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옮는 거 아세요?
그런 애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울면 따라우는 애들.
나도 그런 애들 중 하나였다. 누가 우는 것만 봐도 영문도 모르고 따라 울었다.
때로는 먼저 운 사람보다 더 서럽게 울어서 누가 먼저 울기 시작했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어릴 때 그러고 말 줄 알았는데, 커서도 그랬다.
하도 자주 울어서 아빠는 날 수도꼭지라고 부르곤 하셨다. 그리고 그건 아빠를 닮은 것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인간관계를 경험하면서 눈물이 약이 되는 때도 있지만 방해되는 일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는 것을 연습하기도 했다.
눈이 새빨게 지더라도 참다가 그 자리를 피해 화장실이나 비상구에 가서 눈물을 쏟았던 경험이 수두룩하다.
여전히 뿌에엥 하고 터져나오는 눈물, 울음을 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나를 아는 가족들은, 툭하면 내게 묻는다.
"울었어?" 아니고 "또 울었어?"
오늘도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인생의 암흑기'를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보다 한참 어른이신 분들이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어떻게 그런 긴 시간의 터널을 견뎌오셨을까 생각하며 참을 수가 없어 나도 울었다.
어쩐지 그런 모임에서 눈물이 나는 게 겸연쩍어 안 우는 척 하늘을 보고 슬쩍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다시 웃긴 얘기가 나오면 도리어 크게 웃으며 아닌척 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나누는 그 이야기에 터져나오는 눈물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이야기를 하려니 이제는 참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그 분들에 비하면 인생의 작은 언덕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사연이었음에도,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이야기를 하자니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런 내 이야기를 들으며 50대, 60대의 인생 선배님들이 같이 눈물을 보이셨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눈물도, 울음도 그 분들에게 옮겨갔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옮겨가는 눈물이 다른 말이나 토닥임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되어서 그렇게 같이 눈물을 쏟고 나니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껏 내가 따라 울었던 눈물들에도 그런 위로의 의미가 되어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안이 되었다.
수도꼭지로 사는 삶은 조금 약해보일지는 몰라도 따뜻하고 촉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