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계속 말하고 있었다. 퇴사를
커피가 몸에 안 맞다고 느낀 건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내 심장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크게 들릴 때였다. 그래도 내겐 당연하게 찾고 당연하게 마셔야 하는 게 습관성 커피였다.
6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침에 날씨가 좋으면 커피를, 안 좋으면 또 안 좋다고 커피를 사서 출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왠지 모를 아쉬움에 아메리카노를 먹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가며 커피를 마셨다. 직장인 마의 3시쯤엔 피곤하다고 커피를 자연스럽게 찾고 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커피를 찾을까?
직장을 다니면서 아침마다 커피를 한 손에 쥐고 출근하는 게 직장 출근하기 전 하나의 작은 기분전환이라고 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하니까 커피 한잔으로 내게 위로를 하고 있던 걸까?
다른 직장인들과의 피곤의 유대감을 위해서?
공적인 곳의 허한 직장에서 카페인에라도 의지하고 싶던 내 심란한 마음이었을까?
물론 기분 좋아지는 카페인을 싫어하진 않는다. 피곤할 때 찾을 수도 있다. 다만 '아 커피 먹고 싶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한 숨을 커피 한 모금으로 삼키고 있던 걸까. '현대인의 맹목적인 도피처 카페인' 따분한 하루에 커피 한 잔 마시는 걸 당연시했다. 그래 놓고 심장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적도 많았다. 나의 이 허함을 당장의 카페인으로, 짧은 시간이어도 커피에게 관심이 가는 작은 일탈이 어느새 도피처가 된 것이다. 흥분을 일으키는 카페인은 그 즉각 반응이 와서 기분을 업되게 만드는 성질이 있다. 당장의 기분만 찾고자 내 심장벌렁임은 뒷전으로 커피잔을 어느새 또 들고 있다.
퇴사에 한걸음 내디딘 순간부터 자연스레 커피와 멀어지게 됐다.
결심만으로 나의 앞을 내다보니 의지 할만한 것들을 애써 찾을 이유도 없었다.
퇴사하고서의 나의 생활을 그리다 보면 나와 안 맞는 커피에 내어줄 마음이 없었다. 퇴사 생각만으로도 카페인을 하찮게 보다니. 커피 한잔을 도피처로 생각한 게 지금 보면 웃프기까지 하다. 퇴사를 한 지금은 애증이었던 커피를 건강상 멀리하고 있지만 한 번씩은 커피를 찾아 마신다. 하지만 커피는 더 이상 나의 도피처가 아니다. 의지의 대상이 아닌 그냥 나의 기분을 조금 업되게 해주는 부수적인 대상이 되어버린 커피가 직장을 다닐 때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