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벽화를 찾아서
원래는 멕시코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Coco>의 도시인 구아나후아토를 다같이 방문하기로 한 날(6.12)이지만, 원래 여행의 목적인 벽화와 예술품을 제대로 못 봐서 오늘과 내일은 나만의 개인 시간을 갖기로 한다.
이송씨를 필두로한 동행들이 함께 구아나후아토에 가자며, 멋진 풍경의 구아나후아토 사진을 보여주며 나를 꼬드기지만, 나는 코코 도시보다 시케이로스의 벽화가 먼저이다. 일정이 하루만 더 있었다면, 아님 초반에 효율적인 동선으로 다녔더라면(소칼로만 4번 넘게 다녔다), 두 일정 모두 소화 가능했을 텐데. 하지만 휴가 9일이 직장인으로서의 연차 한계이고, 자유롭게 쏘다니는 내 천성 탓으로 구아나후아토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멤버들은 모두 5시에 버스를 타러 버스 역으로 출발하고 없었다. 나는 아침을 든든히 먹고, 멕시코 혁명 벽화 투어를 나선다. 목적지는 ①대통령궁 ②교육부청사 ③멕시코 전력노조 건물 ④산 일테폰소 수도원 등지이다.
첫 목적지는 대통령궁 본관 내부 전면 계단에 있다는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멕시코의 역사>이다. 하지만 첫날부터 직감하고 있었듯, 이번 여행에서 보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얼마전까지 대통령궁을 둘러싸고 있던 철벽과 특수부대원들이 사라져 있어, 잠깐 기대했지만, 입장 가능 여부를 묻는 나에게 군인은 이미 대선 3개월 전부터 대통령궁 관람이 제한되고 있다는 답변만을 반복한다.
포기하고 디에고 리베라의 초기작들이 있다는 교육부 청사로 이동하였는데, 이곳은 하필 또 공사 중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멕시코 벽화운동은 교육부 장관인 바스콘셀로스가 기획해, 교육부를 중심으로 하는 관제로 시작된 운동이기에 교육부 청사에는 벽화운동 초기작이 가득하다. 특히 관제 벽화 운동에 협력적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이 많다.
확실히 나는 <관제>하고는 안 맞나보다.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은 ‘알마에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로 만족해야겠다. 다행히 곧이어 간 산 일테폰소 수도원에는 무정부주의자이며 허무주의자인 오로스코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었다.
디에고리베라가 관제 민족주의자이고, 시케이로스가 극단적 공산주의자라면, 오로스코는 무정부주의자이며 허무주의자이다. 작품은 혁명이 인간의 생명보다, 가족의 사랑보다 먼저인지 묻고 있다. 작가는 혁명이 도대체 무슨 의민지 끝없이 성찰하고 회고한다.
수도원에 그려진 작품 <참호>는 그의 작품 중 첫 손에 꼽는 작품으로, 작가는 참호에서 대기 중인 혁명군 병사를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예수에 빗대며, 혁명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십자가는 살아남은 민중의 몫이라는 것을 설파하고 있는 듯 하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멕시코 전력노조 건물이다. 우리로 따지면 민주노총 금속노조 건물쯤 되려나. 여기까지 오는 한국인은, 아니 외국인은 정말 손에 꼽는다. '한국인으로서는 이성형 교수의 방문 이후로 내가 처음 오는 것이 아닐까?’.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또 한편으로는 국내 최고의 라틴 아메리카 지역학 전문가였던, 한많은 인생을 뒤로하고 작고한 이성형 교수님 생각이 들어 마음이 씁쓸하다.
방문하니 전력노조 노조원들이 내가 왜 온건지 어리둥절해한다. 내가 ‘시케이로스 그림을 보러 왔다’ 하니 놀라면서도 아주 반가워하는 눈치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숨겨져있던 시케이로스의 걸작 <부르주아지의 초상>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이 작품은 1936-1939년 완성된 작품으로, 시케이로스가 반파시즘 투쟁으로 참전한 스페인 내전의 경험이 담겨있다. 시케이로스는 반파시즘, 혁명 등의 주제를 마르크스주의의 틀로 해석하였다.
큰 감동이 밀려온다. 잭슨 폴록의 스승이기도한, 멕시코의 대표적 공산주의자 화가 시케이로스의 거침없는 붓질과 주제의식, 또, 전력노조 건물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지니, 당시의 멕시코의 혁명정신이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기분이다. 이 작품을 직접 만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다.
**참고 논문: 멕시코 벽화운동의 정치적 의미: 리베라, 오로스코, 시케이로스의 비교분석 (이성형,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