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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가 May 04. 2022

긍정의 반대말이 꼭 부정일까?

숨숨


얘들아 나만 그래?


자라면서 항상 들어온 말이 있잖아. 무엇이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라고? 언젠가부터 “긍정”이 들어간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들이 흘러넘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만 뭔가 이 치열한 사회에서 더 잘 살아나갈 수 있는 느낌? 그런데 나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해”,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더 힘이 빠져. 내가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데 마치 내 상태나 감정을 부정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야. 그냥 미래에 대해 굳이 행복하고 좋은 것만 생각하지 않고, 나한테 현재 닥친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상한 걸까? 왜 있잖아. 자꾸  좋은 결과만 기대하고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다가 기대에 어긋나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때 느껴지는 그 상실감이 난 더 못 견디겠더라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꾸 나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 상황을 즐겨보래. 힘들 때도 힘들다고 못하고 내 힘든 마음을 부정해야 내 미래가 더 잘되는 건가…? 난 힘들 때 그냥 힘들다고 말하고 싶고, 굳이 막 애써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거든. 그냥 내 감정이 이렇구나… 하고 내려놓고 싶은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조차 사치라고 생각되는 느낌이 가끔 들더라. 


인간관계든 진로든 또는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걸 떠나서 나는 그냥 현재 내 앞에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고 싶어. 너무 큰 기대를 품었다가 그게 무너지면 더 마음이 아프잖아? 인간관계도 사실 그래.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해 기대를 품었다가 그게 잘 안 되면 아무 생각이 없었을 때보다 마음이 더 아프더라고. 자꾸 좋은 상황만 기대하다가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을 때의 그 타격과 상처는 아무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더라. 


그래서 나는 모든 관계에서 항상 스스로 아주 얇은 마음의 벽을 치고 대하는 편이야. 그냥 차라리 기대를 안 하고 나중에 좋은 결과가 나오면 더 기쁘고 안 좋은 결과가 나와도 덜 슬플 것 같아. 뭐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더 좋겠지만, 그래도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매일매일 나 자신에게 충실히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 글 솜씨가 부족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힘들 땐 그냥 힘들다고 맘껏 말하고 좋을 땐 또 좋다고 표현도 하고 너무 내 감정까지 부정하면서 긍정의 힘을 믿으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 내가 이상한 건가?






융진


정답 같았던 말도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네 글을 보자마자 떠오른 책이 있어. 바로 “아프니까 청춘이다”야. 우리 세대들은 다들 어디에서 한 번쯤은 들어보고 집에 고이 모셔만 두고 있는 책이잖아. 나만 그런 건가? 나는 그 책을 단 한 번도 펴본 적이 없어. 그저 우리 시대를 풍미했던 하나의 표어로 가끔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길래 그게 그냥 당연한 줄 알았어. 시간이 지나서 나만의 생각이란 걸 키워나갈 무렵에 말이야, 나는 이 말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어. 아프기 때문에 청춘인 것이다? 청춘은 아플 수밖에 없는 걸까? 사실 나도 알아. 내가 그냥 말꼬투리를 잡고 있다는 것도. 작가님도 “청춘은 아파도 괜찮다, 아프면서 배우는 것이다. 실패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같은 용기가 되는 좋은 얘기를 해주고 싶었겠지. 근데 나는 그게 싫게만 들리더라고. ‘왜 아파야 되는데? 아프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내 청춘은 안 아팠으면 좋겠는데.’ 그때 깨달았어, ‘정답 같았던 말도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하고 말이야. 또 누군가는 좋은 의미로 응원을 하기 위해 마음을 담아 글을 썼지만, 누군가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거. 어떻게 보면 강요같이 들린다는 거.


