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자연과 정치 (4)
아르마스 광장을 등지고 북쪽으로 올라가보니, 대문호 바르가스 요사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 있다. 바르가스 요사는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의 거물 작가인데, 상기했듯 1990년에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바르가스 요사 뿐 아니라, 영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역시 칠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가 아옌데 후보에게 민주 진영의 후보직을 양보한 바 있다. 중남미 출신 6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2명이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셈이다.
정책 역량이나 정무 감각 등 정치인으로서의 전문성 보다는, ‘노벨상 수상’이라는 명성이 대중에게 크게 어필한 결과가 아닐까. 남미 정치의 불안정성을 이 지점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기자기한 콜로니얼 풍의 리마 구도심을 나와 대로에서 버스를 타고, 라르코 박물관에 가려고 하는데, 도저히 버스를 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류장과 버스 차선 등이 정비되지 않아 극도로 혼잡스러운데다가, 버스를 타려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들이 엉켜 완전히 아수라장이다.
넓은 대로에서 조차 유일한 동양인으로 수많은 사람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혼잡한 버스를 타다가 괜히 험한 일을 겪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결국 우버 택시를 불러 라르코 박물관으로 향한다.
잉카를 계승한 페루의 수도 리마에는 황금박물관, 국립고고학 박물관 등 유명한 박물관이 산재해 있는데, 라르코 박물관이 가장 인기 있는 박물관이라고 한다. 방문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유물의 양이 방대하고 대단한 유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박물관의 조경이 유려하고 내부 시설이 깔끔하여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적합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도 잉카 문명 유물 뿐 아니라, 북부의 치무 문명, 해안의 모치카 문명 등의 유물도 나름대로 전시되어 구색을 갖추고 있다.
치무 문명의 정교하고도 화려한 은세공품이 인상적이었다.
전시를 관람한 후 잉카 전통공연을 볼까 했는데, 시차 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진다. 아무래도 잉카 전통공연은 쿠스코에서 봐야할 것 같다.
다음날 쿠스코로 떠나기 전 예술가의 거리 바랑코(Barranco)로 향했다. 어제 혼잡했던 리마 도심과는 확연히 다른 정돈되고 아기자기한 풍경에 마음이 놓인다. 사주 경계를 안해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안도감이 든다. 어제와 같은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페루 관광청 홈페이지에는 페루가 자랑하는 사진작가 마리오 테스티노의 사진 박물관을 바랑코의 명소로 추천했는데, 막상 방문해보니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박물관에 가는 대신 근처의 정원이 딸린 카페에서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피 같은 연차를 쓰고 왔다는 이유로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는데 집중했는데, 오히려 여유를 갖고 쉼을 가지니 오히려 남미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역시 뭐든 적당해야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