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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ug 29. 2023

10. 고양이 펫도어 적응기

내가 또 너를 과소평가했구나!

우리 집에서 현재 루꼬의 공간은 베란다다.

루꼬를 입양하기 전엔, 층간 소음 매트를 깔아놓고 트램펄린을 두어 아이들이 놀이방처럼 이용하던 곳이다. 무더운 여름엔 실내수영장을 설치하고 물놀이를 하게 해주곤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젠 그곳에 캣타워와 사료그릇과 스크래처가 놓여있다.

그리고 루꼬 화장실...!


베란다에 화장실도 같이 놓았는데, 바람을 타고 거실로 냄새가 솔솔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고양이는 냄새가 많이 나는 동물은 아닌데, 매우 습한 날이나, 화장실 청소할 시간 즈음이 되면 어김없이 내 예민한 코를 자극했다. 더구나 화장실을 다녀오면 발가락 틈사이에 끼였던 모래가 화장실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이걸 사막화라고 한다는 것도 고양이를 키우며 알게 됐다.) 사막화 방지 매트도 사서 깔아놓았는데,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지만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모래 알갱이들이 계속 눈에 밟히고 발에도 밟혔다. 그래서 화장실을 안방 쪽 베란다로 옮겨주었다. 거실베란다와 안방 쪽 베란다가 일직선으로 쭉 연결되어 있는데, 안방 쪽 베란다에는 짐도 있고 빨래도 널어놓는 공간이라, 미관상 좋지 않아, 몇 년 전, 문을 설치해 놓았었다. 화장실을 안방 쪽 베란다로 옮겨놓으니, 냄새도 덜나고 거실에서 볼 때도 미관상 훨씬 좋았다. 하지만 설치해 둔 문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 문을 설치하러 오신 분께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문 아래쪽에 펫도어가 달린 문을 설치한다고 살짝 언질을 해주셨었다. 그때만 해도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그냥 흘려들었는데, 이렇게 펫도어를 고민하는 날이 왔다. (역시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문을 닫고 펫도어를 설치해서 깔끔하게 화장실과 루꼬의 생활공간을 분리해주고 싶었다. 문에 구멍을 뚫어 펫도어 설치한 사람들의 후기엔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설치하고 나니 너무 좋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동시에 문에 네모난 구멍을 요령 있게 뚫기 위한 팁들이 적혀있었다. 드릴과 톱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우리는 무작정 펫도어를 주문했다.


아빠 집사는 도착한 펫도어를 두고 며칠을 미루고 미루다,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을 먹고, 시댁에서 드릴을 빌려왔다. 인터넷에 이미 설치한 사람들이 알려준 팁은, 자르려고 하는 부분에 먼저 드릴로 구멍을 내어놓고 톱질을 하라는 것이었다.

펫도어를 문에 대고 연필로 자를 곳에 밑그림을 그렸다. 그 선을 따라 드릴로 구멍을 다다다다 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톱질이 수월해지려면, 되도록 촘촘하게 많은 구멍을 뚫는 게 좋다는 걸 터득했다.


두두두두~~~~

쓱쓱쓱쓱~~~~


흩날리는 톱밥과, 방울방울 맺혀 떨어지는 땀방울에서 그의 힘듦이 가늠이 되었다. 마침내 구멍이 뻥 뚫리고, 그 구멍에 펫도어를 끼워 넣는 데 성공했다. 펫도어의 두께가 보통 문의 두께에 맞춰져 있는데, 우리 집 베란다 문의 아래쪽은 딱 그 부분이 얇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펫도어가 딱 맞게 고정되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그래도 미관상 많이 티가 나거나 실사용에 큰 지장은 없었다.



자, 이제 루꼬의 사용 타임~~~!!


처음 보는 펫도어를 이 아이가 사용할 수 있을까. 아이들과 츄르를 이용해 문을 드나드는 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한 명은 문 반대쪽에서 츄르로 루꼬를 유인하고, 반대쪽에선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네가 드나들 문이야'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었다. 루꼬는 킁킁 냄새만 맡지, 도무지 그 문을 통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 너머에 그렇게 좋아하는 츄르가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손으로 문을 활짝 열어줘야 통과해서 츄르를 먹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혼자 통과하게 유도해 보았다. 몇 번은 성공을 하다가, 한 번은 나올 때 몸을 재빠르게 빼지 못해 발이 껴서, 결국 '아악~~' 루꼬의 아픈 비명 소리도 듣고야 말았다.


아... 쉽지 않구나...  


이대로 그냥 두었다가는, 혹여나 화장실을 안 가게 될까 봐, 첫날은 구멍을 통과하는 펫도어의 문을 열린 채로 고정시켜서 테이프를 붙여놓았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둘째 날 아침, 문에서 열린 채로 고정시켜 놓았던 테이프를 떼어내고 펫도어가 닫힌 상태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루꼬가 너무 쉽게 펫도어를 통과해서 화장실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어?! 너 이제 할 수 있는 거야?


이젠 완전히 터득을 한 건가 싶어서, 문을 닫아놓고 계속 잘 드나드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몇 시간 후, 화장실 청소를 해보니, 역시나 루꼬가 드나들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루꼬야, 내가 또 너를 과소평가했었구나!'


요즘 밤에 안방에서 자고 있으면, 루꼬가 펫도어를 통과하는 소리가 종종 들린다.

잠결에 '녀석, 화장실에 다녀갔구나' 짐작을 한다.


그리고, 요즘엔 가끔 펫도어에 냥냥펀치를 날리며 장난감 삼아 노는 모습도 목격하곤 한다.

펫도어 사용법을 터득한 루꼬가 대견하고, 펫도어에 냥냥펀치 날리며 노는 모습이 그저 귀엽다!


아이들 키우면서도, 이렇게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격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엔 점점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럴 때면, 아가 때 사진을 꺼내보며 마음가짐을 정돈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소리는 계속될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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