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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May 08. 2024

도시락 이야기 4  

엄마의 반찬 도시락. 그리움


어느덧 10여 년이 되어 가는 일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반찬과 새로운 국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엄마가 좋아하는 상추도 꼭 챙겼다.

녹내장도 앓고 있던 치매의 엄마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환자여서 집안에서도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멋쟁이 선글라스를 끼고 식탁에 앉아서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주면 맛있게 드셨다.

자식 입에 음식이 들어갈 때만 좋은 줄 알았는데 점점 아이가 되고 있는 엄마가 잘 드실 때 기분이 참 좋았다.

새로 밥을 지어 엄마와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저녁약을 드시고 나면 금방 잠에 드셨다.

그때의 엄마는 어느 날은 나를 알아보고 지나간 옛날이야기를 했고, 어느 날은 모르는 사람인 양 아무 말도 없이 식사를 하셨다.

문을 잠그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마음도 언제나 어둡고 서늘했다.


이 시기는 먼저 시작된 시부모님의 반찬도시락을 만들던 시기와 겹쳤다.

1시간 거리의 시부모님께는 일주일치 반찬 도시락을 챙겼고, 30분 거리의 엄마에겐 매일의 반찬 도시락을 만들었다.

고 3이었던 작은아이의 새벽밥과 밤늦은 간식도 챙겨야 하니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

고군분투하던 나는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엄마의 큰 걱정이 되었던 외손주인 둘째 아이의 대학 합격소식을 듣고 아주 기뻐하셨다. 기쁜 마음에 혼자 은행을 가서 찾아온 수표를 잃어버려 찾지 못했다.

다시 나와 함께 은행에 가서 손주의 첫 입학금을 내주셨고,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다.    


3월...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드시길 거부했고, 영양식 캔도 그 맛을 싫어하셨다.

요양 보호사님이 가족들이 없는 시간을 돌봐주셨고, 반찬 도시락이 필요 없었지만 여전히 나는 먹거리를 챙겨가곤 했다.

좋아하시던 짭짤이 토마토가 처음 나온 것을 보고 사가지고 갔다.

살짝 데쳐 껍질을 벗기고 잘게 썰어 입에 넣어 드리니 방울토마토보다 조금 큰 토마토 두 개를 맛있게 드셨다.

다시 기운을 내시려나 보다 했는데..

이후 곡기를 끊으셨다.  


그날

이틀 전 의식 없는 고열의 엄마와 밤을 보내고 집으로 왔다. 하루를 편히 자고, 다시 내가 엄마와 밤을 보낼 차례였다.

점심을 준비하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급하게 준비한 밥을 급하게 먹었다.

전화가 울렸다.

엄마는 화창한 봄날에 도시락도 챙기지 않고, 먼 소풍을 떠나셨다.

짭짤이 토마토는 먼 길 가는 엄마의 마지막 노자 음식이 되었다.


나는 엄마에겐 고작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반찬 도시락을 챙겼을 뿐이면서

짜증도 많이 냈고, “내년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자”며 공수표를 마구 남발했다.

세상만사가 고달프고 어려웠던 내게 세상 제일 쉽고, 세상 제일 만만한 엄마였으니까.....

내가 못되게 굴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내게 인사도 없이 엄마 그러기야? “


4월..

오래전 외할머니가 봄날에 돌아가셨을 때 환갑이 넘은 엄마와 이모들이 “엄마 엄마” 부르며 슬프게 우는 걸 보았다.

몇 살이 되어도 부모 앞의 자식은 그저 세 살배기 아이였다.

내게 닥친 엄마를 잃는 일은 나를 향한 무한 사랑이 사라짐과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과 같았다.

나는 마치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불안한 허공을 허우적 대는 것 같았다.

어느 것에도 의미가 없었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밤마다 눈을 감으며 내일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자칫하면 자신을 놓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울지 않았다.


그해의 5월..

분명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창밖의 봄을 응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흘러나온 눈물은 끝날 줄 모르고 하염없이 나왔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나오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오래전 보았던 엄마처럼...

엄마의 마지막 어버이 날 카네이션..


드라마 삼체의 대사 중에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난 행운이야”

윌은 마지막 선택 단추를 누른다.

대사를 똑같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격하게 공감이 되었다.

마지막 순간에 할 말을 다하고 다 듣고 깔끔하게 정리하며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인간의 마지막 순간..

현실과 다른 상황극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나에겐 그 행운의 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날 내가 한 시간만 일찍 갔다면..‘

’그날 내가 그깟 한 끼의 점심을 굶었으면 될 것을..‘

‘무슨 내년에 하자는 약속은 그리 많이 한 건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며 마지막 순간을 못 본 것에 대해 원망과 자책을 했고,

마음엔 괴롭고 무거운 짐이 쌓였다.

일주일 뒤 엄마가 꿈에 나왔다.

꿈속의 아픈 엄마를 껴안고 울며 토닥이며 엄마를 안심시키니 편안해지는 순간을 보았다.

나의 짐을 가져가며 엄마는 내게서 완전히 떠나셨다.


다시 3월..

기일이 되면 좋아하시던 호박전을 부치고, 사과와 짭짤이 토마토를 챙긴다.

엄마에게 그냥 가고 싶을 땐 외식을 좋아하지 않던 엄마가 참 맛있다고 했던 롯데리아 새우버거를 사간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셨었는지 점점 생각나지 않는다.    

사과, 짭짤이 토마토, 콩나물국, 호박전.........  

아, 주전부리를 싫어하셨는데 돌아가시기 두 해전쯤부터 알록달록한 귀여운 곰돌이 모양의 젤리를  참 좋아하셨다.    

선글라스를 끼고 냠냠 오물오물 젤리를 드시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그렇게 귀여운 모습을 남기고, 내 곁을 떠나셨다.  

장모님께 가는 날이면 남편은 하리보 곰돌이 젤리를 사 온다. 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날이 맑은 봄날이다.   

봄소풍처럼 도시락을 챙기고, 곰돌이 젤리를 챙겨 남편과 엄마에게 간다.

엄마의 집 앞에 앉아 곰돌이 젤리를 입에 넣으면 쫄깃하고 달달하고 여러 향기가 난다.

한참을 씹으며 다양한 향기가 났던 엄마와 나.

우리의 생각을 한다.


멀리 2억만 리에 계실 때도, 의식이 없이 누워계셨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엄마는 존재만으로 참 든든하고 안심이 되었다.

언제나 무한 사랑이 나를 향해 햇빛처럼 내리쬐고 있었다.

좀 더 일찍 알아챘다면 좋았을 텐데 미련한 나는 깜깜해지고서야 소중함을 깨달았다.

엄마가 참 그립다.


또 5월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은 오고 또 온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듯 지금도 눈물은 언제든 나온다.  

그래도 이젠,  

엄마 얘기를 해도 눈물을 참을 수 있다.


성묘를 다녀와 곰돌이 젤리를 늘어놓으며 논다



엄마의 시계가 멈췄다
무한 사랑이 멈췄다

나의 시계는 계속된다
사모곡은 계속된다

예쁜 나의 엄마
보고 싶어




4편의 도시락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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