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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Jun 27. 2024

2023년 1월 이야기

- 나의 첫 선배여성 김남희여사 


  사는 게 막막할 때 지금 내 나이 무렵의 엄마는 어땠을까 생각한다. 엄마가 스물여섯에 나를 낳았으니 엄마와 나는 25년 차이가 난다. 올해 내 나이 쉰다섯, 엄마가 쉰다섯일 때 나는 서른이었다. 겨우 서른인 나도 젊지만 쉰다섯의 엄마도 지금 생각하니 너무 젊다. 쉰다섯의 엄마는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멀리 떠나보내고 가장 자유롭고 활달하게 살던 시절이었다. 동생과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일에 바쁠 때였고 엄마는 여기저기 사찰을 돌아다니며 짧은 여행을 했다. 여행이라곤 하나 겨우 하루를 넘기고 다 큰 자식의 밥을 위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경남 사투리 억양이 남아있고 목소리가 커서 종종 화가 난 걸로 오해를 사는 엄마는 마산이 고향이다. 맑고 푸른 마산 앞바다에 배추를 절였던 이야기를 김장철이면 하곤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44년, 해방이 되기 일 년 전에 태어난 엄마는 일곱 살 전후 부모를 모두 잃었다. 엄마의 아버지, 나의 외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와중에 돌아가셨는데 보도연맹으로 엄마의 할아버지와 함께 끌려갔다는데 정확히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마산 앞바다에 던져졌다는 것만 알아서 배추를 절이던 마산 앞바다에 나물과 젯밥을 던졌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사진으로 봤지만 외할머니의 얼굴은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다. 내 또래들이 방학이면 가던 외가 집의 기억이 내게는 없다. 엄마도 자신의 엄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아이, 전쟁 통에 부모가 사라져버린 어린 아이, 그 아이는 어떻게 부모 없는 시간을 건너와 나의 엄마가 되었을까. 


 엄마는 안방 한켠에 언젠가부터 오래 된 낡은 사진첩을 꺼내두고 있다. 왜 그 사진첩을 장롱에 넣어두지 않고 꺼내 두냐고 물었는데 엄마는 그냥 거기 두라고 할 뿐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사진첩을 펼쳐보는 엄마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안경을 쓰고 다시 돋보기를 덧대서 봐도 잘 보이지 않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자신의 시간을 더듬는 엄마의 눈은 이젠 흐려져 있었다. 설거지를 마친 그릇에서 종종 고추 가루를 발견하고 욕실의 곰팡이도 그대로 둔지 오래 되었다. 안과에 가자고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더 이상 돋보기를 껴도 글자가 보이지 않고 혼자 장보기도 힘들어졌다. 그제야 찾아간 동네 안과 의사와 대학병원 의사 모두 이렇게 눈이 잘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참았냐고 했다. 대학병원의 북새통에서 길고 긴 검사를 받고 엄마는 결국 수술 날짜를 잡았다. 병원이라면 질색하는 엄마는 젊은 시절 친척이 하는 병원에서 간호사를 했다. 간호대학을 나온 간호사가 아닌 지금으로 치면 간호조무사였던 엄마의 원래 꿈은 화가였다. 내가 미대에 간다고 했을 때 반기지는 않았지만 말리지도 않았다. 엄마에게 배운 여자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 자기밥벌이를 하는 여자였는데 미대는 어정쩡한 선택지였다. 그러나 화가로 성공하지 못해도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기 밥벌이는 할 수 있다고, 자기 밥벌이를 할 줄 알면 더럽고 치사한 거 참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더럽고 치사한’ 건 남편의 돈에 생계를 의지하는 거였다.

 병원을 다녀 온 날, 엄마의 사진첩을 열어보니 남쪽 바다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이제 서른 정도의 젊은 엄마는 양산을 쓰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나들이를 나왔다. 아빠는 검은 라이방을 쓰고 잔뜩 멋을 부렸고 어린 나는 엄마의 차마 폭에 쌓여 아빠 손을 잡고 있다. 

 요즘 엄마는 자주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무덤도 납골당도 싫다면서 화장해서 마산 앞바다에 뿌려 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사 같은 건 지내지 말라고도 했다. 깨끗하게 이생에서 사라지고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이 까칠한 노년의 선배 여성에게 수술을 하면 고향 바다, 엄마의 바다에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2023년 1월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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