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 상 미국 입국심사
6년 동안 일을 하면서 긴 해외여행을 갈망했다. 제주도 3개월 살이 후 나는 친구가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마치 이번 연도까지가 마지막인 것처럼 미친 척 나를 위해 살자는 강심한 마음이 미국까지 번져버렸다.
'언제 이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 긴 여행을 떠날까?'에서
'이 마음이라면 못할 거 없지 가보자.'
무려 6주의 계획을 잡았다. 퇴직금을 털어 미국행 왕복 티켓을 끊었다. 장기로 해외를 떠나보는 게 처음이었던 것, 짧은 휴가로 휴양지나 가까운 일본을 갔었던 거 빼곤 장기여행이 처음이다. 내게 있던 건 결정과 실행력이었고 이미 이번 1년을 세상에 부딪혀보는 마음에 물러서지 말자였다. 하지만 뭐든 처음부터 잘할 순 없는 노릇이다. 새로운 건 설레면서 불안하다. 하지만 나쁘진 않다.
처음부터 난관을 부딪히면서 느낀다. 변수에도 어떻게든 헤쳐나가면 되겠지 라는 마음을 고이 닫아주던 미국의 입국심사. 엄격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음은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돼.' 행동은 언어 장벽의 높이는 간격을 좁힐 수 없을 것 같아 지레 겁먹기 시전. 마치 면접 보는 느낌이었다. 여권과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안고 최대한 웃음 지으면서 시큐리티가 부르는 자리로 갔다.
"헬로 나이슷투 미츄,, "
용기 내서 한 내 상투적이고 멋쩍은 인사는 가볍게 무시당했다. 아마 이때부터 이미 나는 말렸던 게 분명하다.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6주!"
"직업이 뭐야?"
직업이 없다는 게 괜히 기분이 묘해서 전직 물리치료사라고 했다.
"물리치료사였고 지금은 직업이 없어."
"직업이 없어? 너무 오래 있네. 방문한 목적이 뭐야?"
"트래블..! 트래블러"
"어디서 머무를 건데?"
6주 동안 한 숙소에만 있는 게 아니라서 6주의 숙소를 다 읊기엔 내 기억력이 감당치 못했다.
"일단은 친구 집으로 갈 거고.. 그다음엔 LA 한인타운.. 그다음은 샌디에이고 호텔.."
다 맞는 말이었는데 영알못인 내가 영어를 써서 그런지, 나 자신 없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건 지, 누가 봐도 나의 모습은 수상쩍은 애였다.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핸드폰에 메모해놨던 걸 보려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데이터가 안 터졌다. 한국보다 미국이 하루가 늦다는 것도 모르고 한국 날짜로 유심을 사버렸던 것이다. 난 그렇게 구석으로 쓸쓸히 열외를 당했다.
내 뒤에 있던 사람들을 몇 마디 나누지도 않고 가볍게 입국을 허락해주는 걸 보고 내가 큰 잘못을 했을까? 하며 서러운 마음을 오랜만에 느껴봤다. 한동안 나를 세워두고 시큐리티는 다시 나를 불렀다.
"날짜랑 숙소랑 다 정확하게 말해. 말이 자꾸 달라져."
매서운 눈빛으로 지그시 쳐다보는데 나는 죄지은 사람 마냥 말끝이 흐려지고 고개를 떨구게 됐다.
"아 .. 일단 여기는 며칠에 가고 4월 5일엔 샌디에이고를 가고 .."
당황스러운 마음에 말이 잘못 나왔던 건지, 나의 콩글리쉬를 이상하게 해석한 건지, 애석한 나 자신 없는 태도가 못마땅했던 건지 갑자기 한숨을 쉬며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통화내용을 두 귀 쫑긋하게 들어도 정작 '컴온 컴' 이 말만 들렸던 것 같다. 이 마저도 아닐 수도 있다. 한국 가면 영어회화를 꼭 배우자고 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너무 무방비한 상태에서 여행을 온 것인지, 여행만이 답이 아니었을 텐데 만만히 와버린 건지, 짧은 시간에 후회, 불안, 짜증, 간절함 별 생각을 다 했다. 이제부터 잘못 말하면 바로 입국 거절당할 수 있을 거라는 부담에 심장도 빨리 뛰었다. '나 이러다가 어디 끌려가서 미국 입국도 못하고 돌아가는 거 아니야?' 불안으로 휩싸이던 도중 멀리서 두 분이 오셨다.
한줄기의 빛, 산뜻하고 낯익은 유니폼을 입은 한국인 승무원이었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서 울먹이면서도 입은 웃고 있었다. 얼굴에 이미 쥐가 나있다.
"저 친구랑 LA 갔다가 샌디에이고랑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애리조나 여기 갔다가 머물고...!"
승무원은 내의 말을 재차 확인하고 유창하게 요원에게 말을 건넸다. 말을 듣고 요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지금 시중에 보여줄 돈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얼마를 환전해왔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내가 모아둔 돈까지 보여줘야 하는 건가?' 미국의 입국심사가 어렵다고는 했지만 여행자의 행운을 믿었는데 신고식을 제대로 치러버린 것 같았다.
"아 저는 이 정도 보여줄 수 있고 환전은 안 했어요. 여기서 수수료 없이 바로바로 돈을 뽑을 수 있는 카드를 만들어 와서요."
승무원은 또 재차 확인하며 말을 번역하여 전해주었다.
승무원은 중간중간 "말을 번복하면 세컨더리 룸 갈 수도 있으니까 잘 말해야 해요."
죄를 짓고 여행을 온기분이 들었다. '결코 만만한 게 아니구나.'
눈빛으로도 내 마음을 건네야 할 것 같아 억울함을 묻힌 순진한 눈빛을 진심 담아 쳐다보았다.
시큐리티는 왕복 티켓권 보여달란 소리를 마지막으로 "hum,, have fun!" 하며 그제야 처음으로 웃음 지으며 나를 입국하게 허락해주었다.
'헤브 펀? 나 잘못들은 건가. 그렇게 옭아맸는데 활짝 웃으면서 헤브 펀????'
당황하고 허무한 표정으로 문을 통과하고 wellcome LAX 간판을 보고 힘이 풀렸다.
'정말 이게 뭐라고..'
세상에 나와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이럴 때 임기응변 자세와 당황하지 않는 법을 깨닫고 싶기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생각보다 인생은 부와 명예가 중요하긴 해도 그 밖의 다른 요소들을 무시할 순 없다. 역시 사람은 세상에 부딪히고 값진 경험을 해 봐야 사소하고 어마 무시한 일들에 휘둘리지 않을 거야.
고퀄리티 몰래카메라를 당한 느낌이었다. 시작부터 쉽지 않음을 느꼈다. 문화 자체가 다른 해외니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처럼 안 될 어려운 여행이 될 것 같은 건 처음이었다. 초심자의 행운은 제주도에서 다 썼나 보다. 이렇게 나는 처음 미국에 발을 내디뎠다. 나와보니 어두운 저녁이었고 비가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