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심리학을 만나다-90회

아이와 같은 순수한 눈으로 - 파블로 피카소

아이와 같은 순수한 눈으로 -파블로 피카소


옷을 입을 때 늘 신경이 쓰인다. 바로 볼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볼륨을 있도록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처럼 옵아트 스타일로 옷을 입어보면 착시현상을 통해 내 스타일도 살짝 볼륨이 있어 보인다.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하나의 의미 있는 전체로 조직화하여 지각한 것.


게슈탈트는 독일어 gestalten<구성하다, 형성하다, 창조하다, 개발하다, 조직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의 명사형으로 전체, 형태, 모습이라는 의미가 있다. 개체는 단순히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슈탈트를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 자신의 욕구나 감정, 환경 조건과 맥락 등을 고려하여 가장 매력있는 혹은 절실한 행동을 게슈탈트로 형성한다.


만일 개체가 이러한 게슈탈트 형성에 실패하면 심리적 신체적 장애를 겪는다. 따라서 건강한 삶이란 분명하고 강한 게슈탈트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네이버 지식>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자기사랑이 적은 사람들은 마음도 몸도 병들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빨리 지쳐 가는 것 같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자신감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가 있다. 그리스여신처럼, 그리스의 신처럼, 예리하고 매끄러우며 절묘한 선들, 피카소의 자아도취에 빠진 초상은 참으로 유머러스하다. 금방이라도 종이에서 뛰쳐 나올 것 만 같다.


아이들은 움직이는 사람,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을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그려야 할 지 어려워하며 의자 다리는 4개인데 이걸 어떻게 그리며,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은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울상이 되는 아이들도 많다. 피카소 역시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그릴 수 없을까?를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그리고 버리고 그리고를 계속 했다고 한다.


- 게슈탈트 심리학과 만난 새롭게 보기와 다르게 보기를 시도한 시각 예술의 혁명가


내가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리기까지는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 -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해부도> 그림을 보면 투시도, 수학 방정식, 과학, 모든 종합예술을 총동원 한 듯. 형태를 계산하듯이 만들어 선의 형태, 원뿔의 형태, 등 모든 형태를 다 동원한 것 같다.


스페인을 닮은 그의 정열적인 외모 또한 그의 그림만큼이나 시선을 끌었다. 20세기 피카소를 본 조르주 브라크는 "불을 뿜기 위해 기름을 마시는 광대"처럼 그림을 그린다고 묘사했을 정도로 그림 앞에서 그의 정열은 폭발적이었다. 여러개의 캔버스를 펼쳐놓고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던 피카소는 언젠가 자신의 작업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 나는 화폭에 무엇을 옮길지 사전에 모르고, 심지어 어떤 색을 사요앟게 될지도 모른다. 작업하는 동안 내가 무엇을 그리는지 모른다. 그림을 시작할 때 마다 나는 자신을 공중에 던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언제 땅에 내려설지도 전혀 모른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림 작업을 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그의 나이 92세였던 1973년 4월 전날 밤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던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 가 다음 날에 일어나지 못했다. 죽기 직전까지 고통없이 그림을 그렸던 화가의 일생은 그야말로 예술에 몰입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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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글, 그림, 음악, 음식, 여행 등으로 꼽을 수 있다. 피카소는 스페인 여행을 더불어, 그의 친구 카를 로스 카사게마스의 자살에 영향을 받아 엄숙한 색깔을 선택하며 매춘부, 거지, 알코올 중독자와 같이 음울한 소재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 자신은 훗날 "나느 카사게마스의 죽음을 알고부터 푸른색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라고 회상했지만 예술역사학자인 Helene Seckel은 "우리가 이러한 심리적인 정당화를 지지하는 것이 비록 옳을지라도, 사건의 연대순을 보는 시각을 잃으면 안 된다. 라며 그는 죽은 친구의 작업실에서 머무르며 수 주간 앙브루아즈 볼라를 위한 그의 전시회를 준비했다. 라고 기술했다.


청색시대의 그림을 보면 남자고 여자고 외롭고 삶에 지쳐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파랑색 계열만으로 비참함, 슬픔, 고독, 외로움, 죽음, 공포, 고통, 굶주림, 칠흙같은 어두움 속에서 겨우 사람만 비추어주는 희미한 불빛 속의 인간의 나약함, 기아에 허덕이는 모습. 청색이 주는 이미지는 긍정적 메시지보다는 부정적 메시지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늘부러져 있는 겨우 안간힘을 써 보는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아야 하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에게도 희망은 있을까?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될까? 그냥 있고 싶다.


이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 발견했다.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 빵을 먹을까? 지금 이대로 잠시만 있을까? 이 빵을 먹지 말고 그냥 둘까? 몸의 기운을 차리기 위해서 잠시 이대로 있자.

두 사람다 죽을 마음은 가지고 있지 않다. 청색은 또 다른 미래와 희마을 보여준다.

희미하고 어두운 청색 사이로 하얀 빛이 들어 온다. 남자의 손목과 팔 사이로, 여자의 다리와 발목 사이로

빛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고:미술관에 간 심리학, 141p, 네이버지식백과, 이미지: 한겨레신문, 서울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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