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가을 소나타〉, 잉마르 베리만 감독
눈을 맞출 수 없는 시대.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는 얼굴을 맞대고 타인과 이야기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나갈 일도 많지 않은 나에게 ‘대면’ 없는 삶은 관계 맺기의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 당장 영화-쓰기도 5개월 이상 팀원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모임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 모임에서 몇 개월 만에 처음 팀원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던 얼굴들을 눈앞에 마주한다는 것이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온라인 모임을 할 때는 한 얼굴을 오랫동안 집중해서 볼 일이 잘 없다. 다인원 회의의 경우 모두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갤러리식 배열로 설정해 두는 편인데, 이로 인해 모니터 너머의 사람들은 작은 모니터 안에서도 분할된 크기만을 차지하게 된다.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의 실물과 대면할 때의 압도되는 느낌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 정말 다시 ‘대면’을 하게 되면 누구와도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지 걱정될 때도 많다.
이렇게 누군가와 마주 보는 경험 자체가 귀해진 시대에, 이전의 우리는 잘 ‘대면’하고 사는 사이였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 눈을 맞추기 힘든 관계 중 하나가 가족이 아닐까. 〈가을 소나타〉 속 모녀는 무려 7년이나 모종의 이유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이제 오랜만의 재회를 앞두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에바는 지난 7년 동안 감정들을 나름 정리해 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파트너의 죽음으로 어머니가 외로운 상황일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누그러진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딸의 초대에 어머니 샬롯도 응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첫 만남의 순간, 이 재회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외로우리라는 에바의 예상은 맞았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리라던 예상은 빗나가고 샬롯의 관심은 레오나르도를 간호할 때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와 일에 대한 것뿐이다. 샬롯 역시 딸을 찾아온 것을 첫 만남에서부터 후회하게 되는데, 둘째 딸 헬레나와의 원치 않았던 재회 때문이다. 헬레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지 않아 주로 언니 에바의 보살핌을 받았고, 병세가 심각해진 후로는 요양소에서 지내다가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샬롯은 자신이 일 때문에, 틀어진 부부 관계 때문에 방치했던 딸의 존재를 발견한 후 죄책감을 느낀다.
이처럼 에바가 편지를 보냈을 때, 그리고 샬롯이 편지를 받았을 때 서로에 대해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두 사람이 서로를 대면하는 상황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안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를 제대로 마주치지 않기를 택한다. 분명 서로 마주 앉아 대화하는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두 사람이 제대로 마주 보지 않는 앵글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샬롯이 처음 방에 짐을 풀며 레오나르도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샬롯은 에바를 직접 바라보기보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에바를 살핀다. 또한, 쇼팽의 전주곡을 연주하는 장면에서는 에바가 연주할 때는 샬롯이 에바의 뒷모습을, 샬롯이 연주할 때는 에바가 샬롯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상대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서로의 만감이 교차한다. 흥미로운 것은 샬롯이 연주에 집중해서인지,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인지 이 시퀀스에서 거의 자신을 노려보다시피 하는 딸과 눈을 한 번도 맞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오랜만에 만난 상대와 대화하고 싶지만 어쩔 줄 몰라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던 두 사람은 결국 그날 새벽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눈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이 마주침은 다정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샬롯은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막 만지는 악몽을 꾸고, 밖에 나와 에바와 마주치게 된다. 이때 두 사람은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자 지금껏 엄마와 눈도 맞추지 못했던 에바가 멈출 줄 모르고 서운했던 일들을 늘어놓는다. 용서해달라는 샬롯의 말에도 에바는 무반응으로 일관한다. 에바에게 쌓인 감정은 그렇게 한 번에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마주침을 계기로 오래 머물 계획으로 찾아왔던 샬롯은 급하게 에바의 집을 떠난다. 헬레나는 마치 엄마와 레오나르도가 자신을 떠났던 그 순간처럼 병세가 덮쳐옴을 느낀다. 이제 다시 상대를 마주할 기회는 사라졌다. 아마 앞으로 영원히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에바는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처럼, 에바는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을 거라고.
얼굴을 마주 보는 행위와는 달리, 편지는 즉각적인 쌍방 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즉각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대면 순간의 언어 사용과는 달리, 하려는 말을 고르고 골라 전달할 수 있다. 아마 두 사람의 관계는 앞으로도 그렇게 ‘비대면’에 그칠지도 모른다. 정제되고, 덜 솔직한 언어로 이루어진 소통만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내가 말한다고 해서 상대에게 나의 말이 온전히 전해질지도 알 수 없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편지를 읽는 에바가 카메라(엄마)를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마 에바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장면이 희망적인 것은, 적어도 샬롯만은 딸을 똑바로 보듯, 들을 준비가 된 듯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가을 소나타〉는 우리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나아질 거라는 확답을 주지는 않지만, 서로 마주할 수 있는 작은 용기만큼은 주고 있는 셈이다. 이 마주침이 비록 온전하지 못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