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식이,〈가을 소나타〉, 잉마르 베리만 감독
삶에 내던져진 건 오히려 아이였다.
아이는 ‘원망’을 원망하곤 했다.
오롯이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이 삶을,
나를 탓하는 이까지 있다니.
본인에게만 지독한 삶인 줄 알았는데 타인까지 망가뜨린 셈이었다.
이 시작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
“밑은 바라볼 수 없었어. 나를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으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 나는 떨어져 버린 나와 마주했지만,
그건 내가 될 수 없는 나였어.”
아이는 그를 몇 번이고 붙잡아야 했다.
노골적인 자기연민과 애달픈 일기와 같은 원망을 듣고 있자면,
아이는 감히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없었다.
지겹게 이어졌던, 위태롭지만 끈질기게 끊어지지도 않던 아이의 삶은
딱 그 정도의 어쭙잖은 연유로 발생했고.
이토록 모질게 주어져 버린 것이었다.
이 모든 고통의 억겁과 굴레에서 마치 관망자인 듯,
멀찍이 떨어져 있길 결정할 수 있는 것 또한
아이에겐 감히 가져볼 수도 없는 어떠한 권력처럼 보였다.
그만큼 고통의 분배는 적어지고
남은 이들이 짊어져야 할 무게는 가중되었다.
아이의 몫은 꽤 견고했다.
그는 비로소 속이 깨끗하게 비워지기라도 한 듯,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이는 묵직하고 불쾌한 포만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