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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17. 2023

7. 아빠 집사와 고양이

처음 아이가 고양이를 입양하자 할 때, 남편은 적극적인 반대도, 적극적인 찬성도 없었다.

입양하면 좋긴 한데, 그에 따르는 책임과 제약들에 머뭇거리고 있던 터였다. 안그래도 잦은 출장과 해외 근무로 아이들 육아를 함께하지 못한 세월이 꽤 긴데, 앞으로 본인이 함께하지 못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이 있었을 거다. 남편은 오랜 체코 근무를 끝내고, 지난 5월 말에 국내 본사로 복귀했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완전체로 다시 만나 살아간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루꼬까지 와서 다섯식구가 된 것이다. 사실 남편이 귀국하지 않았으면, 고양이를 입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 같다. 다인이가 다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단언컨대, 어른들의 손길이 필요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역시나, 아빠 집사에게는 굵직한 일들이 주어졌다. 베란다 방충망 안전장치 설치, 캣타워 조립, 펫도어 설치 등 기술과 힘과 노력과 애정이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집은 19층이다. 깨발랄 호기심 많은 고양이가 혹여나 베란다 방충망을 열고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무서웠다. 처음 구조될 때도, 하수구 아래로 떨어져있던 아이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루꼬의 첫 살림살이로 고양이 화장실을 주문하고, 곧바로 이어서 주문한 아이템이 바로 베란다 방충망 잠금장치 였다. 설치방법도 모른 채, 로켓 배송으로 주문했는데, 배송된걸 뜯어보니 도구를 이용해 창틀에 구멍까지 뚫어서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 나는 못하는 장르다.'


설치는 아빠 집사 몫이었다. 설치할 때는 방충망을 열어야 했으므로, 루꼬 포함 아이들은 베란다에서 얼쩡거리면 안됐다. 우리는 베란다 문을 닫고 거실에 모여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아빠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는 홀로 베란다에 갇혀 땀 뻘뻘 흘리며 낑낑댔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 아래에서 아무리 발길질 하고 열려고 시도해도 절대 안열리는 안전장치가 설치되었다.

고거 하나 안정장치 해놨다고 안심이 되었다. 아빠 집사는 그것도 부족해, 방충망도 혹여나 고양이가 발톱으로 찢을 수도 있으니, 튼튼한 걸로 새로 갈자고 했다.


.... 이 아빠, 루꼬 일에 은근 적극적이다.


'이제 슬슬 캣타워를 주문해야지' 생각하고, 급한 건 아니니 틈날 때 캣타워 디자인과 종류들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상품들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장바구니에 넣어놓지 않은 캣타워와 음수대가 장바구니에 들어있었다.  딱 봐도 좋아보이는데, 다소 고가라 내가 장바구니에 넣어놓지 않은 상품이었다.

범인은 남편이었다! 남편이랑 같은 아이디로 같은 앱에서 쇼핑을 하는데, 남편도 틈틈이 루꼬의 살림살이들을 검색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왕이면 원목으로 예쁜 거 사자고...


엄마, 아빠가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캣타워 상품들을 다인이에게 보여주며 최종 주문할 캣타워를 고르라고 했다. 왜냐?! 물주(!)는 다인이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다인이가 지불한다는 약속을 하고 입양을 했기에, 책임감을 주기 위해서라도, 진짜로 다인이에게 모두 청구(?)하기로 했다. 다인이는 2년 전부터 고양이 봉투를 만들어 용돈들을 꾸준히 모아놓았다. 또한, 아빠가 다인이 갓난아기 때 출산 축하금부터 돌잔치 축하금 및 세뱃돈, 그밖에 자라면서 친척 어르신들에게 받았던 용돈들을 누가 주신 용돈인지 기록하며 차곡차곡 모아놓은 통장이 있다. (여기엔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는지, 나중에라도 보고 어떤 방식으로든 갚으며 살아가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10년 인생, 어쩌면 다인이가 우리집에서 제일 현금 부자라 할 수 있다. 물품 주문은 주로 쿠팡으로 아빠 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고양이 물품 가계부를 적어 한달에 한번 이다인 님께 청구하기로 했다. 지난 6월 말에 첫 정산을 했는데, 짧없는 나는 100% 청구하라고 했지만, 아빠는 첫달이니까 아빠가 50% 내준다며, 50%만 청구했다. 이렇게 매달 말, 다인이 통장엔 고양이의 생활비 내역이 찍힐 예정이다.)


