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Aug 22. 2023

9. 개와 고양이의 시간

묘연이 이어준 소중한 인연.

고양이를 입양하기 전, 정말 우리가 잘 키울 수 있을지!! 자체 필터링을 하기 위해, 여러 검색들을 해보았던 적이 있다. 그중에 '무턱대고 입양한 사람들이 후회하는 고양이 단점',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 알아야할 치명적인 단점' 등의 제목이 들어간 영상들도 봤었다. 대부분 지적하는 문제들이 털, 알러지, 집안 구석구석을 자비없이 뜯어놓는다는 점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여행에 제약이 생긴다는 다는 점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로서는 가장 큰 망설임의 이유가 되었던 항목이기도 했다.


역시나 여름방학이 왔고, 우리에게 2박3일 일정의 휴가 계획이 잡혔다. 아이들은 고양이도 데리고 가고 싶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고양이는 같이 여행이란 걸 다닐 수 없는 동물이라고 한다. 3일간 집을 비우게 될 여행을 앞두고 3가지 정도의 방안을 생각해보았다.  


1. 집에 고양이 혼자 두고 가기.

루꼬가 가장 편안하게 여기는 공간인 집에 혼자 두고, 40분 거리에 사시는 할머니께 하루 한 번 오셔서, 화장실과 사료와 물 등을 체크해달라고 부탁하는 방법이었다. 혹시 할머니가 안된다고 하시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친한 이웃에게 하루에 한번 와서 고양이와 놀아주고 화장실과 사료와 물을 챙겨달라고 부탁해볼까 고민을 해보았다. 이게 하나의 안이 될수는 있겠지만, 루꼬 혼자 있다가 무슨 사고라도 날까, 혹은 사고치지 않을까 살짝 염려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2. 고양이 호텔에 맡기기.

루꼬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이 아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외로움을 좀 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던 날은 유난히 안쓰러워 보였다. 집을 긴 시간 비우고 들어오면 주변을 맴돌고, 딱 붙어서 안떨어지는 모습에 괜시리 미안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단, 고양이 호텔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람이 상주해있고, 여러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으니, 오히려 고양이도 호캉스라는 걸 누려볼 수 있지 않을까...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고양이 호텔이 몇군데 있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살펴보았는데, (고양이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말들도 많지만) 생각보다 나쁘진 않아보였다.  


3. 루꼬를 구해준 첫엄마사람, 구조자 분께 부탁드리기.

사실, 루꼬 입장에서는 이게 제일 행복한 선택일 것 같았다. 루꼬가 우리집에 입양오기 전에 살았던 곳이고, 루꼬의 생명의 은인이 계신 곳이고, 사랑으로 보살펴주셨던 첫엄마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웃 아파트에 사는 구조자 분과는 가끔 루꼬 안부를 전하면서 연락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루꼬의 체취가 묻어있는 담요와 장난감을 그대로 두고 가끔 보신다고 할 정도로 루꼬에 대한 애정이 우리만큼이나 깊으신 분이셨다. 루꼬를 떠나보낸지, 약 2달이 지난 시점이니, 루꼬를 보고싶어하실 것 같기도 했다.



여러 고민 끝에, 구조자분께 조심스레 연락을 드려보았다. 나는 그분을 '고양이 루꼬 은인'이라고 핸드폰에 저장해놓았는데, 은인이신 그분은 흔쾌히, 환영한다고 답변을 주셨다. 감격스럽게도, 먼저 물어봐줘서 감사하다는 말씀까지 해주셨다. 루꼬를 엄마 마음으로 같이 사랑해주시는 분이 이웃에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루꼬로 인해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점도 감사했다.


그분 댁엔 강아지 2마리가 살고 있다. 루꼬를 구조하고, 입양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미 강아지 2마리를 키우고 계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울집 두 짱구 강쥐들도 냄새로 루꼬를 기억할 것 같아요. 기대가 됩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예쁜 강아지들 사진을 보아왔던 지라, 실은 걱정도 되었다. 우리 집에 입양올 때 0.83kg이었던 아기 루꼬가 조금씩 커져서 두달 사이에 1.81kg이 되었고, 가끔씩 진짜 피를 볼 정도로 무는 힘도 굉장히 세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들 팔 다리에는 루꼬가 물고 할퀸 자국들이 몇군데씩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루꼬가 가서 괜히 순둥순둥하고 예쁜 강아지들을 물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두 강아지들과 어떻게 지낼지 그 케미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망의 그날이 왔다.


