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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룩스 Sep 14. 2023

임진왜란과 꿈


 임진왜란을 1년 앞둔 신묘년, 선조(조선 14대 왕)는 괴이한 꿈을 꾸게 된다. 그 꿈은 웬 여인 하나가 숭례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 여인의 한 손에는 볏짚이 들려 있었고, 온몸은 피로 칠갑을 한 상태였다. 여인은 성 안으로 들어온 뒤 곧장 궁궐 쪽을 향해 걸어갔는데,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가 여인이 지나는 자리마다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이내 궁에 다다른 여인은 궁궐에 불을 질러버리고, 불길은 금세 퍼져나가 온 궁궐을 집어삼켜 버렸다. 

 궁궐이 온통 잿더미로 변해버리는 장면에서 깨어난 선조는 꿈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이를 몹시 불길하게 여겼다. 이 꿈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어버리는데, 1592년 임진년에 왜적들이 조선 땅을 침략하여 곳곳을 불태우고 유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선조의 꿈에서처럼 도성마저 불타게 된다. 

 훗날 호사가들은 이런 선조의 꿈을 풀이하며, 볏짚을 들고 있는 여인에 주목했는데 ‘계집 녀(女)자와 ‘벼 화(禾)’자를 합친 모양이 왜나라의 ‘왜(倭)’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하늘이 임금에게 미리 재앙을 알려준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선조의 꿈 이야기처럼 임진왜란은 역사의 굵직굵직한 순간들에 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진다. 선조의 꿈이 임진왜란이 발발할 징조를 미리 알려준 꿈이라고 한다면, 당시 명나라의 황제였던 만력제가 꾸었다는 꿈은 조선에게 있어 큰 도움을 주게 되는 꿈이다. 

 명나라의 황제 만력제는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꿈을 하나 꾸게 되는데, 황제의 꿈에 관우가 나와 말하기를, “형님, 아우가 위험한데 어찌 모르는 척 하신다는 말입니까? 형님이 도와주셔야죠.”라고 했다고 한다. 즉 꿈속에서 만력제는 유비였고, 조선은 장비였던 것이다. 평소에도 관우를 존경했던 황제는 그 꿈을 꾸고 난 후에 조선에 20만에 이르는 대군을 파병하고, 자신의 비자금을 이용해 쌀 100만석을 조선에 보낸다.

 만력제는 중국인들에게 4대 암군 중 으뜸이라 여겨지는 황제로 재위기간 48년 중 30여년 이상을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았고, 국가 재정을 무시하고 개인의 비자금을 쌓는 데만 힘을 쏟았던 황제였다. 그런 황제가 조선의 전쟁에는 20여만에 이르는 군대를 파병하고 자신의 비자금까지 써서 쌀 100만석을 보낸 것은 그가 꾸었다는 꿈 이야기를 빼면 설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잇몸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논리로 일본의 군대를 조선 땅에서 격퇴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명나라에서 일어난 반란과 이민족들의 침입에도 자신의 돈은 한 푼도 내놓을 수 없다며 명나라 장군들의 지원요청까지 거부하던 황제였으니 말이다.

 중국인들은 그런 만력제를 가리켜 도대체 ‘네가 명의 황제냐, 조선의 황제냐’라는 비아냥을 담아 ‘고려천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속 꿈에 대한 이야기는 이순신 장군의 조카 이분이 쓴 『이충무공행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임진년 5월 29일, 이순신 장군은 군영에서 잠시 눈을 붙이던 중 기이한 꿈을 꾸었다.

 “일어나라! 적이 코 앞에 이르렀다.”

 백발노인이 나타나 그를 발로 차며 깨우는 것이었다. 이에 놀라 잠에서 깬 이순신 장군이 곧바로 출정하여 해상에 이르니, 과연 적들이 그곳에 이르러 있었다.


 기록상의 이 전투는 사천해전으로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거북선을 투입한 전투다. 이 싸움에서 그는 왜선 13척을 격침하고 수많은 왜군들을 토벌하며 대승을 거뒀다. 

 『이충무공행록』의 기록에서 이순신 장군의 꿈에 나타났다고 한 백발노인은 『난중일기』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는데, 왜군의 적선 133척에 13척의 배로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과 관련한 기록에서이다.


 정유년 9월 13일, 꿈이 이상했다. 임진년에 승전할 때 꾼 꿈과 거의 같았다. 대체 무슨 징조일까.

 

 정유년 9월 15일, 이날, 꿈에 신인(神人) 하나가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질 것’이라 가르쳐 주었다.


 위의 기록 속의 정유년 9월 13일과 9월 15일은 각각 명량해전 사흘 전과 하루 전의 기록이다. 명량해전 당일인 정유년 9월 16일의 난중일기 내용을 보면 이순신 장군조차 ‘이번 싸움은 참으로 천행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명량해전은 13척의 배로 133척의 적선과 맞서 싸운 전투라고 하지만 사실상 꽤 오랜 시간을 이순신 장군의 배 1척이 적의 함대 전체를 막아 세운 전투이기 때문이다. 왜군 함대의 규모를 보고 사기가 떨어진 나머지 12척의 배가 나서지 못하는 동안 이순신 장군은 홀로 함선을 이끌고 나가 왜군의 함대를 막아 세웠던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분전을 보고 나머지 배들이 하나, 둘 전투에 합류하기까지는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왜선 31척을 침몰시키는데, 심지어 단 한 척의 판옥선도 잃지 않고 만들어낸 승리였다.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정유년 9월 15일의 기록처럼 꿈속에서 신인(神人)이 일러준 방법을 사용했던 것일까?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이후 고화도라는 작은 섬으로 군사를 물린 뒤, 108일간을 머물며 판옥선 40척을 추가로 건조한다. 그렇게 원균의 칠천량 해전 대패 이후 괴멸된 것이나 다름없던 조선 수군을 재건한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 단 한번의 전투에서도 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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