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에서 일용직

반복 작업이 적성에 맞을까?

by 여기루


생계유지 + 전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의지 +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 + 적성검사(?)로 알바몬을 뒤적거리다가 한 면을 도배한 쿠팡 신선센터가 일당 지급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신청을 했다.

오전 8시부터 17시까지 하는 오전 조를 신청했고 그렇게 첫 출근을 하게 됐다.

6시 37분에 집 앞으로 오는 셔틀버스가 있어서 5시 반에 일어나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나는 첫 노선의 첫 노동자다. 날 어두운 새벽에 출근은 또 처음이다. 내 뒤를 이어 나이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줄곧 탔다. 나보다 한참 어린 학생이나, 아주머니들, 내 또래 사람들도 많았다. 다들 열심히 살아간다. 내 옆에 나보다 어려 보이는 애(지극히 주관적 입장)는 능숙하게 바코드를 찍고 탑승하고, 저 멀리서 오는 아저씨는 기사님과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나는 초신입이라 멀뚱멀뚱 이들만의 세상을 훔쳐보고 재미를 느꼈다.

노래 몇 곡 듣고 나니 1시간 이상 거리도 체감상 짧은 시간으로 신선센터에 도착을 했다.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긴장과 설렘에 얼른 배우고 싶은 마음도 컸을 것이다.


7시 50분 정도에 내려서 사람들이 자연스레 가는 곳으로 뒤따라 갔다. 2층으로 가라는 안내원의 지시에도 길을 잘 몰라선 갈피 못 잡고 어수선한 환경에 이곳저곳 살펴본다.


"처음 오신 분들은 교육받아야 하니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일용직도 교육을 받는 쿠팡의 체계가 신기하고 독특했다. 아니 뭔가 체계가 잡힌 느낌이라 든든했다.

두 시간가량 앉아서 교육받은 것을 시급으로 쳐주는 쿠팡이 다르게 보였다. '한낱 일용직에게.. 역시 대기업'

교육자 사인을 하고 교육이 집중 안 돼도 집중하는 척이라도 했다.

23살 이후로 한 적 없는 국민체조까지 멋쩍게 대충 마친 후, 나는 본격적으로 일을 배웠다.

OB를 총괄하시는 분은 빨간 조끼를 입고 계시는데 지칭은 캡틴이라고 부른다.


캡틴 - "자자 탈의실 들어가서 방한복이랑 방한화 신으세요."


나 포함 4명 정도의 신입은 서로 입고 나온 옷을 확인하며 '이렇게 입는 게 맞군.' 하며 무언의 안도감을 비춘다.


내가 처음 하게 된 일은 OB(출고)였는데 쉽게 말해서 쿠팡으로 들어온 물건을 집 품, 포장, 진열하여 상, 하차팀에 보내주는 것이다. 그중에도 집 품 [피킹]을 하게 되었는데 신선센터에 있는 각종 야채, 냉동식품, 신선제품들을 토트, 카트에 담아 컨베이어에 놓고 포장까지 가게끔 해주는 반복 업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씩 나눠주는 PDA를 로그인하면 나의 정보가 뜬다. PDA 지시에 따라 지정된 장소로 이동을 하고 담을 상품을 바코드로 찍어 토트에 담아 어느 정도 물건이 차면 컨베이어에 놓으면 되는 시스템이다.

8시간 동안 마트에서 장을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근데 근무시간에 핸드폰 소지 금지와 쉬는 시간이 없다는 건 내겐 조금 열악한 환경이긴 했다. 그래도 일당 지급에 소속감 없이 내 할 일만 충당하면 된다는 게 장점이었다. 소속감 없이 일을 해보는 게 오랜만이어서 부담도 없었다.

말 그대로 마트에서 정말 하루 종일 장을 보는 느낌이다. 적막한 공간에서 내 할 일만 하면서 PDA가 지시한 대로 하면 됐다. 머리를 쓰는 근무가 아니라 편하긴 했지만 핸드폰도 하질 못하고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게 내겐 곤욕스럽긴 했다. 집중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딱 육체적인 노동이어서 나와는 맞지 않다고 단정 지었다. 심지어 앉을 곳도 없고 계속 서서 일하면서 무거운 토트를 옮겨 컨베이어까지 가는 반복 업무로 손목과 두 다리에 무리도 가는 게 느껴졌다.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찰나에 육체적 노동도 비교적 없고 핸드폰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던 병원이 생각나서 '병원 다닐 때가 좋았네,, 아니야 나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잖아. 나약해지지 마! 아직 경험할 것들은 수없이 많아. 경험을 하기 위해 퇴사를 한 거라고!'


내가 퇴사를 하면서 제일 많이 다짐했던 건 '순탄하게만 살아와서 순탄한 길만 가지 않겠습니다.'였다.

다신 돌아가지 않겠다는 나의 강단 한 마음이 순간의 무의식 속 후회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무서웠다. 그런 생각을 한 나에게 실망도 했다. '사람은 편한 것만 찾으려고 하는구나.'


캡틴이 지켜볼 것만 같아서 농땡이를 피우지 못했다. 하지만 난 꼼꼼하지 않아서 잦은 실수가 많았다.

