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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Sep 01. 2023

11. 금묘의 구역! 식탁 전쟁!

고양이 밥상머리 예절 교육

꽃보다 남자의 그분은,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집 고양이 루꼬는 "천과 발톱만 있으면" 어디든 오를 수 있다.


고양이가 높은 곳을 좋아하는 건 진즉에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수직 상승에 능할 줄은 몰랐다.

루꼬는 기어이 커튼을 부여잡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듯, 조금씩 조금씩 더 높은 곳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이쿠, 저 커튼 어쩌나...

커튼이 발톱에 드드득 드드득 뜯기는 소리와 함께, 내 마음도 드드득 뜯기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저기를 대체 어디까지 오르려는 속셈일까 궁금했다.

저대로 둬도 되나 싶을 만큼, 아찔한 높이까지 올라갔다.

쫄보 초보 집사는 그런 고양이가 너무너무 신기하면서도, 이대로 뒀다가 혹여나 떨어졌을 때 신체에 가해질 타격이 두려워, 더는 두고 보지 못하고 몇 번을 안아서 끌어내렸다. 미처 내려주지 못했을 땐 어떻게 내려오나 궁금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너무 쉽게 폴짝 가뿐히 땅으로 착지하는 걸 목격했다. 아니면, 올라갈 때처럼 드드득 드드득 발톱으로 커튼을 부여잡으면서 내려왔다.

또 내가 루꼬를 과소평가했네! 다 감당이 되니까 올라가는 거였다.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한 나만 쫄보고,

커튼 뜯기는 소리에 맘도 뜯기는 나만 쪼잔하지.


이 글을 쓰면서, 대체 얼마나 수직 상승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줄자로 커튼이 뜯긴 최고점을 재어보니 무려 170cm다! 내 키를 훌쩍 뛰어넘었다. 우리가 호들갑 떨면서 말리지 않았더라면, 끝을 모르고 올랐을 기세다.




이런 아이에게, 식탁과 책상쯤은 껌이었다. 커튼 뜯기는 것보다 더한 피해는, 우리의 식사 시간이었다. 식탁에 음식을 올려놓기가 무섭게 식탁 위로 폴짝 뛰어올라 음식과 컵에 코를 박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번은, 방심한 틈에 아들에게 만들어준 베이컨말이밥에서 베이컨을 홀라당 벗겨 먹었다. 눈앞에서 베이컨을 홀랑 도둑맞은 아들은, 자기 밥도 밥이지만,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먹은 루꼬가 큰일 날까 봐 엄청 걱정을 했다. 내가 발견했을 땐, 이미 입속에서 씹어 넘기고 있던 터라, 미처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식탁에 음식을 올려놓기 전, 꼭 미리 하는 루틴은 루꼬를 베란다로 격리시키는 것이 되었다. 식사 시간에 베란다로 격리된 루꼬는, 식탁 쪽을 바라보면서 꽤 우렁차고 억울한 듯한 소리로 야옹거리는데, 꼭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나는 맨날 똑같은 사료만 주고, 너네만 맛있는 거 먹냐옹!!"


어르신들이 아직 말 못 하는 아가들에 빙의해서 아가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듯, 나도 루꼬가 야옹거릴 때마다 고양이 목소리로(응?!) 고양이 마음을 대변하곤 한다. 그럼 아이들은 루꼬에게 이렇게 대답을 해주곤 한다.  

"루꼬야, 미안해~ 너는 이거 먹으면 아플 수도 있어~ 루꼬 병원 가고 싶어? 아니지?"


(내가 하도 루꼬가 야옹거릴 때마다 고양이 목소리로 통역(?)을 해대니까, 아이들도 전지적 루꼬시점으로 루꼬의 마음을 대변해 루꼬의 야옹을 뉘앙스에 맞게 통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꽤 상황에 맞게 고양이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다.)



이젠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님들을 만나면, 고양이 이야기가 화두가 되어 대화를 이어가곤 한다. 단골 미용실 원장님도 고양이를 2마리 키우시는 집사님이다. 고양이를 입양하기 전부터, 딸아이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데 입양해도 될지 고민이라고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데, 고양이 키우면 좋은 점들을 나열해 주시며 입양을 적극 권장해 주신 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루꼬 입양한 이후 처음으로 미용실을 찾았다. 고양이 입양 사실을 알리며 너무 귀엽고 좋은데, 자꾸 식탁에 올라와서 골치라고 고민 상담을 했다.

원장님은 아무 문제 아니라는 듯 쿨하게, "못 올라오게 계속 교육시키면 돼요~"라고 말씀하셨다.


