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굴'을 보고
나의 치욕스러운 말실수 중에 1등은 신혼여행지에서 왜 이 여행지를 선택했는지 지속해 묻는 남편과 다투다 뱉었던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로만 여행 갈거야!'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크로아티아였고, 나의 선택이었으며, 같은 날 결혼한 어떤 지인과 겹치는 여행지가 싫어 그동안 계속 말해오던 스페인 대신 고른 곳이었다. 내 말에 아연실색하며 이 나라의 GDP를 조용히 검색하던 그의 옆모습을 잊지 못한다. 이후 그는 10년 가까이 나의 망언을 가지고 잊을만하면 놀려댄다. 여행 갈 데가 별로 없어서 어떡하냐고.
그렇다. 나는 이제 여행갈 나라가 별로 없다. 아직도 왜 그 말을 뱉었는지 모르겠다. 내 머리 속에 그려진 세계지도에서 잘 사는 나라의 기준은 내 눈에 보이는대로 마구 그려져 있었나보다.
내가 본 것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경제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국이다.
이 땅의 성장은 기적이라고 불린다. 그 기적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일어난 것은 이 땅의 자랑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려다. 사회 면면에서 빠른 성장으로 인한 폐해가 너무 많이 드러난다.
성장은 찬양되고, 폐해는 지탄을 받고 변화를 요구받지만 일견 성장과는 선을 긋고 다루어진다.
어떤 폐해는 성장에 따른 것으로 다루어질 때 의외로 쉽게 용서받기까지 한다.
영화 '얼굴'을 보며 너무 쉽게 찬양하고, 너무 쉽게 용서하고 용인하는 그 시절의 야만적인 성장의 벽돌 하나하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 마음에 더 무섭게 파고들었던 것은 너무 쉽게 내뱉는 말들, 그리고 너무 쉽게 현혹되는 정신과 마음이었다.
특히 외모에 대해서는(영화 제목이 얼굴인 데에 대해서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쉽게 가볍게 자주 언급하는지를 생각하며 섬짓할만큼 잘 지은 직관적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대로 이해와 깊은 관심 없이 얼마나 자유롭게 그에 대해 언급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한번 그 말로 그려진 얼굴은 그대로가 아니라 그 말로 인식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마치 보여지는듯 하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에게까지 말이다.
영화를 보고 마지막에 보여진 장영희의 얼굴을 보며 정말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녀가 받아들고 너무 좋아했던 장영희인이라는 도장의 각인이 그녀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생각과 이해와 상상과 가능성이 결여된 그동안을 반성했으며, 그 결여된 것들이 야기했을지 모를 희생을 추모했다.
너무 쉬운 것들을 두려워하자. 그 두려움에 구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