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 꾹 눌러 쓴 빛나는 '글자'들
올해 5월부터 서울의 한 기관에서 문해 교육을 받는 여성노인들에게 미술과 글쓰기수업을 하고 있다. 원래는 미술 수업만 하기로 했으나 시에서 나오는 지원금을 문해 교육으로 받아 중간 중간 글쓰기를 아주 조금만 넣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예산 심사에서 문해 교육인데 왜 미술 수업을 하냐는 지적을 심의 위원에게 받았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선 미술 역시 문해 교육이고, 문자가 생기기 전 인류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소통했다는 걸 고루한 심의위원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우여곡절을 끝에 지원금이 나왔고 미술수업과 함께 예정에 없던 글쓰기 수업도 하게 되었다. 글쓰기라곤 하나 그림을 그린 후 그림일기처럼 쓰는 서너 문장의 짤막한 글이다. 그러나 이 짧은 글쓰기도 수업을 듣는 분들은 힘들어한다. 정확히는 글자 쓰기를 힘들어 한다.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이 섞여 있는 두개 반을 수업 중인데 초등과정에 있는 분들은 맞춤법이 틀릴까 늘 고심한다. 글도 아닌 글자를 쓰는 것은 이분들에게 그리기보다 더 집중을 요하는 일이어서 머리도 아프고 늙어서 아픈 손가락도 더 아프다. 나는 이 분들이 꾹꾹 눌러 쓴 단순한 문장 속에 빛나는 ‘글자들’을 만나 자주 마음이 아득해지곤 한다.
첫 시간 제주바다와 청보리밭 사이 어린 자신을 그린 고 여사님은 자화상을 그리고 난 뒤 생각을 글로 써 보자 하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도 마음도 늙어 가는데 성격은 나이를 먹지 않아요. 성격이 늙지 않으니 종종 마음을 다쳐요” 라고 쑥스럽게 말씀하셨다. 앞 선 미술 시간엔 ‘그림을 그리면 웃을 일이 많아 참 좋다’고 하셔서 어설픈 선생인 나를 다독이기도 했다. 제주에서 해녀를 하다가 도시로 온 고 여사님은 물질을 해서인지 이명이 생겼지만 조용한 집에 있으면 더 괴로워 시끌벅적한 센터에 온다고 한다. 이명이 있어도 그까짓 꺼 늘 명랑하고 다정한 분이다.
5월에 만난 스물 세분의 6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이분들은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는 않는 우리가 ‘할머니’라고 부르는 분들이다. 자화상을 그리자고 하니 늙은 얼굴이 보기 싫다고 했지만 나에겐 스물 세 송이의 활짝 핀 꽃 같다. 당신들도 그걸 아는지 늙은 얼굴이 보기 싫다면서 사진을 찍자고 하면 얼른 포즈를 잡아주는 앞뒤가 다른 사랑스러운 분들이기도 하다. 기관에선 이분들을 ‘학습자님’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 호칭이 입에 붙질 않아서 학습자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학습자님들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했다. 지금은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른다.
시니어 미술, 취미 미술이라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하는 우아한 중년과 노년을 위한 미술사를 겸한 미술 강좌가 많다. 내가 오랫동안 드로잉 수업을 한 이들도 인문학 강좌를 듣고 나는 가보지 못한 유럽의 미술관을 다니는 이들이다. 더러 강의를 하는 나에게 포트폴리오를 보여 달라고 하는 수강자도 있었다. 다른 한편에선 시설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미술 수업도 있다. 고상한 미술 강좌나 시설의 미술 수업이나 결과물은 어슷비슷한데, 번드르르한 포장지, 겉치레에 혹하는 이는 ‘배운’사람들일 때가 많다. 예술도 사람도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인가.
문해 교육을 받는 분들과 수업을 한다고 하면 한글을 모르는 분이 아직 그렇게 많냐고 지인들은 되묻곤 한다. 사실 나도 놀랐다. 한글은 잘 모르지만 삶은 통달했을 이분들과 하는 그림과 글쓰기 수업은 오래전 초등학생들과 하던 미술 수업을 떠올리게 한다. 차이가 있다면 이분들은 사려 깊고 조금 수줍고 많이 너그럽다는 것이다. 학원을 뺑뺑이 도느라 늘 피곤하던 초등학생들 보다 더 생기롭기도 하다. 생기 넘치는 스물세 분을 만나고 온 날엔 마음은 흐뭇한데 몸은 힘들어 숙면을 취한다. 덕분에 몇 년간의 우울과 무기력을 날려 보내는 중이다. 수업을 기다리는 건 꽃 같은 이분들보다 바로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