다인이는 자신의 돈이 들어가니, 캣타워를 나름 신중하게 골랐다. 엄마 아빠가 장바구니에 골라놓은 것들 중에서 너무 저가도, 너무 고가도 아닌, 딱 중간 정도 가격대에 나름 여러가지 기능들이 탑재되어 있는 예쁘고 실용성 있는 캣타워를 골랐다. 그리고 며칠 후 캣타워가 도착했다. 박스 크기 부터 범상치 않아, 뜯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역시나, 캣타워 조립도 아빠집사 몫이었다. 모든 부품들을 거실에 쫙 펼쳐놓으니,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도 달려들어 아빠의 보조가 되어 주었다. 루꼬도 자기 살림살이인 줄 아는지, 옆에 와서 계속 냄새를 맡으며 참견을 했다. 1층 숨숨집을 시작으로, 6층까지 있는 캣타워였다.


마침내 캣타워가 완성 됐을 때, 루꼬는 캣타워에 오르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였다. 들어올려서 위층에 올려놔주어도 금새 내려왔다. 장난감으로 캣타워 층으로 유도해 오르게 만들어도, 사냥만 하고 잽싸게 내려왔다. 캣타워 괜히 샀나... 잘못 산건가...


하지만 며칠 후....

놀아주는 이 없는 나른한 오후, 언제 올라갔는지... 루꼬는 캣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위에서 스르르 눈을 감고 잠들기도 했다. 뿌듯해서 사진을 찍어 가족들에게 공유하니, 아빠도 다인이도 굉장히 좋아했다.

캣타워를 잘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다가, 캣타워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고양이가 올라가는 모든 층이 매끈한 나무로 되어 있어, 발톱으로 무언가를 집으며 올라가야 하는 고양이가 미끄러지기 쉽다는 거였다.  조금만 헛디디면 아래로 추락하는 아찔한 모습을 몇 번 보고, 엄마 집사는 다시 검색에 들어갔다.


캣타워 미끄럼방지 카페트가 있었다. 원하는 크기로 잘라서 캣타워 나무판위에 양면테이프를 이용해 부착하면 되는 거였다. 카펫 재질로 되어 있는 캣타워를 안 산건, 세탁할 수 없으니 위생 청결이 걱정돼서 였는데, 캣타워가 카펫 재질로 되어 있는 이유가 다 있었구나...!!


며칠 후, 금요일 오후에 카펫이 도착했다.  카펫 잘라 붙이는 건 어려울 것 같지 않아, 주말이 지나고 혼자 있는 한가한 시간에 재단해서 붙여줄 생각이었는데, 우리의 아빠 집사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캣타워의 고층부터 사이즈를 재서 재단하기 시작했다.

5층과 6층은 다른 장애물이 없어서 쉽게 잘라 붙여주었는데, 문제는 투명해먹이 있는 3층과 4층이었다. 비교적 넓은 판인데다가, 가운데 우주선 있는 부분은 또 원으로 도려내야 했다. 캣타워를 다시 분해하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캣타워를 다시 분해했다. 덕분에 카펫을 붙일 나무판을 카펫 위에 대고 연필로 자를 부분을 슥 그려서 잘랐는데....!

우리의 아빠 집사!! 방향을 잘못 계산했다. 카펫의 뒷면에 맞게 재단된 것이다. 반원의 절반 크기의 모양이라,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같은 방향이 아니었다. 남은 여유분 카펫이 없는 상황. 결국, 자른 카펫을 이용해 맞는 방향으로 다시 자르고, 조각을 내서 나머지 공간에 맞춰 넣는 식으로 했다. 뭐... 크게 신경안쓰면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 눈에는 두고두고 보이는 실수 에피소드가 되었다.



이제 아빠 집사에게 남은 숙제는 펫도어 설치다. 우리집은 베란다가 넓은 편이다. 처음엔 화장실을 베란다에 같이 비치해줬는데, 문을 열어놓으면 화장실 냄새가 같이 거실로 들어오는 것 같아서, 베란다 중에서도 문으로 구획이 나뉘어져 있는 안방 뒤쪽 베란다로 화장실을 옮겨놨다. 그러니, 닫아놓았던 문을 계속 열어둬야 했다. 빨래도 널어놓고, 짐도 쌓아놓는 곳이라, 몇 년 전, 문을 주문 제작해서 설치해 놓았는데, 화장실 때문에 이 문을 계속 열어놓아야 하니 미관상 좋지 않았다. 나는 문 아래에 구멍을 뚫어 고양이가 언제든 들락날락할 수 있는 펫도어를 검색해 남편에게 공유했다. 이런 게 있는데, 문을 톱으로 잘라 직접 설치하면 2만원대에 해결 가능하다고... 아빠 집사는 깔끔하고 좋겠다며, 어떻게든 해보겠으니 일단 주문하자고 했다.

(오케이! 걸려들었어~~)

주문하고, 그 사이 아빠는 또 일주일간의 폴란드 출장을 떠났다. 아빠가 출장을 떠나자마자, 펫도어가 도착했다. 과연, 저 문에 톱질을 해서 네모 구멍을 내고, 펫도어를 깔끔하게 실수없이 설치할 수 있을까?!

이제 곧 출장에서 돌아올, 아빠의 미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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