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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심 Aug 31. 2022

서른을 마주한 우리 시즌 1을 마치며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내며 느낀 점 세 가지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내가 주변에서 늘상 듣는 질문이다. 왜 열심히 사는지, 그렇게 티도 안 내면서 열심히 살아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굳이 티를 내야 하나? 오히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나에게는 생소한 생각이었다. 맡겨진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질문의 저의를 의심하다가도, 그 질문 그대로를 나에게 던져보았을 때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지, 나는 이유도 없이 그냥 달린 거야?" 남들은 한 가지 일을 하는 데도 수백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하나의 이유로 설득이 되면 곧바로 해버리곤 했다. 무의식이 차지하고 있는 원자아가 그렇게나 크고 넓다던데…, 나의 무의식 속엔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그렇게도 빠르게 수긍해 버리는 건지. 그날따라 내가 유난히도 얕아 보였다.


갑작스레 중심을 찔러 온 질문 때문일까? 평생을 함께해온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지구는 여러 지층면을 가진 것도 모자라 다양한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라는 사람은 어떤 테두리를 가지고 어떤 겹으로 구성되어있는지 잘 모르겠어 스스로가 궁금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충분히 이해해야 밤에 잠이 올 것만 같았다.


그 무렵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나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이를 물었던 사람들은 불문율이 있는 것처럼 내게 '벌써 30대인데, 앞으로 어쩌고 저쩌고'라는 말을 꺼냈다. 아직 서른을 반년도 채 살아보지 못했던 나는 그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어진 질문에 답을 고민하던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필요했다. 모호한 걸 싫어하던 나는 에둘러 답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의 고민과 생각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기 위해 서른을 마주한 우리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나의 고민이 친구들의 것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모두들 서른을 거쳐간 혹은 거쳐갈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너에게 서른은 무슨 의미야?' '무엇이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 '네가 추구하는 가치는 뭐야?' 같은 질문을 던지다가도 새로운 궁금증이 일면 생각의 저변을 확장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질문들을 던졌다. 질문에 나오는 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답을 통해 또 다른 답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했기에 무수히도 많은 질문들을 건넸다.


결국 나는 다른 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서른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넓히게 됐다. '열심히 사는 거랑 서른이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서른에도 열심히 살아갈 생각이기 때문에 그 방향을 알려줄 비책이 필요했다. 나는 나의 답을 찾기 위해서, 인터뷰이들은 인터뷰이들의 답을 찾기 위해서 인터뷰라는 수단을 통해 그 연결고리를 찾아가고자 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 점 세 가지


1. 과정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과정이 즐겁다는 생각을 언제 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삶이 즐거웠던 중학생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시키는 이 하나 없이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책이 도서관이 제 자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그러했다. 하교 후 두 시간 동안 쫓기듯 책 두 권을 읽고 나서도 부족해서 못 읽은 책 세 권을 빌려 집에서 또 읽었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었는지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약속도 마다하고선 매일같이 도서관에 갔었다.


친구들과 노는 시간은 학교에서 채웠고 집에서는 책을 읽느라 바빠 공부할 틈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해서인지 너무나도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도서관을 제집 드나들 듯 매일같이 들락날락하다 보니 중학교 3학년 때는 압도적인 독서량을 자랑하며 다독상을 받았었다. 당시에는 '좋아하는 걸 했을 뿐인데 상을 주네?'라며 상에 대해 별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나는 과정의 즐거움을 잊고 살았다. 성공, 자본, 지위가 곧 행복이라 말하는 사람들 틈에서 꾸역꾸역 살아남기 위해 성과중심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 결과가 노력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시작할 때 늘 압박감에 시달리곤 했었다.


그랬던 내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180도 달라졌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아닌 '어떤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답변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인터뷰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어떤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지를 전해 들었다.


결과보다 대화를 통해 서로가 깨닫고 배우는 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인터뷰이들도 즐겁다는 말을 많이 했다. 주체적으로 진행하며 얻은 자기 효능감은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만족감을 전해주었다. 오랜만에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활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이런 활동들을 더욱 많이 실천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2. 삶의 다양성이 드러났으면 한다.


 내가 누군가의 다양성을 인정했던 첫 기억은 언제였을까? 이것도 중학생 때였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 대한 험담을 하면 나는 그 이야기를 '그 친구는 원래 그런 애인가보다'라며 받아들이곤 했었다. 그 친구를 만났을 때도 나는 이미 그 친구의 특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성향이나 성격이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친구가 의도적으로 나쁘게 행동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몰라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엄마와 고등학생 때 있던 일이 생각났다. TV를 보다가 엄마가 소수자를 차별하는 발언을 했다. 그걸 보고 놀라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본인의 세대에서는 다양성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에 어둡다"고 답했다. 지금은 오히려 나보다도 다양성을 존중해주신다. 결국 다양성이 잘 보이는 곳에 노출되지 않고 학습하지 않았기에 어두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양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게 된 것 같다.


