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늙어가는 이들의 안간힘도 겨우 보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사이 엄마와 병원에 다녔다. 몇 차례 지루한 검사와 고역스러운 대기 시간을 보내고 눈 수술은 잘됐지만 엄마는 겨울이 다 가도록 통 먹질 못하고 기운 없이 누워만 있었다. 잘 먹질 못하니 기운이 없고 기운이 없으니 기분은 늘 가라앉아 있었다. 기분이 가라앉으니 기운이 없는 건지도 몰랐다. 기운 없는 엄마 대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밥을 했다. 세탁기를 돌리면서 동시에 청소를 하고 찬거리를 사러 장을 보러 나가는 사이사이 뒷산으로 산책을 갔다. 예전엔 걷는 게 좋아서 산책을 했지만 이젠 혼자 있고 싶어 산책을 나간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 뒷산을 오르는데 동네는 일 년 열두 달 계절도 날씨도 가리지 않고 공사 중이다. 낡은 집도 멀쩡한 집도 모두 부수고 공동주택을 올리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낡은’이라는 말이 ‘늙은’으로 들린다.
홀로 나간 동네 뒷산엔 거의 노인들이다. 평일 낮 시간 산책을 나간 탓이겠지만 시난고난 기운 없는 엄마를 보다가 뒷산 여기저기 운동하는 노인들을 보자니 기분이 묘했다. 아직 날이 찬데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빠르게 걷는 노인도 있었다. 싸가지가 팔팔하던 젊은 시절엔 죽어라 운동을 하는 중년과 노년이 우스웠다. 오래 살고 싶은 그 욕망이 징그러웠다. 이젠 싹퉁 바가지 없는 오만한 젊음이 사라진 나도 과체중의 중년이 되어 동네 뒷산을 걷는다.
서울 변두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야트막한 동네 뒷산에는 근린공원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어린 시절엔 대머리 산이라고 불렀는데 대머리 산이지만 봄이면 산 벚꽃과 아카시아가 차례로 피고 초여름이면 찔레꽃이 피었다. 가을엔 도토리도 주웠다. 뒷산 산길은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었는데 엄마는 위험하다면서 늘 주택가 골목길로만 다니게 했다. 어린 시절엔 몰래 다니고 젊은 시절엔 늙음을 비웃으며 다니던 산길을 낡아가는 내가 걷는다. 늙은 부모 돌봄을 짜증스러워하면서 또 자주 이런 나를 자책하면서.
장관도 아니고 절경일리도 없는 동네 뒷산은 지난해 떨구지 못한 나뭇잎을 그대로 매달고 서있는 나무도 있고 늘 푸른 소나무도 있고 어느 집 화분에 있다가 버려진 작은 관목도 있다. 때때로 길고양이도 만난다. 사람들은 온갖 것들을 뒷산에 버린다. 버려진 식물도 유기된 고양이도 다 그런대로 풍경에 스며 자연스럽다. 자연은 자연스러워 자연인가, 어김없이 계절을 돌아 다시 봄이 오는 동네 뒷산에서 늙은 사람들 사이 낡아가는 나도 같이 걷는다. 세수도 하지 않고 대충 걸치고 걷는 산길에서 서로 신경 쓰지 않고 다들 데면데면 자기 길을 걷는다. 나무들도 데면데면 자기 자리에서 한결같다. 서로 얽힌 나뭇가지들은 자기 자리를 따지지 않고 얽혀서 자라고 그러다가 쓰러지면 곁의 나무에게 기대어 썩어가다 말라간다.
찬란하고 웅장한 국립공원이 아닌 근린공원 동네 뒷산에서 수수한 나무들을 만나고 온다. 울창하게 잘생긴 나무는 아니지만 새순을 올리고 꽃을 피우며 어김없이 돌아오는 새봄에 제 할 일을 하는 나무들을 만난다. 낡은 집을 허물듯이 사람을 새 사람으로 바꿀 수 없으니 낡은 몸을 달래며 살아내려고 뒷산을 걷는다. 노인들이 죽어라 하는 운동도 오래 살려는 욕망이기보다 버티려는 안간힘이겠지. 기운 없는 엄마도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뭐든 버려도 그대로 두는 뒷산에 사나운 감정도 복잡한 심사도 내려놓는다. 매일 무한 반복되는 쓸고 닦고 먹고 치우는 가사와 돌봄 노동이 지겹도록 한결같은 자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연을 닮은, 자연처럼 없으면 안 되는 이 노동에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르지. 나도 그랬다. 내가 하고 나서야 이 노동의 지겨움과 고마움을 알겠다. 내가 낡아가니 비로소 늙어가는 이들의 안간힘도 겨우 보인다. 그저 동네 뒷산, 수수한 숲을 걷다가 하루치의 평화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