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진 Oct 30. 2022

교육과정 발표회

지음이의 일기 5

2021년 10월 8일 금요일     

제목교육과정 발표회     

 나는 얼마 전에 교육과정 발표회를 했다

나는 퀴즈쇼를 했는데 조금 나중에 해서 친구들이 하는 발표도 보았다

나는 현준이가 노래를 크게 잘 부르는 것 같았다. ‘연극에서 배지혜가 나그네 역할을 실감나고 재미있게 잘 표현한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잘 했는지못 했는지목소리가 너무 컸거나 작아졌는지퀴즈 문제가 어려웠는지쉬웠는지 잘 모르겠다친구들이 잘 했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교육과정 발표회 시즌이다. 교육과정 발표회란 일 년간 교육과정 안에서 배운 학습 내용을 부모님을 초대하여 발표회 형식으로 보여주는 시간이다. 반별로 진행되고 한 시간 정도로 진행이 된다. 아이들은 한 달간 혼자 또는 팀을 이루어 주제를 정하고 연습을 한다. 부모님을 초대하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니 아이들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발표회를 준비한다. 

 지음이의 일기를 읽으니 나도 기억에 남는 교육과정 발표회가 있다. 바로 3년 전, 첫째 은율이가 3학년, 둘째 지음이가 1학년이 되던 해다. 특별하다면, 둘째가 학교를 입학하고 처음 하는 발표회라는 것이고, 두 아이의 발표회를 동시에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특별한 미션이 있다는 것이다.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나는 회사 반차를 쓰고 아이들 학교에 갔지만, 두 아이의 발표를 보지 못했다. 

발표회는 반별로 진행되는데, 모든 반이 같은 시간에 진행된다. 둘째는 일학년이라 교실이 2층, 첫째는 3학년이라 3층 옆 건물. 두 아이의 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보기 위해 조금 일찍 가서 동선을 먼저 파악했다. 

 2층에 있는 지음이 반에 가서 먼저 아이와 눈인사를 했다. 

‘엄마, 왔어. 오늘, 잘해~’ 

그 후 발표회 순서지를 빠른 속도로 확인했다. 

지음이의 순서는 3번째였다. 

그리고는 바로 은율이 반으로 뛰어갔다. 은율이반은 발표회가 벌써 시작되었다. 은율이는 엄마가 왔는지 궁금한지 계속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 은율이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 왔어~’ 그리고 순서지를 확인했다. ‘은율이.. 악기연주는...6번째. 좋았어. 지음이 발표 보고 오면 되겠다.‘     

 나는 다시 달렸다. 옆 건물 아래층에 있는 지음이 반에 도착했다. 그런데... 지음이 발표가 벌써 끝나 버린 것이다. 막 발표를 마친 지음이는 무대에서 내려와 자리로 앉고 있었다. 아이는 헐레벌떡 뛰어온 나를 발견하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인생 최초의 초등학교 발표회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이도 안 것 같았다. ‘아…. 안돼….‘ 뒷자리에 서서 아이의 뒤통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어떻게든 아이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일부러 더 큰소리로 손뼉도 치고, 눈빛으로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순간, 은율이가 생각났다.      

 학교도 일찍 와서 동선도 체크하고, 아이들 발표 순서도 확인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원피스를 입고 있다는것도 잊은 채 기나긴 학교 복도를 달렸다. 계단을 두 개씩 한꺼번에 올라갔다. 턱까지 찬 숨을 헐떡이며 은율이 반에 도착했다. 맞다. 그렇다. 교육과정 발표회는 은율이의 발표 순서를 훌쩍 지나 거의 모든 순서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너무 미안해서 아이를 쳐다볼 수 없었다.           

 이날 발표회가 끝나고 부모님들은 돌아가고 아이들은 수업을 이어서 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뜻밖에 아이들은 함께 한 다른 친구들의 발표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엄마, 마술쇼 했던 성윤이 봤어? 마술 모자 인터넷에서 샀데.“ 

”응, 봤지. 어쩐지 모자가 좋아 보이더라. 모자 안에 뭔가 속임수가 있는 것 같아“     

”엄마, 합창하는 아이들 봤어?“ 

”응, 봤지. 여자 2명이랑 남자 1명이던데, 어쩜 화음을 잘 넣니?“     

정작 우리 아이들의 발표는 보지 못했지만, 반 아이들 발표회는 거의 다 보았다. 그래서 반 친구들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음이도 발표회 때는 엄마가 없어져서 눈물이 났지만, 나중에 엄마가 다시 와서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나는 내 자식의 발표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함께 준비한 친구들의 발표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고, 그 모든 것을 엄마와 공유하고 싶었던 것 같다. 3년이 지난 오늘 지음이의 일기를 읽으니 다시 그때가 떠올라 웃음이 난다. 역시 지금도 아이는 친구들의 발표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해주고 있었다.      

 올해는 지음이에게 

”정말 멋져. 잘했어“라고 꼭 현장에서 이야기해줘야겠다. 

이전 05화 혼자 물리치료 받은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