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시선, 광활한 세상

좁은 시야는 무섭도록 커져만 간다.

by 여기루


'셰어하우스를 가보는 게 어때? 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봐.' 친구가 갑자기 건넸던 말이다.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일말의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도 바쁜 시기였다. 처음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경험 삼아 가보기로 했다. 셰어하우스를 간 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저마다 어떤 이유로든 여행을 온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로 지금도 삶을 더 진중히 바라볼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 진절머리가 날대로 나버린 나는 모순적이게도 셰어하우스에서 한달살이를 한다. 사는 건 어딜 가나 똑같지만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는 순간 나는 세상의 크기를 또 한 번 실감했다. 만나던 사람들만 만나다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에 매료되었다.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사람들의 성향, 삶에 대한 태도들에 배울 점이 많았다. 제일 많이 깨달았던 건 내 주관의 세상이 그저 전부인 듯 바라봤던 시야 좁은 어른 아이 세상이었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는 내 말에 지금까지 하고 싶은 거 다 해왔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 괜찮은 대학에 들어갔는데도 다른 꿈이 있다며 다시 재수를 한 사람,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버스킹을 취미로 하는 사람, 제주도가 좋아서 주소지도 바꾸고 무작정 제주도에서 일하러 온 사람, 영화감독, 편집 디자이너, 이름 들으면 다 아는 유명한 브랜드 직원, 건설업 직원, 연극영화과 학생, 정신과 의대생, 한의대생, 초등학교 교사, 소방공무원 합격하고 교육받기 전에 여행을 떠나 온 사람, 퇴사 후에 여행을 온 사람, 대학 입학 전에 혼자 한달살이 하러 온 20살 청년, 용기 있는 자들만이 모여있는 세계 같았다. 나도 용기를 냈다고 생각했지만 나보다 더 멋지고 뛰어난 용기를 가진 청년들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자기 앞가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제주도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꿈을 물어봤을 때 꿈이 구체화가 되어있던 사람들 중 몇 명의 이야기가 아직도 선명하다. 24살 민지, 부모님의 기대로 재수를 해서 한의대 쪽으로 진로를 정해서 다니지만 자신은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웹툰을 그리며 다른 세상에서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 이 동생은 꿈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 지 알고 실천 중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어중간한 공부로 더 나은 곳으로 취업할 생각밖에 안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보다는 현실적인 면을 우선시하며 꿈이랑 멀어졌었는데 그 동생이 말하는 걸 듣고 아, 꿈은 계속 꿔야 하구나 했다. 22살 연서라는 애에게 꿈에 대해 물어봤다. 네덜란드를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육지로 돌아가 해외취업을 알아본다는 말을 들을 때 연서를 볼 때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꿈이 있는 사람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자신이 흥미 있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땐 사람들의 동공은 확장이 되는 걸 볼 수 있는데 특히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눈빛부터가 다르다. 대학 들어가기 전에 한달살이를 왔던 20살 청년 도현이는 인간관계에 진절머리 난다는 말을 줄곧 하곤 했다. 조용히 혼자 지내려고 왔던 제주도 셰어하우스 살이를 하고 육지로 돌아갈 때 내게 메시지를 남기고 갔다.


전 원래 사람을 정말 좋아했던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하게 되는 일만 육지에서 잔뜩 있었어요. 근데 공항 가는 택시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면서 그래도 나 아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을 얻는 걸 좋아하는 걸 느껴요. 누나 정말 고마워요. 잠깐잠깐 했던 대화 속에서 정말 큰 힘 얻고 가요 정말로. 평생 못 잊을 거예요! 나도 어른이 된다면 누나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항상 누나가 노력했던 모든 과정이 열매 맺는 날이 오길, 가는 모든 길에 행운만 가득하길 기도할게요!(무교)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 놀라웠다. 제주도에 있으면서 사회에서의 내가 아닌 오직 나다움을 보여줬을 때 여행자들은 내게 아낌없이 칭찬을 해줬다. 도현이랑은 종종 sns로 서로 잘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묻는다. 사회로 돌아갔을 때 친구들과 잘 지내는 사진을 줄곧 보내주기도 했다. 이렇게 우린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관계 맺고 때론 상처받은 마음을 또 사람들의 따뜻함으로 치유받으며 나아가야 하는 존재였다.


