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지키는 건 마음을 지키는 것
어릴 때부터 욕이 안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습자지처럼 주변의 가까운 사람의 말습관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편인데
유독 욕 만큼은 입에 잘 붙지가 않았다.
목소리 때문인지, 억양 때문인지 좀 세보이고 싶을 때도 어쩐 일인지 험한 말이 어울리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내가 찾은 세게 나가는 방법은 그저 따박따박 또박또박 할 말을 하는 것.
그렇게 험한 말로부터 청정한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
그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한 선배가 화가 나는 상황이면 장난처럼 진담으로 찰지게 욕설을 내뱉는 걸 자주 듣게 되었다. 괜히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서른도 훌쩍 넘은 나이에, 갑자기, 욕을?
엉뚱했지만, 어느 날 위아래로 치이며 답답한 마음에 모인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욕설을 내뱉게 되었다.
뭔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날부터였다. 종종 입으로 욕을 뱉은 게.
좋은 습관은 그렇게 들이기 어려운데, 안 좋은 건 그렇게 빠르게 자리 잡는다.
학창시절 내내 청정했던 입에서 험한 말이 종종 내뱉어졌다.
어떨 땐 놀라서, 어떨 땐 화가 나서였다.
스스로 욕하는 나를 인식하고 적잖이 놀랐지만, 어쩐지 그 말로 뱉었을 때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그 순간으로 매일의 속터지는 불합리를 참아내고 털어내었다.
간간히 터지는 험한 말습관을 정말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이를 낳고 나서다.
아이가 말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나지막이 속삭이는 '아이씨' 같은 말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울처럼 나의 모든 걸 담는 아이 앞에서 나의 말은 다시 청정함을 되찾아갔다.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입에서 험한 말이 터져나왔다.
유모차를 끌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초록불이 켜지고 아이가 잠들어 있어 조심스레 길을 건너려 유모차를 미는 찰나, 횡단보도 가까이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가오는 차가 있어 급히 멈췄다. 지나가는 차 안의 운전자는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었는데 신호는 물론 횡단보도의 보행자(=나랑 내 앞의 유모차)를 주시하지도 않은채 네비게이션을 조작하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지나 우회전을 하고 바로 만나는 횡단보도도 그냥 지나쳐갔다. 그 차를 뒤따라 오던 차도 그 차 뒤만 보고 가는지 역시 신호를 무시하고 같이 우회전을 했다.
"아니 이런 미친!"
생각보다 큰 소리로 그 말을 뱉은 나도, 내 건너편에서 길을 건너던 군인 청년도 덩달아 놀랐다.
상황상 놀랄 수 밖에 없기도 했지만, 나는 괜히 유모차를 끌며 가는 아이 엄마 입에서 나온 험한 말에 그가 놀란 건 아닌지 자격지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한동안 사라졌던 험한 말이 왜 다시 찾아왔을까.
놀랐다고, 화나는 상황이라고 그런 말로 응수하는 나를 황급히 되돌아보았다.
아이에게 좋은 말습관을 가르치면서 자주 하는 말이 '말은 마음'이라는 것이었다.
말을 지키는 건 마음을 지키는 것과도 같은데 말이 험해질 때는 마음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짜증을 내는 아이에게 말하곤 했다.
내 말은, 내 마음은 왜?
방금 전까지 울다 잠든 아이가 깰까봐, 최근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오늘 아침밥을 먹지 않아서, 얼마전 차를 팔고 상실감을 느끼고 계신 아빠가 생각나서…수많은 이유가 생각났다.
어떤 이유든 험한 말은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맞서고 바꾸는 데 아무 힘도 없다는 생각도 했다.
한 작가가 책에 남긴 글귀를 생각한다.
“누군가 날마다 상냥하다는 건 정말 뿌리깊게 강인하다는 의미다“
아이를 낳고 안 그래도 상냥했던 나는 좀 더 상냥해질 수 있었는데, 그게 강인해졌다는 의미인 줄은 생각지 못했다. 여러 이유로 몸이 피곤하고 정신이 약해지며 말이 무너진 오늘의 순간은 다시 강인해져야 할 이유를 찾게 해주었다.
눈꺼풀이 무겁고 몸이 물에 젖은 솜 같지만 운동을 하러 나왔다.
정말 무거운 건 들어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올리고 당겼다.
조금 더 강인해진 나는 아까 같은 상황에 험한 말 대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번호판을 빠르게 찍고, 조용히 신고를 하는 내 모습을 시뮬레이션 해본다. 속터지는 불합리에 맞서는 정말 강인한 태도, 말을 마음을 지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