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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Mar 05. 2024

34. 뒤돌아서다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오늘 한낮은 날씨가 따듯하여 몸에 걸친 두툼한 겉옷이 제철에 맞지 않는 듯 어색하다. 겨우내 즐겨 입던 겉옷이지만 매정하게 마음이 바뀐다.


며칠 전 만났던 후배는 자신의 사업을 큰 비전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꾸려나가는 사람이다. 내가 주어진 나이로는 몇 살 많기는 하여도, 친분을 이어오는 내내 그의 창의성과 열정에 경의를 표하곤 하였다. 그의 계획대로 단기간에 회사의 규모가 커지진 못하였을지라도, 가끔 만나는 자리에서 그가 펼치는 비전과 자기 사업에 대한 열의는 식지 않았다. 나 또한 그의 구상대로 언젠가는 큰 성취를 이루어내리라 굳게 믿었다.


그의 타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남달랐다. 흔히 냉철하고 의심이 많은 부류라고 치부되는 사업가인 그의 처지와는 다르게, 그는 손해를 보면서도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도와줌에 주저함이 없었다. 옆에서 바라보는 내가 오히려 사람들이란 상대방의 선함을 이용만 하고 뒤돌아설 수 있으니, 무조건적인 도움은 자제하라고 말리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선의의 도움이 서로 돕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선순환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이용만 당한 느낌이라며 내 말이 옳았다고 힘없이 이야기하는 그를 마주하였다. 원래 인간 본성이 러한 것인데, 그의 천성이 선하여 쉽사리 냉정해지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으나,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래도 선함을 쌓았으니 너무 실망마라고 격려하였다.


어느 날. 그를 만나 커피 한잔을 마셨다. 새로 채용한 직원들을 자랑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그들과 함께 이루어갈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잘 되었다고 같이 기뻐하였다. 그전 직원들의 업무능력과 인성의 부족함으로 그가 상처를 받았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번잡한 인생살이로 인해 그 뒤로 한참 후에야 그와 마주할 수 있었다. 반가움에 악수를 하다 보니 그의 얼굴이 꽤 수척해 보였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묻자, 연초는 사업의 비수기라 일이 없어 성수기를 대비해 준비하는 중인데, 그를 잘 따라주지 못하는 직원들의 무능함과 소극적임이 눈에 도드라져 보여 힘들다고 하소연하였다. 그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으나, 회사가 힘든 시기인지라 직원들의 부족함이 더 크게 보일 수 있으니, 그가 먼저 힘을 내어 경영하다 보면 직원들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고, 그에 화답하여 직원들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토닥여주었다.


그간 살면서 자주 느꼈던 인간의 본성은 겨우내 착용하였던 겨울 점퍼처럼, 그와 나누었던 경험처럼, 필요하면 좋아하고 손에서 놓지 않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순간 필요 없어져 냉정히 돌아선다. 그도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시로 뒤돌아서는 사람과 뒤돌아서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또 바뀐다. 이쪽은 겨울이지만, 저쪽은 봄이 왔다고. 저번에는 선행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나의 형편이 좋아졌다고. 처음에는 취직을 하였고 새로운 직원을 얻었지만, 나중에는 일이 힘들고 직원들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그러나 기억해야 하지 않을는지. 다시 겨울은 오고, 다시 어려움에 처할 수 있고, 다시 손에 쥐었던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출처: 네이버(뭉크. Two human beings_The lonely ones.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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