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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지금 바라보고 있는 그 눈빛

by 작은별


우리의 결혼식은 전통혼례였다. 햇살 좋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마당에서는 부채춤이 하객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사물놀이패가 흥을 돋웠다. 삼현육각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별채의 신부대기실에서 녹의홍상에 연지곤지를 찍어 바르고 바깥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남편의 오랜 캐나다인 친구가 기럭아비를 해주었다. 그 앞 어린 조카와 사촌 동생이 청사초롱으로 밝혔다. 남편이 엄마에게 절을 했고 엄마는 기러기를 받았다. 엄마의 뒤를 따라 한 발짝씩 마당으로 발을 내디뎠다. 여느 결혼식과 달리 아버지의 손을 잡지 않아서 아쉬웠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남편에게 인수인계되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 점은 좋았다.

대야에 손을 씻으며 몸과 마음을 정갈히 했다. 고개를 숙이고 팔을 높게 들었다. 몇 번의 절을 했다. 주례가 혼례의 순서와 행위에 따른 의미를 간결히 설명해 주었다. 마당에서의 결혼식은 너무 소란스럽지도, 너무 고요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경건했다. 신랑과 신부를 위한 높은 무대가 아닌 우리를 위한 같은 높이에 서 있었다. 덕분에 하객들의 애정 어린 눈길과 호기심 가득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혼례가 무르익어갈 무렵, 하객을 향해 섰다. 궁금해서 고개를 살짝 들었다. 아버지 얼굴이 보였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계셨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내 눈에서도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를 바라보던 엄마와 어머님께서도 울었다. 주례가 ‘저런, 신부가 울고 있네요. 응원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양옆에서 도와주시던 분들이 서둘러 눈물을 닦아주었다. 축창이 울려 퍼졌다.


그날. 나의 다섯 명의 이모 중 한 명이 말했다. 지금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 그 눈빛 그대로 살아가라고. 그 말의 의미를 그날은 몰랐다. 어쩌면 지금도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잊히지는 않는다. 그날의 설렘, 희망, 사랑, 존중…. 그 눈빛 그대로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지 신혼일기를 쓰며 꽤 여러 번 돌이켜보았다. 한편 남편의 친구 중 한 명은 그날 사모관대를 입은 남편에게 드라마 촬영 현장 같다며 웃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도 같이 웃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각자의 인생은 모두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뒤늦게 신혼일기를 기록하면서, 나는 왜 여유롭고 고요하던 그 시절에는 일기 쓰기를 미루고 지금에서야 하고 있나 싶었다. 하루 종일 엄마를 찾으며 울고 웃는 두 아이를 돌보느라 밥 먹을 정신도 없기 때문이었다. 바로 앞의 에피소드에서 무슨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읽어보아야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쓰다 보니 지금이야말로 일기를 쓸 때이구나 싶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 앞에서 감정 조절을 못 하는 요즘. 고마운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제대로 안 하고 지나가는 요즘. 글을 쓰며 소중한 기억을 더듬고 그때의 마음을 찾아보았다.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안아주었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아가로 태어나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며 어루만져 주었다. 이제는 나의 신혼일기를 보내주어야겠다.

다음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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