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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Apr 15. 2024

나의 작은 화단

내 작은 화단과 인생 이야기


<19평 동서향 아파트의 베란다 화단>


우리의 첫 집은 19평의 동향으로 베란다가 위치해 있었다.

나의 첫 식물은 신혼살림과 함께 들어온 화분 네 개였다.

엄마의 정원에서부터 온 분홍색 사랑초와 주황색 꽃이 피는 군자란, 강인한 초록잎을 가진 관음죽, 분홍의 게발선인장이었다.

죽지 않을 거라며 엄마가 엄선한 네 개의 식물화분이었다.

이후 무엇이 계속 들어오고, 화분이 계속 늘어났다.


화원에서 사 온 식물의 흙에 낯선 잎이 나와 그것을 분리해 또 새로운 화분이 되었다.

단풍잎처럼 생긴 초록의 잎은 가늘고 까끌까끌한 줄기에 달려 길게 길게 뻗으며 예쁘고 싱그러웠다. 아이비처럼..

어느 날 엄마가 오셨다. 늘 그렇듯 화단을 꼼꼼히 들여다보셨다.

“뱀풀은 왜 키우냐? 이건 잡초야. 하하하”

아무튼 예뻐서 한참을 넝쿨식물처럼 키웠다.

나도 엄마처럼 베란다 창문을 항상 조금 열어두었고, 식물들은 잘 자라고 꽃도 잘 피었다.

식물에게 햇빛만큼이나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때를 알게 하는 바깥공기가 중요했다.


집에 오셨던 친척 시어른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노인네가 사는 집처럼 새색시집에 식물화분이 이렇게 많냐?”

‘아, 이상한 건가?’

신혼집에 화초가 많은 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생각해 보니 친구들도 그런 말했었다.

“무슨 식물이 이렇게 많아? 할머니집 같다. 얘~”

지금은 인테리어로 식물을 키우는 플렌테리어가 유행이며 취미 생활이 되기도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때는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취미를 갖은 나는 이상한 새색시였다.


정말 그 네 개의 식물은 내가 키우는 동안 죽지 않았다.

글을 쓰다 보니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신중하게 선택을 하고, 새 흙과 예쁜 화분에 담아

죽지 않고 꽃 피우며 잘 살기를 바란 것은 식물이 아니고 나였음을..


흐릿한 사진만큼 흐릿한 기억속의 동향집 식물들..




<타향살이 화단>


네 개의 화분을 엄마에게 돌려보내고 한국을 떠났다.

한국인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었으므로 한국 채소를 먹는 일이 어려웠고, 자급자족 해야 했다.

엄마는 타향살이하는 딸에게 동대문 시장에서 각종 씨앗을 사서 보내 주었고,

봄이면 한국에서 공수된 씨앗을 파종하고 싹을 틔워 모종을 만들었다.

씨앗을 심을 화분과 흙을 사러 원예전문 매장에 가면 예쁜 꽃모종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나의 작은 테라스 공간에선 채소를 심을 화분 몇 개를 놓을 공간이 다였으므로 눈을 질끈 감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채소농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가꾸는 솜씨가 점점 좋아졌었다.


상추와 깻잎은 작은 씨앗이어서 싹이 트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솎아내야 한다.

씨앗을 파종하고, 싹이 돋아 어느 정도 자라면 일회용 컵에 모종을 담아 동네 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적상추와 풋고추, 깻잎, 찰토마토, 애호박, 오이를 키웠다.

억세지 않고 보드라운 채소로 먹기 위해선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물을 주어야 했고, 해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주기도 해야 했다.

그 무엇이라도 게을리하면  그해 농사는 망쳤다.


상추는 해가 모자라면 웃자라고, 금방 꽃이 피었다.

가장 쉬운 것은 고추와 깻잎이었다.

깻잎은 새싹의 발아도 잘 되고, 적당한 크기로 따먹으면 저절로 곁가지가 생기며 더 많은 깻잎이 자라났다.

꽃대가 올라오면  따줘서 깻잎이 더 오랫동안 생기도록 했다.

