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서로의 정확한 나이는 잘 모르는
봄이 오는 길목, 여행을 다녀왔다. 봄꽃을 보려는 여행도 아니고 명소를 찾아가는 여행도 아니었다. 그저 집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오직 떠나기 위한 여행이었다. 익숙한 공간과 습관들로부터 떨어져 낯선 곳에 낯선 사람으로 잠시 지내다 오고 싶었다. 며칠을 네이버 지도를 컴퓨터 화면에 띄어 놓고 마우스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지리산 자락의 동네로 가기로 했다. 세상은 편리해져서 인터넷으로 기차표와 시외버스를 예매하고 숙소도 예약했다. 여행준비를 마치자 그제야 내가 가려는 곳이 친구가 사는 곳이란 걸 알았다. 고독하고 싶어 홀로 가는 여행에서도 나는 아주 혼자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처음 가보는 아랫녘 작은 동네는 한적한 곳이었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너른 하늘 아래 고개를 돌려 마주치는 모든 산이 지리산이었다. 동네 뒷산으로 지리산이 있는 동네 구례에 친구가 산다. 서울에서도 주말이면 두물머리에 가서 농사를 배우던 친구는 오 년 전 구례로 내려왔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처음인 붙박이 나와 다르게 단출한 친구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훌쩍 인도로 네팔로 태국으로 가서 몇 달을 지내다 오고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서울에서 살다가 경상도 산골 어디쯤에서 이미 귀농을 경험한 친구였다. 늘 가장 싼 집을 구하려 다니고 자신을 치장하는 사회적 장신구에 흥미가 없는 담백하고 맑고 귀여운 사람이었다. 친구의 선택은 늘 과감하고 용감했는데 과감하고 용감해서 치르는 대가도 많은 거 같았다. 나이차가 꽤 나지만 둘 다 서로의 정확한 나이는 잘 모르는 친구사이 우리는 오 년 만에 만났다. 읍에서 일을 해야 하는 친구 집엔 내가 먼저 가 있기로 했다. 친구는 집주소와 버스 시간을 알려주면서 심심하면 재미로 내가 잘 방에 군불을 때도 좋다고 했다.
친구가 알려 준 버스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고 버스 안에는 온통 지긋하게 나이 든 여성들이 가득했다. 한 분은 내가 자리에 앉자 벌려진 내 배낭의 지퍼를 올려주고는 미소 짓고 또 한분은 노선표를 살펴보는 내게 어디에 내리는지 묻더니 내릴 때가 되자 친절하게 알려줬다. 서울 버스보다 작은 구례 버스는 너른 들판을 기운 좋게 달리다가 고개를 내쳐 올라가 바람이 씽씽 부는 산속 정거장에 나를 내려 줬다. 홀로 내린 동네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옛날의 돌담길이 그대로 남아있는 동네는 온통 산수유나무 천지였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망울이 이제 막 터지기 직전, 작년의 붉은 열매가 달린 채 꽃을 피워 올리는 산수유나무들이 동네 사람보다 많은 거 같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친구의 집 낡은 철문은 젓가락 두 개를 구부려 대문 고리에 걸어 놓았는데 누가 와도 그냥 열고 들어 올 대문이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친구의 집 마당엔 감나무와 모과나무, 거대한 로즈메리가 제멋대로 자라 있었고 동네 고양이 두 마리가 날 빤히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집 안에는 친구의 동거 고양이 또랑이가 마당의 고양이를 유리문 너머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또랑이도 길냥이였는데 논가 도랑에 심하게 다쳐 있는 걸 친구가 발견하고 구조한 고양이였다. 친구 없는 친구 집에서 길냥이 밥을 챙겨 주고 나를 요리조리 피하는 또랑이와 눈인사를 마치고 군불 때기에 들어갔다.
도시내기의 처음 해보는 군불 때기는 도무지 불이 붙지 않아서 아궁이 옆에 낙천주의자의 철학 어쩌고 하는 책한 권을 불쏘시개로 쓰고도 불이 붙지 않았다. 책에 이어 짚단을 가져오고 마른 잔가지를 차례로 아궁이로 밀어 넣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어느새 마당은 연기로 자욱하고 아궁이 옆에 나는 검불을 온몸에 붙이고 씩씩대고 있었다. 도착했을 땐 낮이었는데 집 마당엔 어둠이 내려 깜깜하고 길고양이 두 마리는 이젠 저녁밥을 달라고 검불을 뒤집어쓴 나를 따라다녔다. 지리산 아래 허술한 집, 군불은 붙질 않고 연기만 자욱한 채로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5월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