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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진 Oct 30. 2022

일기독후감을 처음 쓰게 된 날에 관한 이야기

지음이의 일기 6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지음이의 일기를 보게 된 것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때는 2학년, 지음이는 한창 학교 숙제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맞춤법이 서툴렀을 때라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나에게 일기장을 가져와서 묻기 시작했다. 맞춤법을 봐주다가 일기 내용을 읽게 되었다. ‘오호~ 꽤 재밌는데?’라고 생각했다. 매번 일기를 쓸 때마다 맞춤법을 묻는 아들에게 네이버 맞춤법 검사기 활용법을 가르쳐줄까도 생각했지만(사실 나도 여기서 검색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그럴 수 없었다. 맞춤법을 봐 주는 척하며 슬쩍 아이의 일기를 읽는 것이 나의 소소한 기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보다 맞춤법 원리를 빨리 알게 된 지음이는 나에게 묻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편의 일기를 쓰는데, 어느 때는 두 편 다 나에게 묻지 않고 혼자 일기를 쓰고 가방에 넣는 날이 생겼다. 너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대범해졌다. 지음이가 잠든 밤, 몰래 아이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거실에 불을 켜면 아이가 깰까 봐 핸드폰 불을 켜고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야밤에 나는 일기를 읽으며 혼자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지음이가 일기를 쓰는 날은 일요일 저녁이였는데, 일요일 저녁만 되면 나의 눈은 온통 일기장이 있는 지음이의 책가방으로 향했다.      

 일기를 훔쳐본 지 보름쯤 되었을 때 어느 날이었다. 일요일 저녁 지음이는 책상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었다. 나는 저녁에 몰래 일기를 읽어 볼 생각에 벌써 설레기 시작했다. 설거지하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는지, 지음이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 기분 좋은 일 있어?”     

나는 도둑질을 들킨 것 마냥 깜짝 놀라서 아무 말이나 했다.

 “아..아..지음이가 스스로 일기도 잘 쓰고 엄마가.. 참 기분이 좋아”     

지음이는 내 말을 듣더니, 갑자기 일기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엄마, 내 일기 읽어 볼래?”     

이게 웬 떡인가. 몰래 보던 일기장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니! 그것도 방금 쓴 따끈따끈한 일기다. 나는 물었다.

 “엄마가 너 일기 읽어도 돼?”     

지음이는 대답했다. 

 “당연히 되지. 왜, 읽기 싫어?”     

 나는 아이의 마음이 바뀔까 봐 고개를 마구마구 저었다. 그렇게 나는 아들의 맞춤법을 봐주는 척 일기를 훔쳐보는 바늘 도둑에서 밤마다 아들의 가방을 뒤져가며 일기장을 훔쳐 읽는 소도둑이 되었고, 이 소도둑은 너그러운 주인을 만나 더 훔쳐보지 않아도 마음껏 일기를 읽을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야호!” 

 너무 감격스러운 그 날, 지음이의 일기는 이러했다. 이날의 일기를 읽어 보면 지음이가 나에게 일기를 읽어 보라고 말한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2021년 5월 9일 일요일

제목내가 커서 가족에게 해주고 싶은 것     

 나는 커서 올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될 것이다왜냐하면바른길로 가고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커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그래서 부모님과 세계여행을 할 것이다그리고 맛있는 음식도 해 드릴 것이고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시면 내가 건강도 챙겨드릴 것이다

 내가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은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음이의 일기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이 담겨있다. 친구를 향한 우정도 있다. 공부에 대한 고민도,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도 있다. 지음이의 일기를 읽으며 나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를 향한 우정, 일에 대한 열심,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들..     

 지음이의 일기 아래에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함께 경험한 일상을 아이의 시선,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재밌다. 미처 내가 헤아리지 못했던 아이의 마음을 일기를 통해 발견할 때, 나의 글은 엄마의 반성문이 되기도 한다. 생각보다 훌쩍 커버린 아이의 생각을 읽으며 대견하기도 하고 섭섭해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이야기는 벌써 여러 편이 되어 간다. 지음이는 자신의 열렬한 일기 독자가 생겨서 내심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엄마가 이렇게 자신의 일기를 읽고 또 다른 글을 쓴다는 걸 알고는 조금 의식하는 것 같다. 너무 웃기다.     

 지난주 지음이가 나에게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번 주는 내가 좀 바빠서 일기를 못 썼어. 괜찮아?”     

 벌써 작가처럼 행동하는 이 녀석을 어찌할까. 내가 너무 띄워준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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