고추나무는 어느 정도 크면 생장점을 순집기 해서 가지를 늘려주고, 물만 열심히 주면 질기지 않은 아삭한 고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잘 자란 가지에서 무성해진 연한 깻순과 고춧잎을 따서 살짝 데쳐 나물반찬을 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고추와 깻잎은 그야말로 효자 채소였다.


타향살이 동안의 화단은 자급자족의 농사를 짓는 곳이었고, 외국살이를 하는 동안 나는 농부가 되었었다.

엄마는 또다시 식물로 나를 살게 하였다.


작년에 씨앗을 발아시켜 나눔한 깻잎 모종


<탑층의 화단>


귀국 후 자동차가 없어 경기도의 동서남북을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며 집을 찾았다.

기운을 거의 소진했을 무렵 눈이 번쩍 뜨이는 지금 사는 집을 만났다.

그렇게 선택한 집은 맨 꼭대기 복층집이었고, 테라스엔 데크가 깔려있었고 작은 화단이 있었다.

이유도 연고도 없는 지역의 집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였다.

나에겐 마당.. 같은 것이 생겼다.


꽤 널찍한 데크엔 바비큐 그릴도 놓고 매일 쓸고 닦고, 화단과 화분에 야생화와 채소 등 여러 가지를 심었다. 신이 났었다.

보라색 옥잠화, 주황색 열매가 열리는 꽈리나무, 봉선화코스모스, 작고 예쁜 야생화들..

아이가 생일에 사 온 빨간 미니 장미와 작은 노랑 장미도 심었다.

보라색 튤립 구근을 가을에 심으면 월동 후 봄에 싹이 나와 꽃이 피었다.

딸기를 화단에 심었는데 얼마나 여기저기로 무섭게 퍼지는지 감당할 수 없어 뽑아서 화분으로 옮겼다.

다 뽑은 줄 알았는데 다음 해에도 엉뚱한 곳에서 딸기 싹이 올라왔다.

그렇다고 수확이 좋은 것도 아니고 딸기는 지겹게 느껴졌다.

수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아래층으로부터 긴 호스를 끌어올려 물을 주었다.

힘들었지만 매일 열심히..

그런데 고층의 야외에서 무엇을 키워도 식물들이 잘 자라질 못했다. 세게 부는 바람 탓이라 생각했다.

지금껏 식물을 잘 키운다고 자부했던 나에게 제동이 걸린 순간이었다.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땅과 너무 멀어서 일거야. 식물은 땅내음을 맡을 수 있어야 하거든 “

‘아.. 그렇구나...’

어쩌면 고산지대의 식물들을 키웠다면 예쁘게 잘 자랐을까?

에델바이스를 심어볼걸 그랬다.

데크 화단의 봄
데크 화단의 여름
데크 화단의 가을


어느 날 아파트 관리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맨 꼭대기의 방수공사를 해야 하는 햇수가 되었는데 데크와 화단을 철거해야만 할 수가 있다고 했다.

나는 계속된 식물 키우기 실패에 지치기도 했고,

방수공사를 못해서 생기는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몽땅 철거하기로 아주 쉽게 마음먹었다.

울고 싶은데 누군가 때려준 격이었다.


“으악!”

30Cm 높이정도의 깊지도 않은 화단에서 개미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와 철거하는 동안 에프킬라 세 통을 썼다.

그동안 스멀스멀 나오던 개미는 화단이 원인이었다.

‘식물들이 잘 못 자란 이유도 혹시 개미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데크의 작은 화단 생활도 나름 재미있었다.




<책상 위 정원을 거닐다>


연재 <아는 식물>의 가제는 <책상 위 정원을 거닐다>였다.

데크와 화단을 철거하고, 한동안 식물을 키우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보내느라 식물을 키울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이미 우린 강아지 비누와 살고 있었다.

엄마는 새 집에 금전운이 들어온다는 금전수를 사주었다.

아마도 엄마는 실패란 결과를 안고 돌아온 딸이 마음이 아팠나 보다.

금전수는 과습으로 죽었다. 역시 나는 ‘금전운이 없구나’ 싶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었다.

