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자연과 정치 (8)
라파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이다. 라파스 엘알토(El Alto) 국제공항은 이름부터가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해발고도 4,150m에 이른다. 멕시코시티만 해도 해발고도 2,500m에 이르는 곳인데, 페루와 볼리비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파스뿐 아니다. 서부의 볼리비아 고원은 평균고도가 4500~5000m에 육박한다.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볼리비아가 Alto Peru(높은 페루)라고 불렸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워낙 고지대에 위치한 국가이고 도시이다 보니, 볼리비아는 스포츠 경기에 있어 원정팀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남미예선에서는 볼리비아가 아르헨티나를 6:1로 이겼다고 하니 더 설명이 필요없다. 북한 능라도 경기장이 관중의 위협과 야유로 원정팀의 사기를 꺾는다면, 이곳은 그냥 고산병으로 선수들이 쓰러지는 수준인 것이다.
공항이 위치한 엘 알토지역에서 라파스 시내는 고도차가 900m나 이르기 때문에 도시의 주요 이동수단이 케이블카이다. 한국인에게 케이블카는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인데, 라파스에서는 출퇴근용 운송수단이라니 놀랍고 신기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니, 현지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라파스 국립대학을 졸업한 재원인 가이드는 볼리비아 정치 현안부터, 역사까지 무척 해박하다. 볼리비아는 입법·사법·행정수도로 도시 기능을 나누어 놓았는데, 이는 과거 대통령과 입법부간 갈등의 산물이라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대성당과 대통령 궁, 시청 등이 위치한 무리요 광장, 킬리킬리 전망대(새 이름이라고 함), 달의 계곡 등을 둘러보았다. 달의 계곡은 과거 영혼의 계곡으로 불렸으나, 닐 암스트롱이 방문한 후 달의 표면과 비슷하다고 하여, 달의 계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수도 바로 인근에 이런 기암괴석이 즐비한 대자연이 존재하다니 놀랍다.
저녁은 유명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토마호크에 잭다니엘 스테이크까지 푸짐하게 먹었는데, 인당 1만원 꼴이다. 육질도 정말 부드럽고 맛있어서, 아마 한국에서였다면 못해도 그 10배는 내고 먹었어도 아깝지 않을 품질이다.
라파스는 전반적인 도시의 인상이 라오스의 비엔티안이나 방비엥을 연상케 한다. 낮고 소박한 건물들과, 가난할지언정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선량한 시민들의 표정이 특히 그렇다. 남미에서 가장 소득이 높다는 대도시 산티아고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소매치기와 좀도둑이 기승인데, 오히려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볼리비아의 치안은 안정적이다.
상대성과 비교라는 것이 욕심과 괴로움을 만드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