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복잡할수록, 몸이 힘들수록
마스노 슌묘의 '스님의 청소법'에 관한 팟캐스트를 들었다.
책을 홍보하기 위한 문구들이 마치 청소가 만능키처럼 관계와 운의 문제까지 풀어낸다는 뉘앙스로 쓰여져 있어 약간 거부감이 들다보니 스스로 집어들진 않았을 책이지만, 관하여 듣다보니 평소 청소에 관한 나의 생각과 비슷한 부분을 많이 발견했다.
청소가 어떤 목적을 위해 수반되기 보다는, 청소 자체로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행위가 되어 가지게 되는 의미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반가웠달까.
하루를 시작해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나의 일상의 대부분의 시작은 청소이다.
자고 일어난 자리를 정리하며 하루의 할일들을 생각해보고,
식사를 준비하며 전날 세척한 그릇들을 제자리로 옮겨놓는다.
아이와 놀이를 시작하려 놀이 공간을 정리해놓고, 작업을 하기 위해 책상을 정리한다.
주변 사람들은 곧바로 다시 쓸 것을 뭘 하러 그렇게 정리하냐고 묻는다.
당장 그 물건을 쓰게 되더라도 원래 있던 자리에서부터 시작해 다시 그 자리로 돌려놓기까지가 그 물건의 사용법이라고 말하는 스님의 청소법은 나의 생각과 같다.
모든 일과 하루의 마무리 역시 청소이다.
잠들기 전까지 집안 곳곳의 물건들이 원래 있던 자리에 돌아가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 잠들려다가도 일어나 정리를 한다.
내일 아침 그 자리를 마주하는 나를 위한 준비다. 이 역시 내가 항상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렇게 청소로 시작과 마무리를 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다르다.
반듯하고 정갈하게 그려진 도형 안에 빈틈없이 꼼꼼하게 채워진 색처럼 꽉 찬 만족감이다.
어떤 때는 청소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버린 것 같은 날들도 있다.
그런 날들에는 아쉬움은 남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
가족이 생기고 나와 청소에 대한 생각이 다른 배우자와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청소에 대한 진심을 공유하면서 조금은 걸음을 맞추어왔다.
그런데 아이가 하나 생기고, 둘이 생기고서의 청소는 수행을 넘어선 고행이다.
정말 뼈를 깎는 고통으로 청소를 사수하고 있다.
돌아서면 다시 엉망인 자리에 좌절하면서도 제자리를 찾아 넣고 먼지를 털어내고 얼룩을 닦아낸다.
다만 어떤 날 내 마음처럼 깨끗하지 못한 자리에 화가 불쑥 솟아날 때면, 그리고 그 화를 쏟아낼 때면 청소를 해서 깨끗한 공간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탈함이 몰려온다.
차라리 지저분한 공간이더라도 잠시라도 더 아이들과 행복함을 나누는 것이 더 옳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럴 때면 입과 머리와 마음의 청소를 하자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오늘 아침 걸레질을 하다 짜증을 쏟아내는 아이에게 못 참고 버럭 소리를 질러버린 나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아이가 등원한 후 방에 널부러진 옷가지들을 정리하다 미안함에 눈물지으며 든 생각이었다.
(나 비록 크리스천이나) 스스로 고행길을 걷지 말고, 매일 행복한 수행의 청소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