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된 관계 속의 관음-에드가 드가
-드가의 관심사는 예쁜 옷이 있는 풍경, 사람들의 역동성과 익명성, 빛의 색깔
어느날 내 눈 앞에 시커먼 연기가 스멀 스멀 하나씩 하나씩 나타나며 검은 구름 같이 떠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 앞에는 자꾸 뿌옇게 되며 눈부심이 심해 햇살을 볼 수 없고 햇빛이 있는 날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서야 했다. 나는 일반 사람이다. 그럼 유명한 화가의 입장은 어떨까? 드가의 집안의 유전병이었던 시력이상이라는 복병을 맞이하며 성격에도 영향을 주다.
발레리나를 표현하는 드가의 선과 형태는 아름답다. 유화는 물론이고 파스텔과 수채, 판화, 조각, 사진 등을 활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드가의 능력은 참 경이롭다.
에드가 드가 역시 미술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을 하고 수 많은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에드가 드가(1834.7~1917.9) 대대로 내려오는 은행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탈리아와 미국에 은행을 가지고 있던 친가와 미국에서 목화를 판매하는 기업을 가지고 있던 외가를 배경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가족관계는 매우 불행했다. 부유한 환경 덕분에 파리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에서 수학하고 소르본에서 법학공부를 준비하지만, 그 이후 화가가 되기로 하고 에콜 데 보자르를 다니며 앵그르에서 교육을 받고 난 뒤, 자비로 이탈리아를 유학하며 미술수업에 전념한다. 사실주의적인 초상화를 비롯해 역사화와 상식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탈리아 여행 중 그린 <벨렐리 가족> 위의 이미지, 고모 라우라와 고모부의 벨렐리 남자의 가족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가족 간의 거리감과 냉랭한 시선을 강조해 행복하지 않은 가족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드가의 그림들은 사람들과의 관계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단서는 찾아 보기가 어렵다. 모두 무심히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그의 가족사에서 엿 볼 수 있다. 그 외 할아버지는 미국의 루이지애나에서 목화사업으로 성공한 프랑스인었고, 그의 어머니는 미모의 크리올 여성이었다. 그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미국의 루이지애나에서는 프랑스인 부유층 남성과 흑인 노예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 크리올이 사회의 중간계급을 이루고 있었다. 드가에게는 아픈 성장가 있으며 젊고 아름다운 그의 어머니가 삼촌과 외도를 저지른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면서도 방관하며, 그리고 갓 스물이 안 된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열 명이 넘는 자녀를 낳은 후 서른 넘긴 나이게 이른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이런 성장사를 염두에 두고 보면 그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 트라우마가 어땠을지, 그 애증의 어머니가 드가의 나이13세 사춘기 청소년 시절에 돌아가셨다.
드가의 나이 40세에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남동생이 부도로 엄청난 빚을 떠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남이었던 그는 빚을 갚기 위해 발레극장, 오페라극장, 세탁소 같아 모델료를 지붏하지 않아도 되는 여인들을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빠른 속도로 그리곤 했다.
그의 불우한 가정사는 성격을 형성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점점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고 인상파에 합류하고 난 뒤에도 동료들과의 교류는 많지 않았다. 평소 결벽증과 소심한 행동을 보였다.
그가 소통과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겪으며 평생 독신으로 지낸 이유는 관음증적인 시선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림의 등장인물들은 얼굴이 선명하지 않고 뭉개져 있거나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며 뒷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로베는 드가의 성격을 "냉담하지만 성미가 급하고 소심하지만 표현이 신랄했기 때문에 주변 친구를 모두 적으로 만들었다."
50세를 넘어서면서부터 인생에 대한 허무를 느끼고 자신을 실패자로 생각하며 " 나는 바랐던 만큼 용기가 없었다." 라고 고백하지만, 남성 우월주의, 호감을 주지 않는 자만심 등은 일평생 변하지 않았다.
드가는 시력을 거의 상실할 무렵이 되자 작업실에 은둔하며 숱한 조각 작업에 몰두했고, 사후에 그의 집에서는 엄청난 양의 목욕하는 여인들의 조각이 발견되었다. 드가에게는 여성이란 정서적 관계를 맺기에는 위험한 대상이지만 자신이 경험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원천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에드가 드가는 그림 실력이 뛰어나고 잘 그렸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드가는 여성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반대로 여성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더 여성을 자세히 관찰했는지도 모른다.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죽는 후 엄청난 양의 목욕하느 여인들의 그렸다.
반대로 성인들은 미술을 통해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말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겪은 좌절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 난 그림에 소질이 없어, 난 똑 같이 그릴 수 없어."
어린시절 그린 그림에 대해 교사. 가족, 친구들 누군가가 한 생각 없는 흑평이 기억날지 모른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처럼 작가는 코끼리를 삼킨 뱀의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가를 이야기한다. 그의 그림을 본 이는 그것이 마치 모자같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의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슬프게도 그는 이런 경험이 이후에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려고 한다.
미술활동과 관련된 어린시절의 부정적 기억도 있겠지만 긍정적 경험들을 다시 기억하게 할 수 있다.
<미술관에 간 심리학 내용 107~120p,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