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자연과 정치 (7)
세계의 배꼽을 표방하는 곳들이 많다. 해발 2,500m 고원에 위치한 멕시코시티, 세계 최대의 바위인 호주의 울룰루, 티베트의 수미산 등이 그 곳이다.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 또한 세계의 배꼽을 표방한다. 쿠스코라는 단어 자체가 케추아어로 ‘배꼽’이라는 뜻이고, 상당히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니, 세계의 배꼽 대열에 들 만하다.
쿠스코는 해발고도 3,400m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티베트 라싸(3,600m)에 준하는 것이고, 볼리비아 고원의 라파스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고산병을 유의해야한다. 특히 비행기로 이동하는 경우, 고산에 대한 적응이 없이 바로 해발고도 3,400m에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노약자는 위험할 수 있다. 작년에 쿠스코에서 한국인만 두 명이 고산병으로 사망했다고 하니, 그 위험을 알만하다. (참고로 나는 볼리비아 고원 해발 5000m 지대에서 뛰어다녔어도 아무런 몸의 이상이 없었다. 개인차가 심하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갈만큼 쿠스코는 정말 매력적인 도시이다. 특히 석양이 질 무렵 아르마스 광장에서 보이는 도시의 정경은 정말 아름답다.
이 붉은 지붕으로 가득 찬 도시는 잉카의 수도였지만, 지금은 잉카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16세기 초 피사로가 이 도시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고, 스페인식으로 재건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콜로니얼 분위기밖에 느낄 수 없다.
겨우 몇 곳의 벽에서나 잉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아르마스 광장 뒤편 길의 12각 돌이고, 나머지는 산토 도밍고 수도원의 검은 벽돌 등이다.
산토 도밍고 수도원 아랫길을 따라, 페루 전통 공연장을 향하는 길에 익숙한 벽화가 보인다. 이성형 교수가 여행기에서 언급한 바로 그 벽화이다. 작년 멕시코 기행을 할 적에도, 이 교수가 소개한 벽화를 멕시코 전력노조 건물까지 찾아다니며, 숨겨진 벽화를 발견할 때마다 경탄스러웠는데, 이번에도 무척 감격스럽다.
후안 로사노가 1992년 잉카제국의 흥망사를 그린 이 벽화는, 페루민족의 미래를 무지갯빛으로 그려놓았다. 멕시코 벽화 운동의 민족주의 바람이 페루 쿠스코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공연시간이 될 때까지 벽화를 구경하다가, 시간에 맞춰 공연장에 입장한다. 공연장 밖에는 페루 지역별 전통의상을 입은 마네킹들이 전시되어 있다. 멕시코 인디오 복장과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나 모자 챙의 넓이 차이이다. 페루 전통 복장의 모자챙은 짧고 간결하다. 반면, 판초는 페루인의 판초가 멕시코의 그것보다 훨씬 형형색색 화려하다.
무대는 페루 각 지역별 토속 음악과 춤으로 꾸며진다. 화려함으로 눈과 귀를 현혹하는 대신, 소박하고 푸근한 춤사위와 어우러진 안데스 음악이 눈과 귀를 편안하게 해준다.
공연을 마치고 쿠스코에 위치한 한국음식점에서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남미 한국 음식점 중 최고라는 여행자들의 평가가 가히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쿠스코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 끼니 이곳에서 우리 음식을 해결했다. 역시 신토불이가 최고이고, 나이가 들수록 김치 없이는 힘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