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은 축복받는 결혼의 상징&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흰색은 축복받는 결혼의 상징
기독교인들은 결혼식 때 순결함의 상징으로 흰색을 사용한 방면 중국인들은 붉은 색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색이라 믿기도 해서 붉은 색을 입었다. 심지어는 황제는 국빈을 맞이할 때도 붉은 색을 입었다. 흰 웨딩드레스의 시작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이다. 영국도 그 당시는 경제 불황이 아주 심하였다고 한다. 국민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국산 천으로 만든 흰색 드레스를 착용한 것이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결혼식장에 가 보면 모든 신부들이 흰 백색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에게 둘러쌓여 행복한 웃음을 하나 가득 머금고 있다.
흰색을 표현해 본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할 수 가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 인생은 흰색으로 시작을 하여 흰색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여 살다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에도 언성이 높아지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순간적으로 내 뺏기가 일수이다. 이럴 때마다 몸과 마음이 상하면서 한두 번 이상은 이혼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결혼은 전쟁터이며 매일매일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는 장소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중년남성들은 요즈음 이유조차 모르는 체 황혼 이혼을 당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들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있다. 1991년 일본의 여성들은 황혼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으며 그의 남편들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인터뷰 장면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결혼식은 성스러운 것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명화 중에도 성대한 결혼식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바로 “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이다” 신랑과 신부가 두 손을 꼭 잡고 결혼 서약을 한다. 색채로서 이 그림의 의미를 한번 정리해 본다면 신랑의 옷 색깔은 모자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가 갈색계통인데 한 마디로 갈색의 동류계열인 그라데이션이다. 신부의 옷 색깔은 초록색이며 그밖에 순수한 처녀성을 상징하는 흰색 베일을 쓰고 있다. 이때 갈색은 부와 명예, 포용력을 나타내며 초록색은 배려와 편안, 안정을 나타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의 역할 분담이 뚜렷하였나 보다. 이 그림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신랑의 짙은 베이지 색의 샌들이 현관문을 향해서 아무렇게나 벗어져 있고 신부의 다홍색 신발은 붉은 색 침실 커버의 밑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붉은 색은 잉태를 의미한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는 가족을 부양 하고 여자는 가정에서 가사와 양육의 의무를 다하여야 하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의 역할 분담은 거의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을 하는 그 순간부터 남자는 가족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먹여 살릴 준비를 하여야하고 여자는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고 아이를 잘 키우는 조신한 생활상이 이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그림에서 시사하는 바는 색으로 보여지듯이 갈색의 포용력과 초록의 배려와 편안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생판 모르는 남녀가 결혼을 하고 백년을 해로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기겠는가? 참고 서로를 사랑하면서 보듬고 나가는 것이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그러면서........ 참 살아 보면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야단법석이다.
남자들은 꼭 치약을 왜 중간부터 짜는지, 발을 씻고 나면 슬리퍼에 물을 흥건히 고이게 하는지 신문은 자기 혼자만 보는지 온 거실바닥이 신문지가 다 차지하고 있으면. 여자들은 화가 난다. 발 놓을 틈조차 없는 것 은 고사하고 눈앞에 있는 재떨이, 텔레비전 리모콘까지 그런 일을 여자에게 시킨다. 그러면 여자는 미주알 고주알 따지고 든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도 그렇게 깔끔하다고 한 마디로 단정짓기도 힘들 것 같다.
머리 빗고 머리카락 아무데나 질질 흘리고 다니지 않나, 속옷 갈아입고 목욕탕이나 침대 밑에 놓아두고 , 남자 밥그릇에 한 두 번 머리카락 나오게 하니 잘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되면 시시콜콜한 지나간 이야기까지 해 가면서 핏대까지 올려 가며 전쟁이 시작된다. 바로 백년의 장미전쟁으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그렇게 어렵게 이혼을 결심하고 가정법원에 가니 아침에 신청서 넣고 오후에 바로 이혼이 된다는 기사를 접했다. 홧김에 생각한 이혼이 정말 현실이 되어 버렸다. 정말 서로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우리들 가정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새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맹세를 하지 않았는가? 흰머리가 파 뿌리가 되도록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아니다 이제는 검은머리 파 뿌리가 되도록으로 바꾸어보면 백년해로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흰색은 왜?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할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혼자서 잘 놀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린 여자아이는 집 부근에 있는 영화관을 혼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본 영화의 제목은 어렴풋하게, 제목이 미워도 다시 한번, 그 당시 한국 영화의 정서가 여자는 얌전하게 흰빛의 한복을 입거나 화려한 색상의 한복을 입었다는 생각이 난다. 아주 슬픈 영화로 아이와 엄마가 헤어지는 장면에서 엄마는 하얀색 한복차림이었다. 아이를 부자 아빠에게 보내는 장면이 있었다. 흰빛의 한복은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한 것 같다. 아이는 부자 아빠에게 가지만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고 이제는 영영 이별을 해야 한다.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기쁨의 흰색이 있는 방면 슬픔의 흰색도 있다. 감독의 처음 의도와는 무관하게 컬러가 없어진 영화이다. 여러분들도 기억이 날 것이다. 아직까지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번쯤 우리들이 그 영화를 보고 다시 한번 놀랐던 영화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이다. 모노크롬의 유태인의 영화로 상연시간은 무려 3시간 50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 영화의 시작은 단란한 가족의 식사시간의 장면이다. 단란하게 식탁 앞에 둘러앉은 가족들 사이로 엷은 분홍색 촛대의 촛불의 초가 자연스럽게 타들어 가면서 색이 우리들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장면이다. 이렇게 색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 우리들은 무서운 공포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낀다. 엷은 유채색에서 갑자기 흰색과 검은색으로 바뀔 때의 그 광경은 정말 온 몸이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떤 공포보다 슬프고 두렵지 않을 수 가 없다. 컬러가 전해주는 메시지이다.
한번씩 기록영화. 전쟁영화를 보면 화려한 색채에서 과거의 흑백 화면으로 장면이 바뀔 때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화면을 주시 한다. 신들러리스트 처음 상영 했을 당시 그 영화를 본 유태인 가족이 갑자기 쇼크사를 일으켰다고 한다. 잔인하게 유대인들을 을 총살하는 장면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붉은 피의 얼룩진 색채를 보여 준다면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그 긴 롱 타임의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까? 함께 보는 몇 명은 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보지를 못할 것이다. 나는 원래 겁이 많은 편이다. 전쟁 영화, 살인 장면이 많은 영화에는 붉은색, 파랑색 등의 장면이 많은 편이다. 이 영화는 오히려 무채색로 바꾸며 사실, 진실, 꼭 잊지 말고 기억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주는 영화로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흰색과 검은색은 명도단계에서 고명도, 중명도, 저명도 단계로 나누어진다. 흰색은 순수하고 순결하고 순박하고 담백하다. 중간의 회색은 흰색과 검은색의 사이로 우유부단할 수 밖에 없다. 검은색은 가장 어두운 저명도이다. 빛과 어두움이다. 저명도0에서 고명도 10까지 흰색은 단언컨대 가장 우아하다는 말이 무색하지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