이런 생각이 프로젝트를 통해 드러나게 된 것 같다. 개인의 삶을 조명하며 삶의 일반적인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었다. 인터뷰에서 똑같이 등장하는 한 가지 질문에 그 누구도 같은 답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하며 삶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의 삶이 있다.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은 없기에 누군가 정의해 둔 정형화된 공식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자신의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이 영상에 잘 담긴 듯하다.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이러한 생각과 마음이 잘 전달되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는 글이었으면 한다. 앞으로도 많은 다양성이 존중받으며 그것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3.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촬영하며 인터뷰이와 나눈 대화들을 곰곰이 되새김질해보았다. 그들은 평상시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을 통해 삶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며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적어도 하나의 영상이 한 명의 사람에게는 좋은 영향을 미쳤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을 통해 자신과 동일한 상황이라서 정말 공감되고 위로받았다는 댓글을 보며 깊은 보람과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선한 영향력이 필요한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 많다. 다만 어려움의 종류가 많고 필요한 도움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나는 개인이기에 개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았고 그중 하나가 인터뷰였다. 지인들은 내가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일깨워준다고 했다. 자신의 장점을 인정받음으로써 새롭게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고 말해주었다. 나의 장점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 대상이 나의 주변이어도 충분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으로서 사회적인 맥락에서 거센 해일과 맞닥뜨리는 이들에게 자신을 이해하는 마음을 일깨워주고 동기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꼭 어떠한 자격이 있어야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서른을 마주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꾸준히 함으로써 원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 가치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삶에 만족을 주는 활동에 크고 작은 도전을 하며 스스로 서서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솔직하게 드러낸 고민들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실천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스타트라인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나는 어떤 역량이 생겼을까?


 가장 먼저 발견한 점은 인터뷰어로서의 역량이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그보다 더 좋아하는 편인데 나의 경청하는 태도가 빛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인터뷰어로서 큰 장점이었다.


보통 대화를 할 때도 호응의 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듣고 요약하여 말을 하는 편인데,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잘 이해했다고 느낄 수 있어 자주 사용하곤 했었다. 이 방식이 인터뷰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인터뷰이들이 내가 말을 잘 정리해준다는 사실을 칭찬해주어 기분이 좋았다. 다만 누군가에게 쓰일 정도의 재능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법과 태도를 조금 더 정돈시키면 좋은 능력으로 발현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판을 짜는 역량을 발견했다. 어렸을 적에는 사람들을 모아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시절엔 골목대장으로, 중학생 시절에는 동아리 부회장으로, 고등학생 시절에는 반장으로서의 역할을 맡으며 크고 작은 일들을 꾸려나가곤 했다. 다만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주도하는 것보다는 잘 따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면서 어떻게 사람을 모으고 판을 꾸렸는지 잊어버렸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통해서 내가 인터뷰라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 안에 사람들을 모으고, 계획하고 주도하는 활동을 통해서 내가 이런 활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단순히 판을 짜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계획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인터뷰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조명하고, 동기부여하는 활동을 통해 보람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잊었던 즐거움을 깨달았다. "아, 나 이런 거 좋아했지?" 잊었던 즐거움을 되찾았다는 생각이 들어 짜릿했다. 다양한 사람을 초대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키우고 경험을 통해 판을 짜는 역량을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그리고 타인을 더 발전시키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마무리하며 독자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


 먼저 서른을 마주한 우리 콘텐츠를 재미있게 감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콘텐츠를 통해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각자의 서른은 모두 다를 거라는 말'과 '평범하면 어때?'라는 말이 동화 속에 있는 말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기도 했고요.


정지우 작가님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그런데 그저 하다 보면 삶이 좋아진다. 그저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 때로는 글쓰기 자체가 좋은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좋아서 하는 일이 삶을 배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글 쓰는 사람은 그래서 계속 쓰게 된다.'


이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저는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해야 저 자신이 바로 설 수 있는 주춧돌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서 기획하고 시작한 프로젝트이지만 다른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고 좋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여러분들도 좋아하는 일을 시작할 때 주저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실행하며 다양한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길 바랍니다.


언젠가 평범함이 주는 안온함을 느끼고 싶을 때, 타인과 내가 다르다는 것이 불안하다고 느껴질 때, 이 글과 인터뷰 영상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모두 다르기에 다양성은 훌륭한 가치가 되거든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기만 해도 생각의 차이를 일깨워주니까요. 언젠가 구독자님이 인터뷰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어 이 콘텐츠가 기억난다면 언제든 찾아주세요.


저의 서른, 그리고 삼십 대를 의미 있게 채워가기 위해 저를 구성하고 있는 지인들과 함께 생각을 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생각이기에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시도하며 저의 방향을 찾아가려고 해요.


그동안 서른을 마주한 우리를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어느새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바람이 마음을 녹이는 가을이 찾아왔어요. 새롭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독자님들도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길 응원할게요.


늘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이전 10화 흘러갔을 때 그 끝이 어떨지가 항상 궁금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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