작했다. 글을 쓸 시간에 아기와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현재의 빛나는 삶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힘들었던 날들은 이렇게 세세하게 기록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기억에서도 멀어지게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쓰길 잘했다.

무엇보다 연속적으로 흐르는 인생의 한 부분을 한 시기로 묶을 수 있었다. 그 시절에 나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했는지, 일상은 어떤 모양이었는지, 누가 나를 가장 많이 도와주었는지 선명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흩어져버릴 슬픔과 기쁨을 이렇게 남길 수 있어 감사하다. 비로소 한 시기가 정리된 느낌이 든다.

또한, 연재글을 쓰며 무엇 덕분에 지금, 빛나는 현재에 도착했는지도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쓰지 않았다면 어물쩍 지나게 되었을 것들에 대해 적을 수 있어 다행이다.


스페셜 땡스투,

1) 남편: 17편의 글을 쓰면서 매번 고마운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 때문에 시작한 시험관이었지만, 남편의 지지와 위로가 없었다면 3차 정도에 포기했을 것 같다. 이제야 뒤돌아 보니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곁에 묵묵히 서있는 그가 보인다.


2) 조카: 차수마다 실패하면 조카를 보러 갔다. 당시 3~4살이던 조카와 놀면 내 슬픔, 패배감, 막막함이 증발하는 것 같았다. 미셀 오바마도 난임 시절 조카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하던데 세상의 조카들에게는 이런 치유력이 있나 보다. 너는 모르지만, 고모를 정말 많이 도와주었단다, 나중 나중까지 항상 그 고마움 간직하고 너에게 잘해줄게.


3) 주사실 간호사 선생님들: 마지막 다닌 난임병원 주사실 선생님들 덕에 나름 경쾌한 마음으로 병원에 다닐 수 있었다. 차수마다 주사기를 챙겨주시며 난자 채취 개수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배아 이식하는 날 응원까지 해주었다. 누군가 마음 붙일 사람이 병원에 있다는 것 만으로 병원 가는 마음이 훨씬 부드러웠다. 난임병원을 졸업하는 날 손편지까지 챙겨 주셔서 눈물이 핑 돌았다.


무엇보다 이 글은 나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실패를 반복하니 희망의 불씨까지 꺼져버렸다. 불가능한 것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망 없는 일을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의 겨울을 지나고 있던 2022년 우연히 전시를 보러 갔다.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거기서 벌거벗은 채로 겨울 한 복판에 서있는 나무 그림을 잔뜩 보았다. 그 나무가 꼭 나 같았다. 잎 하나 없이 다 죽어가는 회색의 나무. 그러다 전시 제목을 다시 봤다. 눈앞의 이 나무들, 고목이 아니고 나목이란다. 심지어 봄을 기다린다고. 별안간 나도 죽어가는 나무가 아니라 아직 벌거벗은 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 단순한 생각의 전환이었지만 단박에 내 인생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박완서 님이 했던 말처럼. “바로 거기서 거기 같던 사고의 차이가 나로서는 절벽 끝에서 다른 절벽 끝을 향해 심연을 건너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


돌아보니 ‘봄에의 믿음’, 이게 4년간의 난임생활이 나에게 준 가장 큰 메시지다. 인생은 다시 나를 황량한 겨울로 던질 것이다. 그때 황량한 인생의 겨울을 다시 맞은 나에게 이 연재글을 편지로 보낸다. 힘 좀 내 보라고. 봄이 오는 게 지금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봄은 온다고, 이 나목을 보라고.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_ 박완서, <나목>, 9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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