8월 13일. 아침 9시 30분. 고양이 화장실과 스크래쳐와 사료와 장남감을 챙겨 그분 집으로 향했다. 이동장에 들려서 도보로 병원만 가보았던 루꼬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자 바짝 긴장을 했는지, 여태껏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울음 소리를 냈다. 그래도 차에 타서 아이들이 이동장 문을 조금 열고 안아주자,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분 집에 도착해 벨을 누르자,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동장에 들어있던 루꼬는 이게 또 무슨일인가 싶어서 바짝 긴장한 움직임을 보였다. 집에 들어가는 게 실례는 아닐까 싶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라고 해주셨다. 루꼬를 보다가, 강아지들을 보니, 루꼬가 아직 많이 아기구나...!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강아지 2마리의 이름은 라떼와 레오였는데, 라떼는 엄청 사람 친화적인 강아지였다. 자기 예뻐해주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는지, 어느 순간 같이 따라간 딸 아이의 무릎위에 올라가있었다.


루꼬가 머물 방으로 안내를 받고, 루꼬를 이동장에서 꺼내주었다. 이방은 루꼬가 우리집에 입양오기 전, 아가 때 머물던 방이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루꼬는 이곳을 기억하고 있는듯 보였다.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는 겁에 질려, 오자마자 트램폴린 밑으로 들어가 숨고, 나오지 않았었는데, 이 방에서는 익숙한 듯, 돌아다니며 탐색을 했다. 첫엄마인 구조자분도 기억하고 있는듯 그분의 손길도 순하게 받아들였다. 같이 방에 들어온 강아지 라떼는 새로 들어온 자그맣고 재빠른 생명체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반면, 루꼬는 예측불가능한 라떼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듯 보였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구조자 분도 루꼬를 반겨주었고, 루꼬도 그곳을 잊지 않은듯 곧바로 적응하니 편안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루꼬를 맡기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루꼬가 없으니 허전하다고 이야기했다. 집에 늘 있던 존재가 없으니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건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첫날 밤, 루꼬는 잘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구조자분께서 루꼬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그중에서도 특히 강아지와 루꼬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정말 재미있었다.


결과적으로, 루꼬가 강아지들을 물까봐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루꼬는 강아지들에 비해 체급도 훨씬 작았다. 루꼬는 예측불가한 강아지의 움직임에 방어태세였다. 마치 우리집 6세 아들과 루꼬의 관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떼 루꼬 1일차

라떼는 루꼬가 오거나 말거나 한가로이 앉아 그루밍을 하고 있고, 루꼬는 라떼를 이기고, 이 구역의 1인자가 되고 싶은 눈빛이다. 라떼를 이겨먹고 싶어서 다가가보지만, 1초만에 겁먹고 후퇴하며 혼자서 쌩쑈(!!!)를 하는 모습이...!  굉장히 가소롭고 호들갑스러워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여행지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밤...

사실 밤에 야행성 야생성이 폭발하는 루꼬인지라, 밤에 어땠는지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제가 데리고 잤는데 아직 묘린이가 맞더라구요. 민첩해지고 빨라져서 ㅎㅎㅎ 잘때 레오도 들어오고 싶어해서 합방을 했는데 강아지들은 루꼬가 움직이는 반경을 피해 잘 자더라고요. 사냥 모드는 오전이 넘어서야 순한양 모드가 돼서 만지고 안아줘도 눈감고 꼬리흔들고 골골거리며 쭙쭙이하는데 같은 아이 맞냐며 맘껏 만졌어요."


"민첩해지고 빨라져서 ㅎㅎㅎ"에서 이 아이가 보인 야생성이 짐작이 되었다. 엄마 마음으로 나름 필터링해서 좋은 이야기만 해주신 그 느낌적인 느낌...!  


너무너무 신기한 건, 루꼬를 하수구에서 직접 구해준 구조자인! 큰오빠의 팔베게를 하고 잤다고 한다!!!


팔베게를 하고 잤다고요??? 루꼬가요?


우리 집에선 밤에 잠잘 때 방문을 열어주면, 눈이 똥그래져서는 공격하고 물어대는 통에 아직 제대로 같이 잠이란 걸 잘 수가 없었다.  그런 루꼬가 오빠 팔베게를 하고 잤다니....!! 대체 비결이 뭘까!! 생명의 은인은 역시 다르다 싶었다.