우리는 이미 집단 안에서 많은 걸 수긍하며 살고 있잖아. 근데 이건 나의 감정인데 내가 지금 이 시간, 이 순간, 이곳에서 느끼고 있는 감정까지 다수를 따르며 살아야 할까? 따라야 한다면 나는 이 감정의 끈을 도대체 어떻게, 얼마나 붙들어 매야 하는 걸까? 이게 참 어려운 것 같아.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좋지. 나는 단순해서 그런지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끝이 없더라고. 그래서 바로바로 부정 차단기를 내려버려. 그런데 그렇다고 “긍정”이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건 아니야. 내가 하루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 바로 “내려놓음” 때문이야. 네가 말한 것과 같아. 애쓰지 않는 거지. 무엇을 더 잘하려고, 친구를 더 많이 사귀려고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아. 기대를 많이 하지도, 기대를 많이 했더라도 “아, 그렇구나. 아쉽네.”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나는 그냥 덜 생각하려고 해. 땅에 접지를 해 놓은 것 마냥 긍정이든 부정이든 감정이 전류처럼 나에 머물지 않고 바로 내려갈 수 있게 말이야. 그렇게 나를 비우는 거지. 그러면 옆에서 누가 뭔 얘기하더라도 그냥 들을만하더라고.


이게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얻은 나만의 삶의 지혜가 아닌가 싶어.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기계같이 전부 다 비워내며 살지는 않고 그냥 사는 거지. 적당히, 유들유들하게.


그럼, 너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긍정의 반대말이 부정일까?”에 대답한다면 나는 내 식대로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 “글쎄… 이 질문 너무 어려운 걸.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쿙가


우리는 그저 판에 박힌 말이 지겨운 게 아닐까? 


나는 스트레스도 잘 받고 안 좋은 일로 상상의 나래를 잘 펼쳐서,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즐겁게 생각하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편이야. 다른 사람들이랑 대화를 할 때도 최대한 긍정적인 면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생각해내는데, 나의 소박한 꿈을 하나 말하자면 유머를 장착한 사람이 되는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불편함이 외면당한다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내가 정말 어떤 상황인지, 어떤 감정인지, 무엇이 불안하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그저 뭐라도 말해야 할 때, 듣고 싶지 않을 때, 혹은 공감이 안 될 때에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표현을 가져다 쓰는 것 같아. 


예전에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였는데 호스텔이랑 한식당에서 투잡을 뛰었었어. 리셉션 일은 예전부터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일이라 하긴 했는데 근무시간이 너무 적어서 월세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어. 그래서 서빙 알바도 구해서 같이 일을 한 거지. 나는 서빙에 재주도 없고 진짜 싫어했는데도 말이야. 


하지만 누군가 한식당 알바에 대해 물어보면 한식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이만한 알바가 어디 있겠냐고 말하곤 했었어. 좋은 점보다 싫은 점이 더 많았던 알바였지만 굳이 우울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잖아. 그런데 딱 한번, 내가 그냥 마음이 갑갑해서, 일하러 가기 너무 싫다고 말했을 때였어. 그랬더니 그 사람이 나한테 ‘그래도 거기 가면 밥 주잖아.’라는 거야. 


그 말 듣고 어이가 없더라. 물론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긴 했지만, 그건 내가 주문처럼 되뇌는 긍정의 말이지 절대 다른 사람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어. 공짜밥 얻먹는 걸로 위안 삼기엔 나는 여전히 돈이 없었고, 워홀 생활은 너무 갑갑했고, 당장은 여기서 알바를 한다지만 이미 난 학생도 아닌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너무 막막했어. 


나는 분명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편이지만, 어떻게 사람이 항상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수 있겠어. 열심히 사는데도 힘든걸 어떻게 해.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그걸 그냥 묵묵히 들어줄 수도 있는거잖아. 부정적인걸 말하는 나를 탓하기 전에 내가 처한 상황에 먼저 공감해줄 수도 있는 거였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면 너만 손해야’,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그래도 좋은 면도 있잖아.’ 이런 말들이 타인에게 해결책이랍시고 던져주는 용도로 사용될 때, 우리는 오히려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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