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쓰고 나니 더 던질 수 없게 된
사람을 좋아하고 대화를 즐기는 편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누굴 만나도 스스럼 없이 대화가 되고 어떤 주제라도 다이빙할 준비가 되어 있는 토커라고 스스로를 인지해왔는데, 최근 몇달간 거의 집에 머물며 내가 그런 사람이 맞나 의심하는 중이다.
대화에 참여하기보다는 가만히 듣는 게 더 편하다고 느끼면서, 연락을 하기보다는 받는 데 익숙해지면서 어느 순간 내가 먼저 대화의 포문을 연다는 게 낯설어졌다.
매일 보는 남편에게 건네는 첫 마디, 매일 집에 오셔서 얼굴을 보는 엄마랑 나누는 이야기의 시작을 묘하게 의식하게 되면서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된다.
날씨 이야기를 하자니 뻔하고, 뉴스에서 본 이야기를 하자니 쌩뚱 맞고, 기껏 해야 던지는 게 공통의 다른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식인데 그런 다른 사람 이야기는 그만 하고 싶고.
그렇게 주제를 패스하고, 패스하다 보니 어물어물 입에 머무는 이야기가 없게 된다.
빤히 상대를 바라보며 먼저 화두를 던져주길 바랄 뿐.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사람이기를 바라고, 그런 나를 읽어주길 바라면서
막상 던질 화두가 없는 가난한 기분.
매일 비슷한 일상과 비슷한 인풋(거의 없다시피한?)으로 고갈되어가는 건 아닌지 조급한 마음이 든다.
얼마 전 시작한 딱 내 나이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에서는 아이를 기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며 사회로 복귀하려는 주인공에게 "그래도 쉬면서 인풋은 충분하셨을텐데, 아이디어는 있죠?"하는 대사에 "와, 아기 돌보면서 인풋까지 챙길 수 있는지 어디 네가 와서 한번 해봐라" 하는 육성이 터져나왔다. 그래도 조급함으로 얼마 전부터는 롱블랙 같은 콘텐츠도 구독했다. 지금 가장 두드러지는, 어느 분야의 최전선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런 콘텐츠가 내 안에 무언가를 쌓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무언가 인풋이 될까 싶은 거다. 아이가 넷인 옆집에서는 얼마전 부터 종이신문을 배달하던데, 나도 신문이라도 봐야 하나 싶었으니 말이다. 조급하게 뭔가를 빠르게 쌓고 싶어서 마음만 바쁘다.
오늘따라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젊은 작가이자 편집자인 두 사람이 조곤조곤 나누는 이야기에 키득거리다가 괜히 질투가 난다. 한때는 나도 누구에게든 쉼없이 이야기하던 것들이 있었는데, 그 많던 이야깃거리는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걸까. 이야기 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고 막상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몰려온다.
눈 앞에 책장에 한 가득 꽂혀있는 책들을 본다. 그래, 불안할 때는 책 앞으로 가자.
틈나는대로 한장이라도 읽어보기로 한다. 저 수많은 작가들이 던지는 화두에 응해보자 생각한다.
내 속에 이야기가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그런 것처럼 어느날 나도 모르게 툭 시원하게 터져나올 말머리들을 위해, 인풋 끊임없이 양질의 인풋을 주기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