이 시기엔 모든 것이 좋지 않았고, 피폐해진 마음으론 식물이 키워지지 않았던 것 같다.


식물에게 필요한 것은
햇빛, 바람, 물 그리고 순수한 마음

식물에 부여하는 의미는 이기적면 안된다.
그저  잎이 나오고 꽃을 피우는 의미만 두면 된다

식물 키우기는 인생과 닮아있다.

거실엔 자식처럼 키우는 청양꽃나무 화분 하나만 덜렁 있었다.

강아지 비누는 혼자 집에 있을 때 활짝 핀 청양꽃을 모조리 따먹기도 하고, 이파리를 뜯어먹기도 해서 깜짝 놀란적이 많다.

참고로 비누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알배기 배추여서 우리 집에선 개 풀 뜯는 소리를 거의 매일 들을 수 있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우리 강아지 비누와 식물이 공생하는 건 더욱 힘들었다.

반려 동물을 키우거나 반려 식물을 키우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데크화단이 없어지고 나니 올 확장형 남향 아파트는 식물을 키울 수 없는 최악의 조건인 집이었다.

시원하게 샤워로 물을 줄수도 없고, 항상 환기가 가능한 베란다가 없으며 남향집은 해가 필요한 시기가 될수록 해가 한 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하나인 청양꽃나무도 아무리 햇빛과 창문가의 바람을 따라다녀도 시들시들 해졌고, 식물들은 들이는 족족 죽어나갔다.

식물이 키우기 싫었다.

그리고... 식물 키우기의 선생님이었고, 나의 버팀목이었던 엄마가 화창한 봄날에 돌아가셨다.


포기하고 그만둘 만도 한데..

비누와의 반려생활이 10년쯤 되니 익숙해졌다.

4, 5년전 내가 싫어하는 봄날에 화원의 예쁜 꽃이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잘못 구입해 폐기처분의 위험에 있던 내 책상은 비누와 차단할 수 있는 화단이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비누가 고양이가 아니었음이 참 다행이었다.

식물 키우기의 악조건 속에 희망이 생겼다.

기꺼이 내 책상을 식물에게 내주었고, 그렇게 엄마 없이 나만의 새로운 책상 위 정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소박한 시작
실패를 거듭하며 늘어난 화분들이 가득한 오늘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키에 부적합한 아파트에 살지만 식물 키우기를 희망한다.

나는 지쳤지만 포기하지 않고, 식물을 죽이고 실패하며 계속 키웠다.

이젠 상황에 맞는 아는 식물들을 엄마없이 혼자서도 제법 잘 키우게 됐고, 너무 많아져서 고민인 상황에 이르렀다.

또 한 가지 봉착된 문제는 예쁜 꽃을 보는 건 좋아하지만 식물을 키우는 것엔 관심 없는 가족들과 사는 것이다.

식물을 키우지 않으면 그 느낌을 알 수가 없다.


왜 매일 똑같아 보이는 식물을 쳐다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왜 자꾸 작은 화분이 늘어나는지..

왜 이상한 풀을 예쁘다고 하는지..

왜 1년을 기다려 일주일만 피는 꽃을 기다리는지..


이해를 못 하니 책상 위를 너머 여기저기로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불편을 호소한다.

그런 가족들이 아니라면 나는 순식간에 집을 식물원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건가?


꿋꿋하게 눈총을 이겨내며 거짓말을 하며 나는 오늘도 식물을 키운다.

“놓을 자리도 없는데 또 샀어?”

“아냐! 원래 있던 거야!”

입 무거운 비누만 아는 비밀 산책길에 둘이 같이 산 꽃화분 보라색 로벨리아와 노랑 비덴스

30년의 인생 이야기를 쓰다 보니 필요 없는 것을 쳐냈는데도 길어져 글을 나눌까 하다가 끊을 수 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소제목별로 3부작으로 나눠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긴 글을 시간 내어 읽어주신 독자님께 감사를 드리며 긴 글이지만 시간이 아깝지 않았길 바랍니다.

아는 식물들의 키우기와 꽃들의 소식은 앞으로 연재글로 좀 더 간략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 행복한 월요일이 시작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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