자기가 원하는 걸 찾아가는 주체적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도 많았다. 이 멋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선 틀에 박혀 안정만 추구하다 온 나의 지금의 선택이 틀린 게 아니었구나.라는 나의 확신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인간관계와 사회에 지쳐 떠나온 나는 다시 사람에게 따뜻함을 느낀다.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불가피한 생에서 나는 또 어린 마음이 열렸다. 학창 시절 순수하고 재고 따지는 마음 없이 편안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회에 적응해버린 어른 아이의 동심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내가 보는 시야가 한순간에 넓혀지기도 해서 무섭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사회에서의 내가 아니라 오로지 나라는 사람을 보일 때 소통하고 배우니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아졌다. 역시 일이 나를 병들게 했던 거구나.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하며 다른 방향으로 기울이는 마음을 차단하려고만 했던 내 얄상한 마음이 답이 아니라는 걸 찾아가고 있었다. 저녁엔 맥주 한잔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날의 계획을 짜고 같이 맛집을 찾아다니고 예쁜 카페를 가고 바다에서 발을 담그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꿈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어딜 가던 바다가 보이니 유해지는 내 마음은 단순했다. 결이 같은 여행자들의 마음은 말을 안 해도 통하는 게 많았다. 하지만 꿈같은 시간들은 영원할 순 없었다. 짧은 사이에 그렇게 정이 든지도 모른 채 이별의 시간은 왔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언제나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 서로를 응원한다는 말과 종종 연락하자는 말을 하며 그렇게 우린 다시 사회로 흩어졌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계속 꾸고 있던 1월이었다. 최고의 순간들을 겪은 시작이 내 옳은 결정을 증명해주었고 결이 맞는 사람들에게 나다움을 비춰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행복했던 순간의 인연들에게 너무 고맙고 보고 싶다.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치였던 나는 또 사람들에게 치유받는다.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란 걸 깨달았던 순간들이 많았다. 제주도의 한 달 셰어하우스 살이에서 온전한 나로서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물론 삶에 대한 태도도 확실히 달라졌다. 진취적으로 도전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확신에 찬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선택들에 확신을 준 그대들을 잊을 수가 없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 준 그때의 시절 인연들을 잊을 수 없다. 글을 쓰게 된 용기도 하고 싶어 하던 일을 하는 것, 나는 지금도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 평탄했지만 결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의 지난날들에게 지금의 선택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줄게.


여행을 하며 얻은 건 삶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결단을 내려 본 경험이 몸에 선명히 새겨져 있을 뿐이다. 다시 생업에 돌아가도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임하게 될 것이다. 언제든 다시 주체적으로 나에게 최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태도, 내가 가지 않은 길을 걸은 남을 폄하하기에 급급한 이의 그것과는 다르다. 해보지 않은 이의 조언은 내가 만들려는 작고 소중한 세계를 뭉개기 일쑤다. 설사 골로 간다 쳐도, 실컷 울고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다. 잠깐 쉰다고 지금껏 쌓은 경력과 실력이 어디 가진 않는다. 그만큼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면 선택이 쉬워진다. 내 삶의 주위에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끌고 가는 것이었다. 번듯한 직장은 부모님이 대화할 때 혹은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편리할 뿐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요한 일은 놓치며 실력 또한 놓치는 기분이었다.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을 무렵부터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재밌는 일을 오래 하고 싶어서 퇴사를 했다. 회사를 나와서야 어떤 환경이 나를 춤추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싫은 건 적게, 좋은 건 자주 하다 보면 결국 가장 자기 다운 일을 하게 된다고 믿는다. 퇴사 전 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곽새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