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그림은, 나의 또 다른 인생은 아닐까? - 에브바르트 뭉크
우리 엄마도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생이 여러번 바뀌는 것 같다. 난 부모님 덕분에 그렇게 고된 인생을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의 우리들의 엄마 여자의 인생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난 우리 엄마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넋이 나간 상태로 한 동안 앉아 있거나 엄마는 방에 불을 끄고 수면 안대를 쓰고 조용히 음악을 듣는 모습이나 갑자기 버럭하며 화를 내기도 하는 모습 등. 미술심리 공부를 하며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가 정신적으로 힘들어 그 마음을 달래 보려고 갖은 노력을 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화를 내기도 했구나. 우울증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수양 버들가지가 척척 늘어져 있는 빨랫터에서 빨래를 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그림도 잘 그렸다. 내 미술숙제를 엄마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서 내 이름만 적어서 보냈다. 항상 게시판에 붙었고, 선생님은 칭찬까지 해 주셨다. 그런 내 그림은 다른 친구들의 그림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늘 뭉크의 그림에 나오는 세 여자처럼 우리 엄마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혼자서 앉아 있기도 했다. 난 뭉크의 그림을 대하는 순간 거부감도 없이 그냥 편안하게 감상을 했다.나에게 뭉크의 그림 정감이 가는 그림이었다. 난 생명의 춤이라는 그림을 좋아하나다.
이 그림은 많은 의미를 전달해 준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컬러가 있을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설명을 해 준 후 흰옷으로 시작해서 다양한 유채색의 옷을 입고 살다가 마지막은 다시 검은색의 재로(흙) 돌아간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림으로 파악해보는 나의 뭉크가 받은 상처 뭉크의 내면세계와 별반 다른 것은 없다.
뭉크의 <생명의 춤>을 통해 난 색채심리 수업에 많이 응용했었다. 제목도 거창하다. 당신의 인생은 무슨 색깔로 표현 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거나 색채심리 수업을 진행했었다.
어린시절 받은 상처는 오랜시간을 두고 트라우마로 남아서 나에게 늘 아픈 추억으로 따라다닌다. 나 역시 우울증이 심한 엄마의 증상을 나도 모르게 닮아 있고 그런 행동을 한번씩 하고 있는 날를 발견할 때는 아 정말 조심해야겠다. 그러나 매번 쉽지는 않다. 뭉크는 가족의 죽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데서 오는 상실감은 흔치 않은 트라우마로 아버지의 폭력성으로 어렸을 때부터 받은 학대로 그 폭력에 대한 불안과 소외감의 공포는 어린 뭉크에게 지우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1889년 일기에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의 아버지는 정신병적일 정도로 신경질적인 기질을 지니고 있었고 강박적인 종교인이었다. 나는 그로부터 광기의 씨앗을 물려 받았다, 공포, 슬픔, 죽음의 천사들은 내가 태어난 날부터 내 곁에 있었다(Prieadux,2005)."
뭉크의 어린시절 청소년시절에 겪은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을 목격한 후 트라우마와 아버지의 살벌한 양육방식은 부정적인 정서를 뿌리내리게 했다. 늘 의심과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부정적인 인지적 편향을 유도했을 가능성도 크다. 난 어렸을 때 부터 두 가지 생각을 하는 두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때로는 나 보다 나은 사람들을 보면 저들은 저런 환경이라 저렇게 잘 될 수 밖에 없다고 저들은 금수저 나는 흙수저 그리고 잘 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뇌물이라도 죽었나 하는 생각도 한 동안은 해 보았던것 같다. 인지적 편향의 성격이 강했다. 정신적 외상과 불안을 유발하는 반복적으로 노출된 불안을 유발하는 문제라도 드러나면 안절 부절 못하고 당황하거나 엄마처럼 화를 내기도 했다.
인지적편향으로 인해 세상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고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신경질적인 태도를 고수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는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발전하기도 하며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편집증적 사고장애나 지각이상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뭉크가 남긴 일기와 소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은 이 모든 정신적 고통과 부정적 편향의 사고 과정을 담고 있다. 뭉크의 그림과 저작에서 드러나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피해망상적 분위기는 죽음으로 인해 반복된 상실의 트라우마와 아동기에 받은 학대적인 훈육이 유발할 수 있는 정신과적 장애들의 발달경로를 보일 수 있다.
자신이 겪었던 지독한 상실의 고통과 냉혹한 훈육을 통해 성장한 경험은 그의 정신을 허무와 불안과 공포로 물들었고, 그의 절망적인 감정과 심리적 경험을 회화로 자신이 깊이 공감한 것 같다.
자기 위로 차원에서 시작한 그림 중 72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남겼을 뿐 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자신의 얼굴을 숱하게 남겼다. 요즈음 젊은친구들처럼 셀카의 천재였다. 그러나 정작 뭉크 자신은 80세를 넘기며 비교적 장수했고 죽기 전까지 왕성한 그림 활동 및 작업을 펼쳤다. 그가 죽기전 완성한 전신 자화상에서 뭉크의 키와 맞먹는 크기의 벽시계와 침대사이에 서 있다.
그 의 불안, 우울, 공포, 질투, 피해망상 등 주관적인 감정은 캔버스로 옯겨지면서 관객으로부터 호응과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뭉크는 문학적 자질도 풍부해 자신의 내면을 그림 뿐 만아니라 일기와 희곡으로도 남겼다. 그림에서 이미 적나라하고 단도직입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가 남긴 일기와 희곡은 대인관계에서 겪는 어려움,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인해 친구들과 겪는 갈등, 등. 어린시절 받은 상처들은 어른이 되어도 고스란히 상처로 남아 부정적행동과 함께 부정적 마음도 먹게 된다.
우리 엄마역시 어린시절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이북에서 피난을 왔으며, 오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자신의 어린 두 동생도 피난 오는 동안 죽는 모습을 직접 목격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살아 생전 잠을 주무시는 동안에도 헛것이 보이는지 한번씩 외 마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뭉크도 현대인들도 자신의 상처를 그림을 그리며 그림 앞에서 처절하게 대면을 하는 것은 아닐까? 부딪혀서 원인도 알아보고 그의 마음을 달래 주는 것이다. <미술관에 간 심리학. 219, 231~234, 그림의 힘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