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 : 007 택배 작전
8월 21일 택배가 왔다.
첫 줄부터 설렘이다. 사실 한국에서 캐나다에 오면서 역류방지쿠션을 필두로 동생에게 건네줄 짐들을 가득 가져온 나였지만 정작 땅콩이 옷이 부족해 보여 너무 준비 없이 온 것은 아닌지 눈치가 보였었다. 그래서 준비한 작은 선물.
한국에 있는 남동생에게 연락을 하고 쇼핑을 했다. 쇼핑을 했고 택배를 부친다는 건 엄마와 언니에게는 비밀. 그렇게 시작된 007 택배 작전. 일주일에 걸쳐 쇼핑을 했다. 8월 5일 들어온 월급으로 비상금을 만든 난 거침이 없었다. 남동생의 입막음을 위해 약간의 수수료도 넉넉히 부치고 그렇게 일주일 전 동생에게 택배를 보냈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렇게 도착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혹시나 집배원분이 그냥 지나칠까 봐 거실 창가에 앉아 고개를 수없이 돌려보며 택배를 기다렸다. 탯줄을 보관하는 병과 오십을 사진 촬영을 위한 소품, 멀리 나가 100일 기념 옷, 신생아용 아기띠 등등 서로 이거 어때 저거 어때하며 보냈던 시간은 그 설렘을 배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제 한 달이 넘어 두 달이 되어가는 땅콩이는 제법 크다. 그래서 옷 사이즈가 고민이었는데, 왜 6개월 옷이 아주 조금 큰 건지. 사실 소매만 한번 접었을 뿐인데 다리가 딱 맞아서 당황스러워해야 했다. 나를 위해 산 바디필링젤은 효과가 미미했고 겁이 많은 우리에게 아기띠는 난제였다.
실패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즐거워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함께 신이 났다. 예전을 떠올려보면 각자 엄마 몰래 택배를 사고 숨겨주고 함께 입어보고 서로 산 물건들을 잘 샀다면서 칭찬해 주던 때가 있었는데 나이만 어른인 나와 가정을 꾸리고 타국에서 강해진 진짜 어른 동생이 여전히 택배에 설레하는 오늘, 조금 가슴이 말랑말랑해졌다.
그런 기념으로 큰맘 먹고 산 사골 뼈로 사골을 끓였고 다시 한번 더 백김치를 담갔다. 레시피를 보고도 감대로 담가 이전 맛있다 한 백김치와 다른 맛을 풍기는 의문에 사로잡히고 사골의 불순물이 많아 한번 초벌 하듯 끓인 사골을 박박 헹구다 상의가 불순물 천국이 되어버렸지만 소소한 한국에서 온 선물이 뭐라고 붕 뜬 상태로 꽤나 의욕적으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메인은 택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택배라는 것이 받아 들기 직전 도착하는 날 기다림에 대한 설렘과 받아 들어 테이프를 뜯고 상자를 여는 순간의 벅참이 지나면 끝이 난다. 그렇다고 허무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조금 동생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매번 주기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사서 택배를 보내줬었는데 그때마다 이것저것 추가가 되면서 기다림이 길어졌던 동생은 언제나 물었다.
언니, 택배 보냈어?
그렇게 동생도 길어진 기다림에 물건을 추가하긴 했지만. 여기와 보니 알겠다. 기다림이 얼마나 작은 희망이고 즐거움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향수 같은 그리움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