라떼 루꼬 2일차

둘째날 동영상 속 루꼬는 첫번째 동영상보단 그래도 조금 더 의연해져있었다. 어쭈. 몇초간 시선 교환도 한다. 한없이 무해한 라떼 눈빛과 호기심 가득한 루꼬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개와 고양이의 시간이 꽤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간식 시간 동영상!

라떼 루꼬 레오 2일차 밤 간식시간.

"루꼬~! 손!!" 아이들이 집에서 루꼬를 강아지처럼 훈련시키려고 할 때가 있었다.

"손! 할거면 강아지를 키웠어야지~~~" 라고 말하며, 고양이는 손을 달라고 손을 주는 동물이 아니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찍어 보내주신 강아지들과의 간식 시간을 보고 있자니, '어라? 고양이도 이게 되는 건가?' 싶었다. 어쩐지 집에 와서 루꼬가 좀 순둥순둥해졌다 싶었는데, 강아지들과 보낸 시간이 학습이 된걸까?!


이후에, 간식 시간에 "기다려~ 앉아!" 훈련을 하고 있는데, 와....이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여름방학에 고향 할머니댁 다녀와서 예의범절 배우고 온 느낌이랄까?!  (이후, 구조자 분과 할머니 마음으로 루꼬를 봤다는 대화를 나누며,  할머니 나이는 아니니, 큰이모 정도로 해두기로 했다.)


"루꼬가 큰이모댁 다녀와서 더 개냥이가 됐네!!"



이렇게 루꼬를 맡길 수 있었던 덕분에, 마음 편하게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루꼬를 맡기러 갈 때는 과일을 사가지고 갔었는데, 데리러 갈 때는 강아지 간식을 사가기로 했다. 근처 반려동물 용품점들을 검색해보니, 근처에 무인 가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개밥 파는 고양이'라는, 이름도 재밌는 가게에 들러 강아지 간식을 사고, 덤으로 루꼬의 장난감도 몇개 더 샀다. (낚시 장난감을 사면 며칠도 안돼서 아작!을 내놓으니.... 장난감이 은근 자주 바뀌는 소모품이다 ;;;)  


역시나, 이번에도 라떼와 레오가 왕왕 짖는 소리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다인이는 며칠 만에 보는 루꼬보다, 라떼 레오에게 더 마음을 빼앗긴 듯 보였다.

"너는 루꼬는 안 챙기니?" 보다못해 내가 한마디하자,

"루꼬는 집에 가면 계속 볼 수 있는데, 강아지들은 곧 헤어져야 하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인이는 고양이 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좋아하는구나! 다음에 우리가 여행갈 때 라떼를 맡길게~"라고 루꼬 큰이모가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들은 다인이는 하늘을 날듯한 기분이었다. 집에 오면서 "언제 여행 가신대?"라고... 꽤 여러번 물어보았다.


이렇게, 2박 3일간 루꼬는 그곳에서 사랑을 듬뿍듬뿍 받은 듯 보였다. 마지막 날 아침, 가족분들이 루꼬랑 기념 사진도 찍었다고 해주시는 말씀에서 그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여행지 펜션에도 길고양이 부부와 새끼고양이들이 머물고 있었다. 고양이 대가족이었다. 펜션 사장님 부부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밥그릇을 한켠에 두고 나름 챙겨주시고 계셨다.


"와~ 츄르 챙겨올 걸..."


고양이들은 한발짝 다가가면, 세발짝 더 멀어지는 경계심이 있는 고양이였다. 손님들 차 아래가 시원한지, 그곳에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차 아래 있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는데, 자그마한 소리에도 재빠르게 반응하는 아이들이니, 여태까지 큰 사고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거겠지...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바닷가를 다녀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츄르를 몇개 샀다. 펜션 길고양이들은 아직 츄르의 맛을 잘 모르는지, 츄르 봉지만 보면 달려드는 루꼬와 달리, 먼발치서 의심가득한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서 고양이들 나오는 길목에 츄르를 조금 짜놓고 기다렸다. 드디어 냄새를 맡고 한발짝씩 나오는 고양이들.... 그렇게 고양이들에게 츄르를 주면서 조금 친해질 수 있었다.


이젠 어딜가나, 희한하게 고양이가 자꾸 눈에 띈다.





이전 08화 8. 우리 생애 첫 동물병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