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자연과 정치 (9)
볼리비아의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 반미·반자본주의를 표방하며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4년간 집권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일 것이다. 독립 이후 1981년까지 193번의 쿠데타가 볼리비아에서 발생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14년이라는 그의 집권 기간은, (3선 이후 독재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집권 중 정치적 안정은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평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2005년 과반득표로 당선되었는데, 당시 중남미에는 1999년 선출된 베네수엘라의 우고차베스를 필두로, 좌파·반미 진영이 약진하며 다수의 정권을 창출하고 있었다. 모랄레스는 당선과 함께 우고차베스와 함께 반미의 선봉장으로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등장한다.
모랄레스의 주요 정책은 코카 재배 합법화, 천연가스와 석유 산업 국유화, 신자유주의 정책 폐지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80-90년대 중남미 국가들은 대거 서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했으나, 국민 대부분의 빈곤 수준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혜택은 극소수 부유층만 누리게 되어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시대·경제적 배경에서 2000년대 중남미의 좌파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카스트로·차베스·모랄레스·룰라 등으로 이어지는 남미의 반미정서는 미국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미국은 먼로 선언 이후, 중남미를 미국의 전략선으로 취급하며 중남미 각국의 외교적 주권을 직·간접적으로 침범했다.
경제적으로도, 미국 본위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중남미 국가 외형적 성장은 가져왔을지언정, 실질적으로는 중남미 국가의 빈부격차의 심화와 약탈 수준의 헐값 자원 수출이라는 참담한 결과만을 가져왔을 뿐이다.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 반 신자유주의·반미 바람이 거세진 것은 당연한 시대적 조류였다.
집권 이후 모랄레스 대통령은 천연가스 사업 국유화로 재정수입을 증대시키는 등 지속적인 경제성과를 내어 무난히 재선과 3선에 성공했지만, 권력욕에 취한 그의 말년은 페루의 후지모리와 같이 비참하다. 4선 부정선거 이후 당선 무효 판단을 받고 망명까지 했으나, 여전히 대통령 선거 출마 야욕을 부리고 있다.
포스트 모랄레스 시대의 볼리비아 정국은 혼돈의 도가니이다. 모랄레스 사임 이후 임시대통령이었던 아녜스 차베스 대통령이 2021년 쿠데타 및 반란 선동 혐의로 여자교도소에 수감되는 일도 있었고, 작년 6월에는 反모랄레스 성향의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에 무력으로 진입했다가 3시간 만에 철수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가이드는 무리요 광장의 한쪽 면에 당시 총알 자국을 보라며, 확인시켜주었다. 비가 내리는 무리요 광장 한켠의 총알 자국이 볼리비아의 암담한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다.
미국의 과거 행태를 반추해본다면, 반미는 충분한 정당성을 지닐 수 있다. 하지만, 반미를 표방하는 국가 중 온전한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하는 국가는 사실상 없다. 또한 반미라는 구호는 집권자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만 쓰이는게 현실이다.
세계사적 진보를 위한 <진짜 반미> 정권의 출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