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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리 시대의 명암과 유산

남미의 자연과 정치 (3)

by 서초패왕

숙소에 여장을 풀고, 페루 정치의 1번지인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페루 대통령궁과 리마 대성당이 위치해 있다. 모두 정복자 피사로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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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를 정복한 코르테스는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그대로 식민지의 거점 삼았지만, 잉카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는 안데스 산중에 위치하기 때문에, 잉카를 정복한 피사로는 보급로 등을 고려하여 해안가에 새로운 도시인 리마를 건설해 페루 부왕령의 수도로 삼은 것이다.


이로 인해, 페루의 메스티소화는 완전히 분절되어 진행되게 되었다. 해안가의 유럽인, 그리고 안데스의 인디오는 정치·경제·문화 모든 면에서 다른 민족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러한 민족적 분절이, 페루 정치의 문제적 인물, 일본계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 를 낳았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사회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한때 일본계 국가원수를 둔 국가가 동시에 3곳이나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너무 신기해서 기억에 담아두었다. 일왕, 페루의 후지모리, 팔라우 공화국의 구니오가 그들이다.


그저 기억 속의 인물이었던 그가, 2024년 한국의 언론에게 주목받게 되는데, 이는 그가 한국의 윤대통령과 다르게 친위 쿠데타를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2010년 노벨상 수상에 빛나는 문학가 바르가스 요사와와 경쟁하여, 9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그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친위 쿠데타를 성공시켜 국회와 사법부를 해산하며 독재자의 길을 걷는다.


후지모리는 친위 쿠데타 이후, 물가 안정 및 반군 축출 등의 성과로 무난히 재선을 했으나, 대통령으로서의 말년은 무척 불행하였다.


석연치 않은 3선 당선 이후, 야당 의원 매수 스캔들이 터져 일본으로 도주해 그곳에서 팩스로 페루 대통령직 사퇴서를 정부에 제출하질 않나, 페루 정계에 복귀하겠다며 칠레에 입국해서는 가택 연금을 당하기도 하였다. 칠레 가택 연금 시절에는 페루 대통령 출신으로 일본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기상천외한 행적을 보였다.


이런 기행에도 여전히 많은 페루 국민들은, 경제가 안정화 되었고, 치안이 안정되었던 후지모리 시대를 그리워한다. 앞서 만난 택시 기사 역시 후지모리를 대단한 인물이라고 추켜세웠고, 그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 역시, 아버지의 이러한 인기를 배경으로 3번이나 근소한 표차로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할 정도의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하였다.


상식 밖의 행적을 보인 후지모리가 여전히 인기가 높다는 건, 현재 페루 정치가 후지모리의 기행만도 못하기 때문일 터다.


전임 테로네스 대통령은 2022년 친위쿠데타 시도 및 실패로 탄핵되었고, 현직 디나 보루아르테 대통령의 지지율은 2025년 현재 5%로 세계최저이다. 2018년 이후 5번이나 대통령이 교체되었을 정도로 페루의 정치는 혼란스럽다.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하자, 시청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적 시위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고 유명 스트리머가 광장에 등장했다고 한다. 지지율 5% 대통령보다 이 스트리머가 인기가 높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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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 쿠데타와 탄핵뿐 아니라, 유명 스트리머가 광장과 정치를 농락하는 상황마저 한국과 흡사하다.


내란과 탄핵 국면에서 많은 언론이 한국 정치가 중남미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개탄하였다. 인디오·백인으로 대표되는 페루 사회의 분절과, 최근 한국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가 현 상황의 원인이라는 진단이 가능하다. ‘통합과 상생’이라는 평범한 답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 아르마스 광장 한편에는 최근 한국에도 기사화된 피사로 동상도 직접 볼 수 있다. 이 동상의 찬반으로도 페루 사회가 한참 시끄러웠다고 하는데, 스페인이 가져온 전염병은 여전히 페루 사회에 만연하고,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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