당연히 처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스스로에게 용서가 안 됐다고 해야 하나, 아니 병원에서는 연차로 인해 비교적 높은 위치여서 눈치를 본 적도 없고 실수를 해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는데 불편한 감정이 생겼다. '난 다른 세상에선 바보 멍청이네'

나를 최고라 생각했다. 어딜 가든 잘하는 애일 줄 알았는데 허무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실수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은 별거 없었다. 다른 직원들을 보니 속도가 부진하면 캡틴님이 와서 분발하라고 말해주고 가는데 그 꾸중이 또 불편할 것 같아서 분발했다. 교육으로 2시간을 보내서 그런 지 점심시간은 빨리 왔다. 사람들은 안내방송이 나옴과 동시에 장갑과 난로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고 밥을 먹으러 간다. 처음 하게 된 날은 금요일이다. 금요일마다 맛있는 게 나온다는 소리를 여차저차 접해서 기대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런 건 빠르다.

나온 급식은 짜장밥과 춘권, 김치 그리고 된장국이었다. '이게 맛있는 급식인가..' 너무 기대를 했을까.

한입 떠서 먹는데 앗 이것은 인스턴트 3분 짜장 맛이 아니다.

불맛도 적절 충분하고 웬만한 일식 요리점의 짜장밥보다 더 맛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의 퀄리티였다.

육체적인 노동에 속아 밥이 맛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옥수수 따다가 할머니가 가져온 새참이 떠오르던 맛이다.


고봉으로 밥을 먹어도 더 먹고자 욕심부리고 싶었다. 이 짜장밥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공짜로 지급하는 꽁 아이스티 한 잔에 아쉬움을 충족한 채 밖으로 나왔을 때 40분의 시간이 남았다.

일하는 시간은 멈춰버린 것 같더니 쉬는 시간은 이토록 빨리 지나간 단 말인가.. 1분 1초가 소중했다.

밖에 나와서 한동안 정자에 머무르다가 '일하기 싫다.'를 외치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아 일하기 싫다." 한다.

'내 마음을 읽은 건지,, 아니다. 다 똑같은 마음일 수밖에 없다.'

나오는 한숨과 함께 55분 정도에 발을 뗐다. 슬슬 들어가야지.

신선센터라 그런 지 들어가면 노곤함을 싹 잊게 해주는 온도다. 그 온도에 느려진 걸음걸이로 애써 들어간다.


'일은 되게 중요하다. 일하기 싫다는 마음을 가진 순간에 우울감을 가진다면, 매일 우울하겠지.'


핸드폰과 안녕을 하고 진열되어있는 목장갑과 손난로를 짚고 착용한 후 PDA가 지시하는 챔버로 간다.

'자 다시 시작해보자. 이 반복! 이왕 할 거 즐기자' 해놓고서 마의 구간 3시 정도에 심심함을 못 참고 혼잣말하는 나를 발견한다.


물건을 담으며

"친정엄마가 간 도라지?, 친정엄마표 된장? 엄마 보고 싶다. 엄마 뭐해? 딸은 장보는 중이야"

"곰곰 배추김치? 오늘 나온 급식 김치가 곰곰 김치 일까?"

"누가 1L 우유를 12개를 주문하지?"

"닭가슴살을 종류별로 사네. 헬창이 분명해."



유해진이 그랬다. 나이가 먹으면서 말에 음을 넣는다고,,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키가 작은 나보다 높이 있는 물건에게

"아이고, 그렇게 숨어있으면 내가 힘들지요~~~"



그러다가 혼자만의 사색에 잠기다가 내가 이제 어떻게 인생을 개척해야 할지 망상에 빠지다가 바코드를 잘못 찍기도 하고 다른 상품 담기도 하고, 집중력도 흐려지고 무엇보다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육체적인 노동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갈 줄 알았다. 정말 큰 오해였다. 육체적 노동 + 반복 작업은 내겐 ,, 고통이다.



토트에 물건을 너무 많이 담는 실수를 할 때면 직접 포장하는 곳까지 가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 밖으로 나오면 크게 틀어 놓는 노래가 유일한 낙이었다. 아무래도 포장하는 직원들 원기를 불어넣어 줄 노래인 것 같은데 '차라리 실수를 하고 한 번씩 노래를 들으러 나올까'라는 생각도 했다. 일부러 그러진 않았지만 후에 실수로 포장하는 곳까지 갈 때면 조금 발걸음이 가벼웠다. 챔버에 들어가기 싫어서 괜히 물 한 모금 먹고 어슬렁 천천히 들어갔다.


PDA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시간이었으나 보면 시간이 더 안 가는 걸 알기에 시간을 보지 않으려고 손으로 가리면서 일을 했다. 몇 시간 동안 슬로 모션만 취하다가 시간을 보니 4시 57분 정도 애매하고 기쁜 시간이 왔다. '장을 하나 더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다 이왕 하는 거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자 해서 5시 딱 채워 컨베이어에 상품을 보내고 혼자 완벽한 퇴근을 한다. 퇴근하는 길에도 체크아웃을 해야 해서 2층으로 올라가 바코드를 찍고 뒤도 안 돌아보고 셔틀버스로 달려갔다. 피곤했지만 다른 기업의 경영 체계를 몸소 느낄 수 있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일단 몸이 너무너무 힘들다. 뻔한 레퍼토리로 난 버스에서 잠에 취해 기사님이 종점(우리 집 앞)에서 나를 깨우셨다. 세상은 정말 광활하고 못 겪어본 것들 투성이다. 몇 번 나와볼 생각이다. 일을 하면서 느꼈던 건 '좋아하는 일, 내가 흥미 있어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지'였다.


일을 해도 좋다, 다만 일은 나의 가슴을 뛰게 해야 한다. 하루하루 새롭고 즐거운 일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새기며 집으로 가서 왕꿀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