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동물병원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동물 병원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게 어렸을 때, 시골 할머니네 동네에 있던 강아지를 잠깐 데려와서 키우다가 다시 할머니네 동네에 데려다준 적이 있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2023년 7월 20일. 고양이를 입양하고 딱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구조자 분이 우리에게 루꼬를 데려다주신 날, 병원에서 1차 예방접종을 해주시고 오셨다. 한 달 후가 2차 예방접종이라고, 동물수첩을 주셨기에, 그날에 맞춰 아이들과 함께 동물병원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마침 딸아이의 초등학교 여름 방학 첫날이었다. 고양이가 너무 좋아서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딸이, 처음으로 동물 병원에서 수의사 선생님을 직접 대면하는 날이라 의미 있기도 했다.
루꼬는 우리 집에 오고 나서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바깥나들이(?)를 하는 것이었다!!
나들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가끔 얘를 데리고 강아지처럼 산책을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가족들과 계곡이나 산 같은 넓은 자연에 가면, 여기도 같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사냥 놀이 할 때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걸 보면, 우리 집은 얘한테 너무 작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밖에서 맘껏 뛰어다니고 찐 사냥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번 사람 손을 탄 집고양이는 자연에 나가면 적응하지 못하고,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자기 구역에 있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하니, 한 달 동안 열심히 문단속을 하며 집에만 있게 했다. (그래도 간혹 생각한다. 이것은 사랑이란 이름의 탈을 쓴 감금은 아닐까...)
병원 방문 날을 앞두고, 이동장을 주문했다. 넓적한 천가방에 바닥이 탄탄한 재질로 되어 있어서 고양이가 잠시 머물 때, 공간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수의사 선생님이 고양이를 꺼낼 때는 위에서 꺼내야 한다는 팁(!)을 들은 바 있기에, 윗 자크가 있는 가방으로 골라서 주문했다. (물론 양 옆으로도 자크가 달려있어서, 고양이가 드나들기(?)에도 적합했다.
가방이 처음 온 날, 아무것도 모르는 루꼬는 가방에 호기심을 가지고 홀랑(?) 안으로 들어갔다. 잽싸게 자크를 닫자, 가방 벽을 박박 긁으며 아옹거리기 시작했다. 가방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줄까 봐, 얼른 꺼내주고, 들락날락하면서 놀라고 루꼬 구역에 놓아주어 보았다. 하지만 똑똑한 이루꼬는, 이후 그 가방 안에 잘 들어가지 않아, 가방은 그냥 안 보이는 곳에 잘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대망의 병원 가는 날! 6세 아들(우리나라 바뀐 나이 계산법으로는 고작 4세)은 유치원에 보내놓고, 딸만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6세가 하필 그 주에 감기에 걸려 집에 있던 날이었다. 집에 있던 아들도 굳이 같이 가겠다며 졸라대기 시작했다. 감기도 거의 다 나은 시점이었기에, 그럼 마스크를 쓰고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집에만 데리고 있던 루꼬를 밖으로 데려나간다는 사실에 잔뜩 기대를 했다.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아유~ 귀여워~~"라고 말하던 아이들이라, 고양이도 데리고 나가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딸과 아들은 고양이 이동장을 서로 들겠다고 고집부리기 시작했다. 이동장이 크기 때문에, 결국 누나의 손에 들려 이동하기로 했다.
