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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진 Oct 30. 2022

개학한 날

지음이의 일기 8

개학한 날

2022년 9월 1일 목요일     

개학한 날

 나는 이번 주 화요일에 개학을 했다

개학이 너무 빠르고 방학이 너무 짧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이 조금 있었다

학교를 오랜만에 와서 시간표랑 점심시간이 언제인지도 까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새로 전학 온 예준이와도 친해졌다

집에서 숙제를 빼먹고 안들고 왔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많이 들었다다행히 빼먹고 안가져간건 없었다

오히려 숙제를 잘 해왔다고 선생님께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이제 다시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해야겠다


우리집에는 2명의 초등학생과 1명의 학교 선생님이 살고 있다. 

어제부터 이 세 사람은 몇 가지 신체적, 심리적 증상을 보였다. 증상은 아래와 같다.


1.식욕이 왕성하다.

2.배가 아프다. 

3.밤에 잠이 잘 안온다.

4. 학교를 왜 가야하는지 계속 묻는다.

5. 깊은 한숨을 쉰다.


 나는 이 증상의 이름을 “개학 전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배가 자주 아픈 것과 식욕이 왕성한 것, 밤에 잠이 잘 안오는 증상은 딱히 심각하거나 특별한 증상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개학 전이라는 게 문제다. 이들에게 개학 전 아주 작은 신체 증상은 하나라도 있다면 이것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이들은 왜 학교를 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도 마구 쏟아 낸다. 나는 이런 반응에 익숙하다. 매번 개학 때가 되면 반복되는 레파토리 같은 것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없이...     

 그래서 나는 개학 전 증후군에 맞서는 몇 가지 처방전을 가지게 되었다.

1.일단 많이 맛있는 것을 먹여라. 배가 고프면 예민해진다. 기분 좋게 학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공복을 유지하지 않도록 좋아하는 간식을 늘 집에 배치해둔다. 

2.많이 먹었기 때문에 자주 배가 아플 것이다. 배가 아프면 절대 잔소리(“니가 간식을 많이 먹었으니까 배가 아프잖아” 등등) 하지 말고 배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져준다. 그러면 곧 화장실로 갈 것이다. 

3.개학 하루 전날 밤은 정말 긴장의 시간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들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당연하다. 방학 내내 늦게 자던 습관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절대 잔소리 금지. 옆에 누워서 아이의 걱정, 불안함을 함께 듣고 공감해 준다. 숙제를 집에 두고 갈까봐 걱정한다면, 일어나서 확인 시켜주면 된다. 아이가 잘 때까지 옆에서 토닥여 준다. 

4.학교를 왜 가야하는지 묻는다면 이 말은 학교를 가기 싫다는 이야기와 같은 말이다. 왜 학교를 가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왜 학교를 가기 싫은지 물어보자. 들어보면 그냥 받아주고 공감해 주어야 하는 이야기도 있고, 객관적으로 알려주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대부분은 공감해 주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사실 어른들도 주말이 지나면 월요일에 출근하기 싫은 것처럼, 그래서 입에 “출근하기 싫다. 회사 가기 싫다.”를 달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5. 한숨 릴레이가 시작된다면 가족 모두가 즐겨 부르는 음악을 자연스럽게 튼다. 흥얼거리거 나 따라 부르지 않으면 안될만큼 흥이 나는 모두가 즐겨 부르는 노래, 우리를 반응하게 하 는 노래를 틀어야 한다. 우리 가족에게는 “WSG워너비 클링클링”이 그런 곡이다.      

 2년 전 어느 날이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개학을 앞둔 지음이가 학교를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왜 학교를 가야 하는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아주 열심히 설명을 했다. 학생이니까 학교를 가야하고, 학교를 안가면 너는 혼자 집에 있게 되고, 막상 학교 가면 잘 할꺼다.... 그때 지음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 알아요. 그냥 학교 가기 싫다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나는 얼굴이 화끈 거렸다. 그냥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면 되는건데...

지음이의 일기를 읽으며 2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지음이와의 그 대화를 통해 나는 개학증후군 처방전을 갖게 되었다. 그냥 들어주고 공감하면 된다. 몸으로 마음으로


 여름방학이 끝이 났다. 아이는 책가방을 메고 신발 주머니를 들고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방학이 짧아 아쉽다. 시간표와 점심시간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낯설다. 숙제를 빠트렸을까 봐 걱정도 된다. 하지만 새로 전학을 온 친구와도 하루 만에 친해지고 “이제 다시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야겠다.”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었다. 


 계속될 것만 같았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공기가 차갑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오는 변화. 아이의 성장도 그러하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믿고 함께 천천히 걸어간다면 모든 계절을, 모든 성장을 함께 경험하고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출근하기 싫다고 한번 말해볼까? 지음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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