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길
2021년 연말 저는 온라인상에서 아주 핫한 신용카드를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두 장씩이나. 사실 저는 그 카드에 대해 이전에 친구를 통해 듣긴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신용카드 발급이 내키지 않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땐 제 마음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지요. 얼마 뒤 그 혜택이 너무 커서 카드사에서 12월 31일 자로 신규 발급을 중단한다는 정보성 글이 결국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저는 부리나케 한 해의 마지막 날 오후에 핸드폰을 붙들고 뭐에 홀린 사람처럼 카드 신청을 했고 이듬해 초 무사히 카드 두 장을 제 손에 쥐었습니다. (당시 남편에게도 만들라고 권유했지만 본인은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게 싫다며 거부했습니다.)
2022년 지난 1년간 남편은 육아휴직을 하고 저는 일을 했기에 주로 제 명의의 카드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 받은 신용카드 두 장 중 한 장도 남편에게 건네주며 부지런히, 알뜰하게 사용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카드로 말할 것 같으면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상당해서 제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꽤 많은 그런 카드였기 때문입니다.
일 년 동안 진짜 진짜 부지런히 사용하고 저희는 이 카드 혜택을 쏙쏙 뽑아내며 잘 써왔노라고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피킹률이 상당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남편은 중간중간 이 카드를 없애는 건 어떨까? 하고 조심스레 제안을 해왔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어요. 신용카드 사용은 우리 가정의 지출 항목별 잔액 확인이 힘들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요즘 사람은 누구나 잘 알듯 신용카드는 대금 처리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카드대금 결제일을 따로 지정해야 하고 그날에 출금이 가능하죠. 저는 그 단점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즉시 결제 기능을 활용하여 빠르게 카드대금 정산을 바로바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셋에 워킹맘인 제가 실시간으로 모든 카드대금을 바로 결제로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은 바로 정산하지 못한 카드 결제 건이 정기결제일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돌려받은 포인트가 두둑했기 때문입니다. 카드사 포인트(심지어 현금화 가능)는 마약 같은 존재여서 카드를 없앨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적립된 포인트를 보면 그 생각이 싹 사라지곤 했어요. 그렇게 12개월간 (신용카드에 대한) 조금의 의심과 (돌려받는 포인트에 대한) 커다란 확신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이어왔던 것입니다.
올해 남편과 저는 직장에서 연말정산을 한 이후로 다시 가정경제에 대한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월 말에는 결국 지금보다 더 허리띠를 쫙쫙 졸라매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여전히 새는 돈이 있으며 그 부분까지 차단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 사용을 중지해야 하지 않겠냐는 일관되고 현실적이며 단호한 대처방안까지 거론되었어요.
문제는 저 자신이었습니다. 저의 결단이 필요했어요. 어떻게 만든 신용카드인데, 그리고 얼마나 혜택이 좋은 카드인데 이걸 버릴 순 없지. 헤어진 남자 친구를 놓아주지 못하는 미련녀처럼 신용카드의 좋았던 점을 무수히 떠올리며 이걸 버릴 순 없노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보름쯤 지나고 나서는 저도 결국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게 되었답니다. 이 신용카드를 보내주기로......
신용카드 사용을 중단하고 체크카드만 사용한 지 이제 2주 정도가 지났습니다. 저의 첫 소감은 무엇일까요? 바로
매우 홀가분하다.
입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보다는 이제는 신용카드 혜택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이 더욱 큽니다. 이전에는 동네 마트를 가도 어떻게 하면 이 카드의 혜택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 결제 가격을 맞출 수 있을지 항시 고민했습니다. 손에는 계산기 화면이 띄워진 핸드폰이 있었고 굳이 필요 없는 식품을 하나라도 더 장바구니에 담았어요.(하나를 더 산다 해도 어차피 포인트로 돌려받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저뿐만 아니라 남편까지 이 카드의 피킹률은 인정할 정도였으니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상당히 쓰였다는 점은 카드 사용을 중단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카드 앱 접속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신용카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즉시 결제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여유가 있을 때는 그렇게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일상에 신경 쓸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었고 카드 결제 알람이 올 때마다 핸드폰에 접속하는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즉시 결제를 하느라 앱에 접속해야 하는 번거로움, 그리고 즉시 결제를 하지 못했을 때(카드 대금이 버젓이 남아있을 때)의 스트레스 등 이 모든 것들이 제게는 유익함이 아니라 해로움이었더라고요.
이제는 지출 관리가 좀 더 수월해졌습니다. 이번 달 예산에서 오늘까지 사용한 금액이 얼마이고 앞으로 월말까지 얼마를 더 쓸 수 있는지 가늠하는 과정이 단순해졌습니다. 삶이 조금은 더 가벼워졌다고나 할까요. 신용카드의 혜택을 신경 쓰는 게 제 일상에 이렇게 피로를 더하는 일인지 몰랐습니다. 받은 금액이 많은 만큼 써야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일상 에너지 소비도 참 컸습니다. 사실 돈 지출이 없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 있을까 말까입니다. 그렇다면 최소 주 6일은 이런저런 소비를 하고 산다는 건데 그 시간 동안 매번 계산기를 두드리고 물건을 사며 저 스스로 알뜰하다고 생각했다니. 자만이 넘친다 싶어요.
그동안은 돌려받는 금액이 제게 크나큰 보상으로 주어졌기에 이런 일상의 피로도쯤은 감수할만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안 써보니 그게 더 절약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돈을 쓰고 그 소비금액의 몇 푼을 돌려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예 돈을 쓰지 않으면 그게 더 낫다는 거죠. 마음이 편하고 일상이 단순해지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며 오히려 제 삶에서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다시 신용카드를 쓰는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사진 mohamed_hassan,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