동물병원의 위치는 바로 우리 아파트 단지 옆에 있었다. 도보로 5분도 안 되는 거리라, 이동장을 들고 걸어갔다. 이동장에 갇혀서 나온 루꼬는 두려움이 섞인 야옹을 내뱉으며 가방 벽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병원에 간다는 걸 직감한 걸까! 한 달 만에 밖에 나왔는데 갇혀있는 게 싫어서 그런 걸까! 자기 영역이 아닌 낯선 곳에 나와서 그런 걸까!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동물들이 탈출할 수 없는 안전문이 한번 더 설치되어 있었다. 루꼬가 구조자 분에 의해 처음 구조되고, 10분만 늦었어도 죽을 뻔했던, 그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아가 때부터 치료를 받으며 다니던 병원이다. 병원에 도착한 루꼬는 생각보다 덜 애옹거렸다. 데스크에 동물 병원 수첩을 내고, 예방접종을 하러 왔다고 얘기했다. 병원 수첩에 보호자로, 이전 구조자분 이름과 연락처가 등록되어 있기에, 보호자 변경을 해주셨다. 병원에 내 번호와 이름을 등록하니, 진짜 입양 절차 밟는 듯한 느낌이었다.
드디어 진료실 입장!
푸근한 인상의 친절한 수의사 선생님이셨다. 루꼬의 과거를 모두 알고 계시는 분이셨다. 몸무게도 재고, 루꼬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시더니, 잘 크고 있다고 걱정할 부분이 없다고 해주셨다. 그리고 아이의 몸길이를 보시더니, 아이가 많이 크겠다고 하셨다. (이대로 더 오래 쪼꼬미로 있어줬으면 좋겠지만 ^^;;)
원래는 1차 예방접종을 하고, 3주 후에 2차 예방접종을 받았어야 한다고 하셨다. 수첩에 적어주신 날짜를 보고 온 거라고 말씀드리니, 날짜를 잘못 계산해서 적은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도 큰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 괜찮다고 하셨고, 3차 예방 접종은 3주 후에 오라고, 날짜를 잘 체크해서 적어주셨다.
그리고, 심장사상충 약을 한 달에 한번 발라주면 좋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심장사상충 약을 보여주시고, 어떻게 발라야 하는지 친절히 설명해 주시면서 시범을 보여주셨다. 고양이의 손(?/앞발!)이 닿지 않는 머리 살짝 뒤쪽 목에 발라주셨다. 그리고 24시간 동안 그곳을 만지면 안 된다고 하셨다. 아이들과 다 같이 이야기를 듣고 본 덕분에, 아이들도 24시간 동안 루꼬의 뒷목을 만지지 않는 것에 굉장히 신경 쓰고 지켜줬다.
그리고 대망의 주사! 아이들은 안다. 주사의 공포를! 그래서... 루꼬가 주사 맞는 것에 대해 굉장한 걱정과 연민을 가지고 있었다. 주사 맞게 될 루꼬를 달래주기 위해, 츄르까지 챙겨갔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루꼬는 수의사 선생님 손아래 매우 얌전한 고양이였고, 애옹 소리 한번 없이 얌전히 주사를 맞아주었다.
생각보다 조용히 싱겁게(?) 주사 타임이 끝났다. (다음에 언니 오빠 주사 맞을 때, 루꼬랑 비교되게 생겼네!!)
진료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우연히 6살 아들의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고양이 소리가 들리니 다가와 관심을 가져주었다. 아이들은 우리 루꼬 자랑하고 싶어서 신났고!!
하지만 밖에 오래 있을 수는 없으므로, 잠깐만 가방 안에 있는 루꼬를 보여주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주사를 맞은 루꼬는 평소와 다름없이,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아이가 방학을 하면 더 바빠져서인지,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약 3주나 지나서 쓰게 됐다. 어느새 이번주 목요일이 두 번째로 동물병원을 방문하게 될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8월 8일. 고양이의 날이라고 한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엔 이런 날이 있는 줄도 몰랐다.
딸에게 "고양이의 날"이라고 하니까, "우리한테 어린이날이 있는 것처럼, 루꼬한테는 고양이날이 있는 거야?!" 하면서 기뻐했다. 그러면서 루꼬를 위한 특식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특식은, 연어 츄르에 치킨 트릿과 사료를 토핑으로 뿌려서 만들어주었다. 루꼬는 언니가 특식을 만들어주자마자, 그 자리에서 그릇이 깨끗해지도록 맛있게 클리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