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치로 나무를 태운다.
게스트하우스와는 다르게 비교적 장기간 숙박을 하는 곳이 셰어하우스다. 셰어하우스는 전국구에서 가지각색의 직업과 다채로운 색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전까지는 셰어하우스에 무지하기도 했고 누군가와 같이 어울린다는 건 스물아홉인 내겐 부담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런 내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해보니 상상조차 하기 싫다.
아마 내 인생의 변환점은 셰어하우스가 시점이라 해도 무방하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의 아름다운 세상이 실존할 줄은 몰랐다. 세상의 경험이 더해질수록 세상의 크기는 점점 더 넓어져갔다. 내가 보던 좁은 시야의 사람들은 한정적이었고 똑같은 일상이 전부라 생각했기에 내겐 더욱이 충격이었다. 그들의 세상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어서 이제라도 세상의 광활함을 안 내가 다행의 한숨을 내쉰다.
이 여행이 끝나면 우린 각자도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도 알기 때문에 가면을 쓸 필요도 없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사회에서 할 수 없던 이야기를 더 편하고 진실되게 내비친다. 처음엔 적적한 마음과 조금의 호기심으로 왔지만 셰어하우스 인연들과 생에 최고의 순간들을 보낼 줄은 몰랐다.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정도로 내겐 찰나였지만 영원하다.
여전히 새로 들어오는 여행자들은 낯설지만 아이러니하게 마음 편한 셰어하우스 환경에 흥미로워했다.
하지만 '첫 느낌은 강렬하다'는 말은 괜히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의 최고의 순간들은 추억 한 편으로
이미 자리 잡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처음 마음과는 달리 다른 새로운 사람들과의 여운은 오래가진 못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이별엔 적응이 힘든 동물이다. 하나둘씩 육지로 떠나가는 여행자들을 볼 때,
너무 정을 줘서도 안 되겠구나.
여행자들과 가까워질 만하면 다음 날에 아무 일 없었단 듯이 떠났다. 마치 학창 시절에 친한 친구를 전학 보내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매일, 그래서 마음 잘 날이 없었다. 그 당시에 릴러말즈 노래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노래가 적잖게 와닿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셰어하우스에서 두 달 정도 살 때쯤에 사장님이 갑자기 스텝 제안을 했다. 퇴사를 하고 오로지 여행자로 왔기에 스텝을 하게 되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의무감이 싫어서
처음엔 거절을 하다가 당시에는 현지인처럼 살다시피 했기에 이것도 경험이랍시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처음에 여행을 온 사람들에게 숙소 규칙들을 알려주고 통솔을 해야 하는 게 스텝이 역할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배운 게 사회생활이었으니 내겐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눈치 있게 빠릿빠릿하는 것도 다 잘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는 게 처음인 걸 간과했다. 이불 안에 솜을 정리하는 것도 이불 빨래하는 것도 베개 커버 가는 것 하나도 능숙하지 못했다. 여행을 즐기러 온 자들에게 소리를 좀 낮춰달라 하고, 행동 규칙이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다그치는 것, 보일러에 신경 써달라는 것, 12시에 소등시켜야 하는 경비임무, 분위기를 조금은 이끌어나가야 할 것만 같은 정적이 내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인 지 아닌 건지 뭐든 처음이었다. 병원 근무를 하면서 나는 어느 정도 공과 사를 지키는 쪽이었기 때문에 후배가 실수하면 할 말은 했고 컴플레인이 들어와도 해결 능력이 탁월했다고 생각했다. 제법 6년 동안 배운 게 전문적인 지식과 의연하게 뭐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 난 제법 다른 세상에서는 쓸모없을 수도 있구나' 생각을 했다. 손톱만치 좁은 세상에서 주먹 쥐는 거만한 애였던 것이다. 이 알량한 부끄러움은 스텝을 하면서
혼자 성찰하게 됐다. 스텝을 하면서 사회생활의 연장선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완전 다른 세계에서의 일부분을 경험한 것이다. 또 여행자들은 나를 더 이상 여행자로 보질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소속감이 없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처음 여행자로 왔을 때의 황홀한 기분과 후에 여행자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씁쓸함까지 어느 정도 좋은 추억과 경험을 충분히 만끽했다는 생각을 하고 나도 더 이상 새로운 여행자들에게 연연하진 않으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여행자인 나와 스텝인 나의 괴리감을 좁혀나가면서 사장님이랑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장님이란 소리가 좋은데 언니라고 불러요.' 하는 순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언니라고 부르게 됐다. 같이 시간을 보내며 나와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면이 있는 언니와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다.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월급쟁이였던 나는 사장 언니가 하는 일을 보면서 살면서 할 수 없던 경험을 하게 된다. 언니는 퇴사를 하고 제주도 셰어하우스 스텝을 하러 왔는데 자신도 셰어하우스를 운영해보고 싶어서 무작정 제주도로 내려왔다고 한다. 내게 있어서 언니의 세상이 정말 신기했다. 내가 스텝 하던 시절에 또 다른 독채펜션을 준비하는 과정을 옆에서 보게 됐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언니의 결단력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처음 겪어보는 일들 뿐이라 당시에 목장갑의 앞뒤 구분도 못하던 나는 언니가 구해온 목재를 토치로 그을리고 사포질로 매끈하게 만든 후에 천장에 달아보기도 했다. 언니와 쪼그려 앉아 스위치를 조립해서 전기삼춘이랑 실랑이 펼치기도 했다. 어느 날 언니는 그라인더를 구해와서 벽의 매무새를 다듬고, 망치를 가져올 것을 오함마를 가져와서 벽을 뚫을 뻔도 했다.
