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

남미의 자연과 정치 (5)

by 서초패왕


마추픽추에서 이과수까지의 일정은 투어상품을 이용한다. 투어 상품을 인솔해 주시는 분은, 여행 에세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등으로 유명한 박민우 여행 작가님이다. EBS 세계테마기행 태국·메콩강·버마편, 그리고 콜롬비아·에콰도르편에 출연한 유명인사이다. 환타 전명윤 선생이 인도와 중국에 특화된 여행 작가라면, 이분은 남미·동남아 여행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박민우 작가님이 인솔하는 우리 팀 7명 중 나를 포함해 혼자 여행 온 사람은 세 명이었는데, 김 선생님은 정신과 전문의로, 가족과 캐나다로 이민하고 은퇴 후 여행을 즐기고 계셨다. 투어 일정 후에는 가족과 남극 크루즈 여행을 한다고 한다. 다른 한 분인 이 선생님은 지방사립대 교수로, 젊어서 세계 일주를 2번이나 한 여행광인데, 지금까지 방문한 국가가 백여 국에 이른다고 한다.


나 또한 나이에 비해 여행 경험이 적지 않은 편이지만, 이 세 분 앞에서는 족탈불급 수준이다. 투어 일정 동안 이 분들과 여행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배우고 느낀 점이 많다.


막연히 여행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한다 할지라도, 취미는 취미일 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세계 방방 곳곳을 다니고, 특히 남미와 동남아 지역은 국내 여행 이상으로 여행을 다녔으며, 십 수권 책을 집필해 여행 작가로서 명성까지 높은 박 선생님조차 녹록치 않은 여행업계 현실에 고군분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문 분야가 확고한 두 분은, 아늑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자신의 삶과 업에 대해 자신감에 무척 차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딱히 전문성이 없는 직장인인 나는, 내 업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았고, 이 분들의 자기 전문성이 부러웠다.


두 분이 누리는 현재의 여유에는, 유복한 가정 환경의 영향도 커 보였다. 남미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유복한 집안 출신이 많았다. 20대 여행객은 대부분 부유한 집안의 명문대 학생들이고, 이들 중 의정 갈등의 여파로 휴학 중인 의대생이나 쉬고 있는 전공의도 다수이다. 60대 이상 은퇴 후 여행객들 중에도 의사를 비롯한 전문직 출신이 많다. 한국에 의사가 부족하다더니 모두 남미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꼴이다.


남미에서는 여행지의 양극화를 극심히 느낄 수 있다. 15년 전 유럽을 다닐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물론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과 여유 시간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필요하긴 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부(富)뿐 아니라 시간과 지적 호기심조차도 소수가 독점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이는 당대의 일이 아니고, 벌써 2-3대에 이른 모양새이다. 60-70대 여행객조차 지방 개천용 보다는 서울 부유층 출신이 많다.


여튼 박 작가님 그리고 김·이 선생님 두 분과 여행하며,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여행지 (이란, 시리아, 나미비아, 레소토, 동티벳 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학계와 의료계, 여행업계의 내밀한 이야기, 또 이민이나 해외 근무에 대한 조언 등 평소 접하기 힘든 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여행하며 의대생들과 의정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는데, 의대생 중에는 의대증원의 필요성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의사의 과도한 특권과 기대소득 등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이 의사집단 또는 의국이라는 카르텔 속에서 올바른 이야기를 소신껏 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IMG_8988.jpg?type=w773


keyword
이전 04화라르코 박물관과 Barra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