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지내던 시절, 나의 VIP 여행사 놀이에 동참해 준 고객들은 참 신기하게도 다들 홍콩까지 와서 라면에 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미식의 도시 홍콩의 음식들이 그다지 입에 맞지는 않았던 나는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라면에 김치를 찾을 때이면 나는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다. 현관에서부터 한눈에 쏙 들어오는 아지트를 3분 만에 구경시켜 준 후, 부족한 실력이지만 허겁지겁 김치와 라면에 더해 밥, 김과 된장국이라도 곁들여 차려내면 그렇게들 좋아해 주었다. 그들은 대부분 멸치볶음이나 우엉조림 같은 밑반찬을 한국에서 가져와 내게 선물로 주었다. 나는 고객 만족을 위해 그들의 반찬을 - 입맛에 익숙한 음식이 필요할 테니까 - 나의 몇 가지 다른 반찬과 함께 내어놓곤 했다.
라면은 진정 소울푸드인 것일까. 또 다른 미식의 도시 파리에서 지낼 때 사촌오빠가 신혼여행으로 다녀간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알려준 파리의 맛집들을 다녀와서는 나의 아담한 방에서 다시 라면을 끓여 먹으며 해장(?)하곤 했다. 한창 일하던 시절 출장길에 모시고 다니던 전직 장·차관 할아버지들도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거르겠다 하실 때 가방에서 컵라면 하나 꺼내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참, 남편도 아닌 척하면서 라면에 진심이다. 홍콩 살이 시절 홍콩 마트에서 파는 ‘수출용’ 라면은 본인이 알던 맛이 아니라며 어찌나 까다로운 입맛을 뽐내는지. 나는 동생에게 라면 목록을 불러주며 택배로 보내 달라고 하곤 했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우리 집에서 수다를 떨거나 아파트 클럽하우스 구경을 했다. 또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라 불리는 홍콩섬 건물들의 레이저쇼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침사추이의 시계탑 앞으로 가기도 했다. 부모님이 오셨을 때는 고객들의 체력을 고려하여 택시를 타고 시계탑 앞에 다녀왔었다. 말로만 듣던 택시 사기를 당한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탔던 택시가 트렁크를 열고 달려서 아버지는 친절하게도 트렁크가 열려있다고 걱정하며 기사에게 알려주었다. 대꾸하지 않는 기사가 이상해서 슬쩍 미터기를 쳐다보았는데, 얼마나 무섭게 올라가던지. 나는 이 택시가 홍콩섬에서 온 택시냐고 물어보았었고 (서울 택시와 경기도 택시가 따로 있는 것처럼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택시가 서로의 바다를 건너가는 경우 요금이 급증한다) 택시 기사는 당황하며 그렇다고 대답하더니 우리의 목적지와 한참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차를 세우며 트렁크를 위로 확 들어 올려놓고서는 내리라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발생할까 봐 우리는 순순히 내렸다. 돈을 내던 남편 말에 따르면 기사는 마지막까지도 5불짜리 지폐를 받고서는 1불 줬다고 우겼다고. 어쨌든 일행이 모두 내리자 택시는 쌩하고 사라졌다.
당시에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알고 보니 외국인을 대상으로 가끔 이런 택시 사기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기사가 트렁크를 올리고 도망친 것은 번호판을 감추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엄마는 상해나 납치 등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했고 아버지는 어이없어하며 껄껄 웃으셨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외국인을 대상으로 못된 짓 하는 택시 기사들이 있는데 여기도 똑같다면서. 어쨌든 남편은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자신이 이런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내가 가끔 택시를 타겠다고 하면 성실히 우버(Uber) 서비스만 불러줬었다.
여행의 세 번째 날부터는 고객의 취향과 연령대에 따라 일정이 한층 더 다양해졌다. 큰이모네 대가족은 조카를 위해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디즈니랜드는 주로 서니베이역(Sunny bay station)에서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기차를 갈아타고 이동했다. 디즈니랜드행 기차는 창문 모양과 손잡이 모양조차 모두 미키마우스 형태여서, 나는 '꿈과 희망의 나라로 가는 기차'라고 불렀다. 역시 그 기차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설렘을 선사했다. 홍콩의 대중교통과 디즈니랜드, 오션파크 등 놀이시설은 36개월 이하의 영·유아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세 돌을 맞았던 조카 덕분에 큰이모네는 지하철과 디즈니랜드를 가볍게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어린 조카가 염려되어 아쉽더라도 너무 늦게까지는 놀지 말라고 했었다. 그러나 마지막 불꽃 퍼레이드까지 다 보고 돌아온 그들 중에서는 조카만 웃고 있었다.
내 동생과 조카는 더위가 한창이던 8월에 놀러 왔었기 때문에 하루를 우리 아파트에 있는 수영장에서 보냈다. 입주민의 손님 또한 저렴한 가격으로 실내·외 수영장과 사우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당연히 고객 만족도는 최상. 조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하루 종일 수영장에서 놀았다. 동생은 홍콩 일정 중 최고의 장소라고 즐거워했다. 물놀이를 하다가 배가 출출할 때는 클럽하우스의 카페에서 간식을 사 먹었다.
친정 부모님을 위해서는 홍콩 국제공항과 디즈니랜드가 있는 란타우섬(Lantau Island)의 옹핑(Ngong Ping 360)이라는 관광지로 향했었다. 바닥이 투명한 케이블카를 타고 발아래의 바다와 머리 위의 산을 보며 한참 동안 어디론가 올라갔다. 안개가 자욱하던 흐린 날이었지만 그래서 비교적 한산했고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아버지는 잔뜩 신난 개구쟁이 소년의 표정으로 투명 케이블카의 바닥에 앉아 셀카봉으로 여러 사진을 남겼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후 갑자기 만나게 되는 (그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는) 물소들과 고즈넉한 사원, 그리고 거대한 청동 불상은 부모님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청동좌불상이라는 옹핑의 불상은 268개의 계단을 올라야만 만날 수 있었다. 불심 가득한 엄마는 계단 하나하나마다 소원을 빌며 부처님께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