또 다른 현장의 세상을 믹스커피와 함께 경험했다. 언니는 창문, 타일, 페인트, 전기, 각각 다른 삼춘들에게 맡겼는데 하나하나 언니가 직접 관여하고 확고하게 독채펜션을 자신만의 것으로 꾸며나갔다. 단 하나도 대충 하지 않았다. '자러 오는데 잠자리가 편해야지.'라는 말을 줄곧 하곤 했고 조명을 일일이 제작 주문했고 벽과 조명이 떨어지는 간격까지 언니의 뜻대로 안 되면 기적처럼 되게끔 창조했다.
나는 한 번이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서 나의 의지로 나아갔던 적이 있을까?
언니는 당시에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지만 조금씩 자신이 그려왔던 펜션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고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그 많은 복잡한 일들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게 힘들었을 법 한데 내색도 안 했다. 힘들 틈도 없이 고도의 몰입, 간절함과 열정의 가속화로 힘든 마음조차 달랠 겨를이 없었던 것 아닐까?
나는 그 모습에 강단한 아우라를 보았다. 지갑과 카드가 어딨는지 모르면서 찾을 생각조차 안 하고 매일 아침 대충 모자만 쓰고 10분 만에 현장을 가는 언니를 봤을 때 일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언니의 인생과 한 사람의 인생을 직관할 수 기회를 잡고 세상의 크기를 점차 알아갔다. 세상은 광활했다. 생각보다 무서웠다. 크게 보이기 시작한 세상은 분명 나를 보고 '이제 광활한 나를 알았으니 너의 인생을 살아가 봐.'라고 말했을 리 만무했다.
왜 내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을까?
편한 건 역시 위험해.
내가 보았던 병원에서의 삶은 완전한 게 아니라 일부분이었다는 사실을, 나도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몰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언니는 독채 펜션을 운영 중이다. 같이 작업한 펜션 천장의 나무와 하나하나 조립했던 월넛 스위치를 보면 막상 뿌듯하고 나의 추억 속의 하나가 가공된 나무로 기억되는 게 재밌기도 하다. 나무를 사랑하게 되어 먼 훗날엔 작은 공방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도 언니와 자주 연락한다. 셰어하우스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도 종종 연락하며 안부를 묻는다. 제주 언니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은 출봉이다. 성산읍에 사는 언니는 성산일출봉의 이름을 따서 출봉이라고 지었다. 아침에 출봉이랑 해안도로를 걸으며 산책을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딜 가도 보이던 바다의 윤슬, 지치면 안아달라고 하는 출봉이와의 산책은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감히 상상조차 못 했던 세상의 제주 겨울이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잊어버리고 경도와 위도가 얼마나 긴지 무덤덤해진다. 하지만 그 광활함을 알아차리고 나면 무언가로 인해 광활함이 드러나면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희망이 생기고 그것은 고집스럽게 달라붙는다. 노라는 아마도 자신의 삶을 끝내려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노라는 살고 싶어 했다. 북극곰을 만날 때도 살려달라 외쳤고 애쉬를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때도 정착하고 싶음을 느꼈다. 노라는 마지막 펜을 들고 써 내려간다. '난 살아있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메트 헤이그, 2021)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