원장님 댁 고양이들이 절대 올라가지 않는 두 곳이 있는데, 바로 식탁과 침대 매트리스 위라고 한다. 침대는 매트리스 말고 오직 침대헤드 위만 허락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고양이들이 너무 잘 지켜주고 있다고 했다.

자녀 명문대 입학시킨 비법 보다 더 솔깃한 더 솔깃한 고양이 훈육 정보다! 이게 교육으로 되는구나! 어떻게 하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그분의 조언은, 신문지 같은 종이를 돌돌 말아 막대기처럼 만들어 코등에 가져다 대고, 지속적으로 저음으로 "안돼~~~"타이르고 계속 내려가게 하라는 것이었다. 절대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 훈육법이랑도 일맥상통하는 거 같기도 하고....)

암튼, 소리를 지르면 고양이들은 놀아주는 줄 알고 신나서 더 한다고...!! (나는 그동안 물리면, 깜짝 놀라고 아파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는데.... 너 내 반응이 재밌었던 거냥!!)


과연 이게 가르친다고 될까?! 집에 와서 곧바로 실행에 옮겨보았다. 종이를 돌돌 말아 기다랗게 만들어서, 식탁에 올라올 때마다 혼내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안돼~' 말하고 내려놓고, 이것도 안 통하면 종이 막대를 갖다 대며 툭툭 쳐서 내려가게 했다. 이것도 안 통할 땐 손바닥으로 식탁을 내리쳐서 위협적인 소리를 내면 후다닥 내려갔다. 하지만 이렇게 몇 번이 지나고 이 방식에 익숙해지고 나니... 이게 겁을 상실했다!!!


훈육하려고 돌돌 말아 만든 그 종이 막대기를 코끝에 들이대면, 질세라...

종이를 잘근잘근 씹고 맛보았다!!!


아씨.. 졌다!


루꼬는 내가 만만한가 보다. 기어이 그 기다란 종이 막대기가 사냥놀이 장난감인 줄 안다. 난 분명, 지금 널 혼내고 있는 거라구!!!


이대로 루꼬와의 식탁 전쟁은 나의 참패로 끝나는 것인가!! 생각하던 차에, 묘안이 떠올랐다!

루꼬가 화장실에 따라 들어왔을 때, 손에 묻어 있던 물을 탁~ 튕겼는데, 기겁하고 도망가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이 아이와 식탁 전쟁을 끝낼 강력한 무기가 떠올랐다!  

분.무.기.   


분무기에 물을 장전하고, 루꼬에게 분무기에서 물이 나오는 걸 목격시켜 주었다. 이 녀석, 분무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봐도, 36계 줄행랑이다! 오케이~~~!! 테스트 완료!!

나는 식탁 위에 분무기를 비치해 두고, 루꼬의 식탁 침략에 대비했다. 역시나 루꼬는 식탁 위를 침범하려 들었고, 나는 분무기를 집어 들었다.

루꼬 눈앞에 분무기만 대령시켜도, (요게 눈치는 있어가지고) 식탁에서 냅다 내려갔다.

자, 식사 시간에도 테스트해 보자. 식탁 위에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루꼬를 베란다에 격리시키지 않아 보았다. 역시나 기가 막히게 냄새를 맡은 루꼬는, 식탁 위를 점령하려 들었다.

"엄마~~~" 아이들은 식판을 사수하며 엄마를 긴급하게 불렀다. 그 어느 무기보다 강력한 분무기를 대령하니, 곧바로 내려갔다. 의자 위에서 식탁 위로 올라오려고 슬슬 눈치를 볼 때, 어김없이 분무기를 들이대면 슬그머니 발을 내리는 모습을 보니, 하하. 슬슬 나의 승리가 예상됐다!

 

이렇게 며칠 반복하다 보니, 진짜로!!!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식탁 위로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올라오고 싶지만, 꾹 참고 있는 느낌이다!  완전 쾌거다!! 가끔 냄새가 코를 찌르는 햄이나 고기나 생선 냄새는 본능을 못 이기고, 올라올 때가 있지만, 이 또한 분무기만 보여줘도 해결이 된다!  


물론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초보 집사의 고양이 교육열이 이렇게 성과를 냈다고!! 이쯤에서 자랑해도 되겠지 싶어서 글로 남겨본다.

(입이 방정이라고... 이렇게 실컷 자랑하기가 무섭게... 분무기도 잘근잘근 씹어대지는 않겠지?)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강제로 분리하지않아도,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하고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거라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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